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비휘 Nov 05. 2021

김치 명인의 길은 멀고나.

나도 김치 맛있게 담그고 싶은데...

달랑무를 뽑아 놓긴 했건만, 내 손이 들어가지 않는 한 그대로 방치상태가 되어있다. 토요일 근무할 땐 그이 혼자 다녀온 뒤 수확물이 시들까 봐 씻어 1회용 비닐로 덮어놓기까지 하더니만. 내가 토요근무를 하지 않은 뒤부턴 수확해 와선 나몰라라가 되어버렸다.


맘 같아선 뽑아오던 그 순간, 깨끗이 씻어 맛있게 달랑무 김치를 담아보고 싶었다. 가운뎃손가락 여섯 바늘 꿰맨 뒤 부자유스러움이 많은 걸 멈칫하게 만들었다. 살짝이라도 닿으면 화들짝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는 거다. 아직 건들면 안 된다는 신호일 터.


하루 이틀째가 되자, 무와 순무청 이파리가 누래지기 시작했다. 텃밭에서 싱싱한 초록 잎들만 다듬어 왔고, 누런 잎이 없었는데... 하루 이틀 사이 색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주방을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누렇게 변하는 것이 눈에 보여 맘이 편치 않았다.


모처럼 휴가 받아 하루 쉬는 따닝한테 씻어줄 것을 부탁하고 출근했다. 재래시장에 들러 김치 담글 재료를 사들고 와 절일 생각이었다. 씻기는커녕 싱크대에 담아둔 그대로 있었다. 어떻게 다듬고 씻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단다. 밭에서 날 것으로 왔기에 흙이 잔뜩 묻은 것을 어떻게 씻어 다듬어야 할지 나도 마찬가지라 아무 말도 못 했다.


손가락 실밥을 풀긴 했지만, 내 살 같지 않게 퉁퉁 부은 느낌과 건들리면 찌릿찌릿한 느낌에 맘대로 움직일 수 없으니. 아파보니 손가락 하나도 참 쓰임이 많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사정이 이러니 평소보다 느린 속도로 살살 씻어 나갔다.

양념할 마늘도 까고 시장에서 갈아온 생강도 넣어 새우젓과 엄니 주신 액젓을 넣어 버무렸다. 제일 쉬운 게 달랑무 담그기라는데, 김치를 담그지 않다 보니 어렵다.


곧 김장하러 어머님 댁에 갈 건데, 텃밭에서 수확해 온 달랑무가 아까워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거.


달랑무가 김치로 탈바꿈되는 순간이다. 갖은 김치 양념 버무린 것에 소금 절여 건져 놓았던 무를 버무리니 때깔이 곱고 먹음직스러운 김치가 완성되었다. 맛있게 익기만 하면 될 거 같았다. 내친김에 남은 양념에 쪽파김치도 버무렸다. 완전 성공적인 파김치 맛이다.

퇴근해 온 그이 저녁밥상에 파김치와 달랑무를 담은 걸 올렸다. 보기만 맛있어 보이는 거 같다고. 맛은 생각한 깊은 맛이 아닌가 보다.


고등학교 수학 선생인 친구 미정이는 프사 알타리 사진이 넘 맛있어 보인다며 연락 왔던데, 보이기만 그런 걸로.


맛나게 익히려고 냉장고 밖에 내놓은 달랑무가 덜 절여졌나. 물이 자꾸 나온다. 빨갛게 먹음직스럽게 보였던 때깔은 어디로 가고, 희멀건 색이 보이는. 김치 인의 길은 멀고도 멀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랑무 담그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