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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Sep 07. 2021

가을 배추, 무의 입학식

쑤욱 쑥 잘 성장하거래이!

지난 토요일 아침 입학식이 있었다.

계절이 바뀔 때 텃밭 주인공의 졸업은 또 다른 누군가를 품어 안는 입학식이 동시에 열리는 날이기도 하다.

농사에 일가견이 있으신 고수 분들 서리가 내리기 전 가을배추와 무를 심어야 한다며 더 늦지 않게 심으라 하셨다. 맷돌호박 졸업을 한 주 늦추니 배추와 무의 입학은 자동으로 한 주 미뤄진 셈이었다.


여름 내내 땀 흘리며 텃밭을 이끌던 녀석들 가을이 오니 이파리도 누래지고, 그 싱싱하던 생기발랄함과 활력은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노 선수들 마냥 한순간에 훅 떨어졌다.

누가 봐도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함을 알아차리는 순간이다. 발 빠르고 눈치 빠른 코치들 벌써 선수교체를 시켜준 곳도 있었다.


계절에 어울리는 어린 선수들 입학은 했지만, 줄지어 잔뜩 쫄았다. 아무리 적응력인 짱인 녀석들 낯선 곳에 왔으니 분위기는 익혀야 할 테고, 특유의 본 모습을 내보여야 할지 눈치 보고 있을 테다. 참지 못해 하루 이틀 지나지 않아 마구 내달릴 녀석들이 나올 테지만.


한 두 주 먼저 텃밭 품에 안긴 녀석들의 엄마, 아빠 정성이 하늘을 찌른다. 어린 잎 추울세라 다칠세라 다듬어준 손길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두터운 비닐 갑옷도 입었고, 종이컵과 플라스틱 컵도 뒤집어 썼다.태풍이나 비바람 끄떡없겠다.

덕분에 하루 먼저가 어디냐며 뿌리 탄탄히 박고 제법 몸을 불려 나간다. 텃밭은 다시 초록으로 싱그러운 활력을 되찾고 있다. 모종이든 작은 씨앗으로든 흙과 만나 눈부신 성장을 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 구십 넘은 노신사분 꼬챙이 들고 쪼그리고 앉으셨다. 벌써 모양 갖춘 배추 한 잎 한 잎 들여다보고 계신다. 달팽이나 배추 갉아먹는 벌레 잡아내기 위함이라시며.


선선한 가을 바람 쐬며 나들이 나온 듯 줄지어 진 녀석들이 넘넘 앙증맞고 귀엽다.


우리 텃밭 배추와 무들도 입학식을 치렀으니 담 주에 오면 제법 자랐으려나.

우리 배추, 무들은 비닐 갑옷도 입지 않고  종이컵이나 플라스틱 컵도 덮지 않고 맨몸으로 나섰다. 그런 덕에 자생의 힘으로 커야 한다. 김장 배추 하실 분들은 농약도 조금씩 뿌리시던데, 우린 김장할 게 아니라 농약 뿌리지 않아 구멍이 숭숭 뚫릴 지도 모른다.


젓가락으로 그이는 뭔가 잡아낼 테고, 나는 못 본 척 해주거나 벌레는 말고 달팽이는 밥 먹으라고 다시 데려다 놓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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