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우주이고 자연이라더니 그래서 그런가. 생명을 품어 키우는 텃밭으로 가는 주말이 늘 기다려진다. 지난주 토요일 아침 그곳을 찾았을 땐 맑은 가을날, 언제나처럼 평화로웠다.
텃밭 초입에 자리한 어르신 토란대를 베어내 삶기 좋게 정리하고 계셨다. 수북이 쌓인 걸로 봐선 제법 많이 심으셨던 모양이다.
“서리가 내리니 그 튼실하던 토란대가 폭삭 주저앉더라고요.”
작년 두 뿌리 심었던 토란대. 수확을 앞두고 한 주만 더 한 주만 더 보겠다고 아끼다 서리 맞고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던 때가 떠올라 말을 건네었다.
“아직은 서리 내리지 않았고, 때가 아니라 괜찮아요.”
어르신은 아직은 걱정할 거 없다며 하던 일을 계속하셨다. 주말 농장 한 복판에 토란을 심어놓은 그곳은 언제 수확하려나 조금 염려가 되었다. 우리처럼 될까 봐. 서리 내리기 전에 거둬야 할 텐데...
어르신은 수확을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데, 일이 있어 수확을 서두른 거라셨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보니 그분의 촉이 남달랐나. 담 날 아침 64년 만에 가을 한파가 닥칠 거라는 걸 알기라도 한 것처럼.
주말 농장 중앙의 토란대는 염려대로 하루 아침에 풀썩 주저 앉아 있다. 다 키운 자식 같은 걸.
갑자기 큰 추위가 온 다음날, 유치원 아이들 모두 겉옷 차림이 180도 달라졌다. 한두 명 가벼운 가디건 정도 걸치던 겉옷이 일제히 꼭꼭 약속한 듯 두터운 외투로 바뀐 것이다.
가을 옷을 거치지 않고 두터운 외투라니 낯설었다. 하루아침에 모든 걸 바꿔 놓은 걸로 치자면 텃밭의 풍경도 마찬가지. 주인이 거둬들이지 않는 한 호박넝쿨은 계속 뻗어나갈 기세였다. 군데군데 아기 호박까지 매달고선. 가을 한파 한 번 훑고 간 텃밭은 전쟁이 끝난 뒤가 이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처참했다. 곳곳이 불타 없어지고 재만 남은 듯한.
가을 한파가 오기 전까진 가을작물과 여름작물의 끝물이 어우러져 싱싱하고 푸릇푸릇함이 생기 있었다.
배추와 양배추는 속 알을 채우느라 여념 없었고, 무는 덩치를 불려 나가던 중이었는데... 무, 배추가 가을 작물보다야 나은 상태라 해도 앞으로가 염려가 되었다. 무의 이파리가 얼었다 녹은 부분의 빛바램으로 인해 광합성 작용이 부족해 뿌리까지 양분이 덜 가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잎줄기채소인 배추는 잎이 문제가 생겼으니. 크다 만 키처럼 맘껏 못 자란 녀석들 수확해야 하는 건 아닐는지.
바람이 얼마나 세찼던지 고춧잎과 늦고추가 바람 부는 방향대로 부동자세다. 수확 못한 고구마순과 호박넝쿨은 멸종, 가지 이파리는 색이 바랬고, 매달린 작은 가지를 보고서야 가지 대였음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여름작물들의 최후는 아이들 여름옷 쏙 들어가듯 자취를 감춰버렸다.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헤어진 연인처럼 서운하고 씁쓸했다.
텃밭 이웃이 이 정도의 맘인데, 주인은 얼마나 황당하고 어처구니없을까. 지난 주말 아침에도 호박 이파리 수확해 가는 걸 봤었다. 또 새 잎이 나오면 호박 쌈의 아침상을 기대하고 있었을 텐데. 하루아침에 이파리 하나 남지 않은 호박 줄기와 마주해야 했으니.
가을작물이라고 해서 온전한 건 아니다. 여름작물의 끝물처럼 폭삭 주저앉지는 않아도 얼었다 녹은 부분은 고유의 빛을 잃고 시들시들해져 가고 있다.
지난주와 이번 주는 누가 봐도 before---after다.
정성 들이고 공들여 키우기는 여러 날이어도 무너져 내리는 것은 하루도 걸리지 않고 끝나버린다는 것을. 기후위기의 영향이라면 정말 무서운 거였다.
김장철도 아닌데, 배추와 무의 상태가 더 나빠질까 봐 여기저기 배추나 무들의 조기 졸업을 거행한 곳이 많았다.
우리 배추는 얼갈이만큼만 자라고 있다. 김장할 건 아니라서 조바심은 내지 않지만, 크지 않는 이유는 여러 곳에 있을 터. 가장 큰 이유는 여름작물을 거두고 충분한 퇴비를 하지 않고 어거지로 키우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거다. 이웃 분들처럼 거름을 하지 않고 모종을 심어 대기만 한 거다. 올해는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거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텃밭 이웃 분들은 배추와 무를 심기 전 거름부터 시작해 밭고랑을 두둑하게 쌓고 비닐을 덮어줌을 나중에 알았다. 모종에 덮여 다 똑같은 줄 알았던 거다. 지금껏 벌레 잡아가며 정성을 쏟은 생명들이 하루아침에 큰 피해를 입었으니 속상함은 말로 하지 못할 거다.
지난 주 텃밭 옆 까마중 이파리 위에 노린재 새끼들 오종종 올라 앉아 햇살 멍하는 걸 봤었다. 엄마 노린재는 다른 이파리에 앉아 새끼들을 지켜보고. 가을 한파로 이파리가 다 얼고 까마중 열매만 덩그라니 남았던데, 어미와 새끼들 잘 피했는지...
울 텃밭의 얼갈이나 달랑무는 크든 작던 다 자란 거 같으니 졸업식을 거행해야 한다. 다친 손가락 실밥을 아직 풀지 않아 다듬기만 겨우 가능할래나. 솎은 것도 그이가 손질까진 해 왔다. 깨끗이 씻어 물김치라도 담아야 할 텐데... 얼음 땡 놀이하듯 얼음하고 있다. 식구들이 도와주고는 있어도 하나하나 다 모르니 할 일이 태산이다.
배추, 무를 심은 지 100일은 지나야 저장용 김치로 아삭 아삭이라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조기 졸업당한 녀석들, 쉬이 물러지지 말고 내년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올 때까지 잘 익은 묵은지 역할까지 임무 완수 잘하길.
기후로 인해 농작물이 피해 입는 걸 보니 우리들 생명과도 바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거 같다. 그렇다면 기후의 온도가 조금이라도 올라가는 일을 보태서는 안 될 거 같다. 나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