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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Nov 01. 2021

'거슬러 여행'을 떠나다

가끔씩 가슴에서 서걱거리는 소리가 날 때

조금 특별한 여행을 다녀왔다. 얼마 못 가 자주 멈칫멈칫거리는 발걸음을 떼어놓듯.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며 매만지고 쓰다듬고픈 일들이 많았기에 그랬을 터.


계획했다기보다 즉흥에 가까운 여행이었다. 그이가 재택이 생기면서 업무 보는 환경을 30년 만에 보게 됐다. 컴퓨터와 거의 한 몸으로. 오른팔을 주로 사용한 탓인가 어깨가 아프고 불편하다했다. 시간 내서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단다.


‘잠자리가 불편한 걸까.’

침대를 바꾸기로 큰 맘을 먹은 거다. 한두 푼 드는 게 아니라 새 침대로 바꿀 계획은 2년 후였었다. 아픔과 불편함이 사라질 것을 기대하며 앞당기게 된 거.



안방 재정비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한창 공부할 시기엔 TV 없이 거실 전체가 책장이었지만. 이 아파트로 이사 오며 TV가 중앙 자리를 차지했다. 아이들이 자라며 공부하는 동안 그이의 사랑하는 TV보기를 참기라도 한 듯. 퇴근해 오니 큰 화면이 떡하니 거실 중앙에 보란 듯이 달려있는 것이다.


아이들도 다 컸으니 그 이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내버려 뒀다.


그 많던 책들은 이사 올 때 나누거나 정리하고, 나머지는 분산하여 방방이 들여보내 졌다. 안방에도 책장 두 개가 들어가야 했다. 누가 와도 들여다 볼일 잘 없는 안방엔 꽂아도 별 폼 나지 않는 자료집이나 악보집. 앨범 등이 꽂혔다. 침대를 바꾸면서 키다리 책장 하나를 비워내야 했다.


책장이라 책만 있는 게 아니라 끄덕이던 기록들이 있으니 이게 좀 시간이 걸리는가. 뭐라고 썼는지 넘기다 읽는 것만도 시간이 걸렸다.


새 물건이 들어오기 전, 오래 묵었던 짐들과 매만짐을 통해 작별을 고하는 의식이랄까. 그이는 5분이면 끝날 것을 몇 날 며칠 붙들고 앉아 뭘 하는지 모르겠다며 구시렁거렸지만.


이게 어디 쓱싹쓱싹 치워 없앨 물건이란 말인가. 어린 날과 젊은 날이 고스란히 녹아든 꿈, 사랑, 슬픔과 아픔, 고뇌가 한 줄 한 줄 스며든 것들 사이로 빠르게 스쳐 지나고 싶지 않았던 거다.


마을버스를 탄 듯 곳곳에 멈출 때마다 내렸다 탔다를 반복했다.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넷의 식구가 늘어나는 모습도 보이고. 심리상담사 1급과 암사동 문화해설사 등 일이 끝나고 저녁시간, 주말 등 빠꼼한 날이 없을 정도로 부지런히 쫓아다닌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앨범 속에 있던 쪽지가 톡 떨어졌다. 그이의 대학 졸업 때 지금은 돌아가신 시아버님께서 선물로 주셨던 반지 선물. 동네 가장 친했던 불알친구와 함께. 문구를 보니 계시는 것처럼 아버님의 맘이 그대로 남아있다.



언젠가 찾아도 보이지 않던 쪼꼬미들을 향한 무지개 나비 이야기.

입학한 아이들을 떠올리며 썼던 거 같은데, 사랑이 퐁퐁 샘솟다 못해 넘쳐흘렀다. 그때 이야기 속 콕콕 박혔던 보석처럼 빛나는 이름을 보니 한 명 한 명  되살아 났다. 잊힌 것이 아닌 기억 속에 잘 저장되어 있었던 거다.


아이들이 가끔씩 그려준 인물 속에는 그 시절 젊은 선생도 웃고 있다. 나도 같이 빙그레 입이 벌어졌다. 그림 속 인물은 그때 그대로이다. 요즘 그려주는 모습은 그때보다 나이를 훨씬 먹었다. 아이들이 따내는 인상착의가 놀랍도록 정확한 것이다.

불편한 손가락 덕분으로 더 천천히 정리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또 언제 찾을지 모를 곳에서 머무르는 동안 아련한 그리움에 맘이 말랑말랑해졌다. 한 동안 촉촉해진 맘으로 일상을 윤기 나게 살 수 있을 거 같은 거꾸로의 여행.  


살다가 서걱대는 소리가 날 땐 또 찾게 될 여행지. 

돌아돌아 굽이지듯 느릿느릿 찾아갈 테지만, 맘 달래주고 무장해제 시켜줄 공간이 있다는 건 삶의 축복임을 알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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