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비휘 Oct 21. 2021

구두 굽갈기

관심갖고 신경 쓰기.

온몸의 묵직한 무게를 떠안고 어디로 걷고 달리든 제각각의 소리 내며 따라다니는. 삐끗 미끄러질 듯하여 발아래 구두 밑을 봤더니 뒤축이 닳아도 너무 닳았다.


아파트 정문만 나서면  작은 콘테이너 구두 수선하는 곳. 매일 그 앞을 지나다니건만, 그곳을 들어가지 못했다. 맘먹고 들어갈라치면 그 좁디좁은 공간 안 수선에 필요한 재료만도 한 가득일 텐데,  동네 어르신들 사랑방인가 빼곡히 앉아계시니 그냥 통과다. 어떤 날은 불이 켜졌어도 사장님이 안 계셔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시간만 속절없이 흘렀다.


구두 굽이 좀 닳았다 하여 신발의 기능이 영 사라진 것도 아니라 무심코 여러 날이 지나버린 거다.


퇴근길, 더 이상은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 잊지 않고 구두 수선실의 작은 문을 두들겼다. 저녁시간이라 어르신들도 다들 집으로 가셨는지 수선 사장님만 계셨다. 첫 방문인데, 칠순은 넘어 보이시는 사장님께서 돋보기안경 너머 쳐다보며 여쭤보신다.

“그동안 미끄럽지 않았어요?”

구두 밑 중간 굽이 플라스틱이라 닳았을 때 엄청 미끄러웠을 텐데, 어떻게 신고 다녔는지 의문스럽다는 표정이신 듯.


구두 수선일은 30년 넘으셨고, 지금 자리에서 20년이 넘으셨다니. 작은 공간이 도로가에 있으니 먼지는 뽀얗게 앉았고, 수선에 필요한 물품들도 여기저기 꽉 차 있는 곳. 장인정신없으면 아무나 할 수 없을 거 같은 끈기와 인내, 꾸준함,


사장님께선 신고 있던 신발만 봐도 그 사람의 성격이 훤히 보이신단다. 어떤 일이든 한 분야에 오래 몸담고 일하시는 분의 책만 읽어 아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경험치로 알아내는

내공과 통찰력이 아니겠는가.


신발은 뒤축만 닳는 줄 알고 있었는데, 앞부분이 뒤축보다 더 많이 닳아오는 사람이 있단다. 십중팔구 성격이 아주 급하다는 거. 남자들 중 뒷부분을 꺾어 신는 사람도 급한 성격이긴 마찬가지라신다.


깔끔하고 정갈한 사람은 신발에서도 드러난다는데, 굽이 많이 닳기 전에 방문하거니와 구두가 반짝이게 꼼꼼히  닦아주고 잘 챙긴다는 거.


덜렁대고 칠칠치 못한 사람은 신발도 꼭 주인을 닮아 꼬질꼬질하다는 것이다. 어찌나 맞는 말씀이신맘을 콕콕 찔러댔다.


이 엄청난 무게를  그  작은  신발이 떠받들고 다니는 것만도 부담 주는 일이다. 그 수고를 조금이나마 생각한다면 잘 다듬어 닦아 주는 일은 귀찮아하지   당연히  신발에게 주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 듯.


무관심, 무신경하게 신고 다녔던 나의 신발들이여!

매거진의 이전글 패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