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크고 작은 부탁을 할 때도 받을 때도 있다. 대개 자기 선에서 해결 가능한 것들은 흔쾌히 들어주면서 지낼 것이다. 큰 부탁이라도 덥석 받아 끙끙대더라도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 있고, 금방 끝낼 작은 부탁이라도 유쾌하지 않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평소 연락을 자주 하던 뜸하게 하던 횟수에 상관없이 믿음과 신뢰가 바탕으로 깔린 이들의 부탁은 가뭄에 콩 나듯 연락 와도 애씀을 힘듦으로 여기지 않으며 들어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거다.
복도를 지나다 나와 마주친 정감 있는 하늘반 선생님은
‘선생님 아주 잘 만났어요.’
하는 표정으로 작은 메모지를 건네며 말한다.
“선생님, 원감 선생님 생일이라서 축하 카드 쓰기예요. 제가 담당이거든요.”
담당이란 말보다 책임 있는 말이 어디 있겠는가.
담당이란 그 무게감에
‘싫은데, 못 쓰겠는데,..’
말하지 못하고 덥석 받아 들었다. 언뜻 보니 몇 글자 안 적어도 되게 그림이 반 이상 들어가 있다. 짧게 몇 글자 안 되게 적고 끝낼 수 있게 말이다.
원에서 유치원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올망졸망, 오순도순, 아웅다웅거리며 지내는 것이 끝이 아니다. 매달 행사는 끝없이 이어지고, 변화무쌍시켜야 할 공간 재창조는 기본이다.
늘 선생님들께서 계단이나 복도를 뛰다시피 오가는 이유일 수 있다. 몸과 마음이 분주하고 바삐 움직이지 않으면 끝맺음이 없으니.
이번 주는 두 달에 한 번 있는 부모님들과 전화상담 주간이라 담임선생님들께서 더 바빠지셨다. 급한 일이 있을 땐 언제든 연락 가능하지만, 정해진 상담 날엔 참았던 궁금증을 여쭙기도 하는. 부모님들은 하나, 둘 많게는 셋, 넷의 자녀들이기에 묻고 또 묻고 싶을 것이니.
선생님의 입장에서 보면 하루 종일 스무 명에 가까운 아이들과 지내다 오후 시간 짬 내서 부모님 상담까지 해야 하는 주간에는 목소리가 견딜 재간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타고난 성대를 가지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 당시 나는 매주 수첩 일지를 통한 한 주간의 활동을 적어 보내드렸다. 어린 반이라 원이든 집에서든 말은 하는데,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을 때가 많아서. 많은 부분 의사소통보단 불통에 가까운데 매일 전화로 알려드리기도 쉽지 않았던 거다.
매일이 궁금하셨을 부모님들께는 한 주간 반에서 일어나는 꼼꼼한 소식을 글로 알려드려 불통인 우리 반 사소한 일들도 알리는 계기가 되고, 쉰 목소리에서 조금 벗어나는.
지금 담임 선생님들을 봐도 수고로움이 많이 느껴진다. 상담주간 끝나고 나면 쉰 목소리가 나지 않을까. 아이들과의 활발하고 생생한 상호작용을 위해서라도 전화통화 보단 문자나 카톡이 좋긴 한데, 아 다르고 어 달라 목소리를 통한 전달이 있을 수도 있는 법이니까.
잔일 많은 선생님들이라 업무분담 맡은 작은 거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만날 때마다 젊어지고 예뻐지며 보기만 해도 힐링되고 힘이 난다고 말해주는 20대 선생님의 부탁을 어찌 거절할 수 있으리오.
나중에 하늘반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진심 담아 써 주신 사람은 선생님뿐이라고. 원감님께 써야 한다니까 다들 퇴짜를 놓거나 형식적인 인삿말만 썼더란다. 그 나이 땐 불편한 관계라고 생각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지금은 그 모든 걸 초월할 만큼 나이를 많이 먹어버렸나 보다. 원감 선생님께 불편하다는 생각보단 그 많은 어려움을 뚫고서 아이들과 아이들을 키우는 초보 부모님들을 위해 현장에서 수고로움을 온전히 감내하고 계셔서 감사하다는 아이들, 후배 선생님들과 학부모님을 대신한 감사편지일지도 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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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원감님의 생일 축하합니다.~~~^^**
원감님, 원감님을 이렇게 조용히 나지막하게 부르니 또 다른 느낌입니다.
늘 바삐 분주하게 움직이시는 원감님을 부를 때는 언능 부르고 용건만 간단히 끝내야 할 것 같았거든요. 제가 원감님께 생일 축하편지를 쓸 날이 올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벌써 석 달도 더 된 일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했던 일이니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거야. 호기롭게 시작한 7세 반 친구들과 생활한 뒤 일주일 만에 도망쳐 나오려고 했었지요.
자기주장 강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은 에너지에 눌려 지레 잔뜩 겁먹었습니다. 제가 끼여 괜히 선생님들께 피해만 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던 거 같습니다.
원감님께서 섣부른 저의 판단을 잘 상담해 주신 덕분으로 오늘날까지 잘 적응해 나가고 있어요.
유치원에선 다 큰 형님인 7세 반이라 해도 아이들이라 순수하고 따뜻하며 까불이들이었습니다. 마음이야기 시간을 통하여 긴장되고 촘촘하며 딴딴하게 조이고 주눅 들거나 기뻤던 일들도 편히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려 하고 있습니다.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물어봐 준다면 듣는 시간도 좋을 텐데... 자기 말하기 엄청 좋아하고 듣고 기다리는 시간은 힘들어합니다.
뭔가를 해주려고 앞서 걱정하지 말라던 원감님의 말씀이 생각나요. 길을 걸으면서 어떤 걸 해 주면 도움이 더 될까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듣고 말로 표현한 것을 글로 표현하게 할 때면 모르는 글자에서 많이 막히곤 하지요. 많이 알면 아는 대로 모르는 건 알아가면서 천천히 해 나가도록 할게요.
어릴 때부터 자기 맘을 들여다보며 화가 나고 왜 속상한지 참을 수 없는 분노는 어떨 때 일어나는지 알아차리는 마음이야기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할게요. 자기 맘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수록 정신적으로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처음 원감님을 뵈었을 때 많이 쉰 목소리에 마음이 짠했답니다. 어머님들은 한 번이고 어쩌다지만, 원감님은 다수에 매일 계속이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한 분 한 분 궁금증을 토로하면 해소해 드리기 위해 성심성의껏 임해 오셨을 테구요.
아이 둘을 다 키운 엄마입니다만, 유아들과 교육현장에서 후배 선생님들과 아이들, 초보 부모님들을 위해 마음을 다하여 도움주고 계신 원감 선생님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