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김장배추에 무름 병이 찾아와 수확도 못해보고 뿌리가 썩어간다고. 배추의 수확량이 얼마 안 되니 값이 계속 오른다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 이 맘 때면 가을배추, 무의 싱싱함과 푸르름으로 주말농장에 들어설 때 두 눈과 맘이 시원했었다. 한데 이번엔 다른 거다. 한 번의 큰 추위와 잦은 가을비로 작년까지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듯하다.
학생들은 우수한 성적으로 조기졸업이 가능하다지만, 올 배추들은 강제 졸업을 당했다고 하는 게 맞을 거다. 더 뒀다가는 계속 썩어 들어 한 잎도 건질 수 없기에.
그 이가 주말농장을 오가며 배추, 무를 심은 지는 4년 차. 수확 때는 함께했지만, 내 손으로 무와 순무 씨를 뿌리고 배추 모종을 거든 것은 처음이다. 모종을 빼곡히 심어 배추가 자라지 못한다며 그 이가 투덜거렸다.
유난히 우리 집 배추가 크지 않을 뿐 아니라 여기저기 누렇게 변해가고 있어 그런 줄 알았다. 약간의 원인이 다른 곳에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무식하고 무대뽀로 인한 것만은 아닌 것에 대한.
올해는 예년과 비교도 안 되게 배추와 무밭이 을씨년스럽다. 가을걷이 끝난 논처럼 듬성듬성 남은 배추와 덜 자란 배추와 무가 자리하고 있는 게 여간 안쓰러운 게 아니다. 그 와중에 달랑무와 순무는 이파리가 바래져도 뿌리를 키우고 있는 게 대견스러웠다.
주말농장 주인장께서 텃밭 손질하고 있는 우리들 가까이 오셨다. 달랑무 뽑아가야 한다며 일러주러 오신 거였다. 더 둔다고 해서 맛이 더해지는 게 아니라며. 지난주 뽑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번에도 그냥 갈 거 같아 오셨다는 거다. 말씀 안 해 주셨으면 더 두는 것은 당연했을 터.
고구마 농사를 짓지 않은 우리에게 큰 고구마 2개를 주시겠다며 달려가서 가져오셨다. 고구마가 아니라 큰 무만큼 크다. 졸망졸망 크기 비슷한 고구마를 상자째 사다 먹고 있는 우리는 그 크기에 놀라고 주인장의 인심에 고마웠다.
넉넉히 뽑아온 맛있는 달랑무 담그기 도전장을 내밀어야겠다. 김장 때까지 맛나게 먹을 수 있는 달랑무 담그기. 맘은 이미 양념 만들어 버무리고 있건만, 손가락 실밥을 이제 풀었다. 손놀림이 아직 자유롭지 못하니 어떤 맛이 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