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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Nov 20. 2021

본인이 출연하십니까?

그런 일은 글쎄올시다.

어디에 눈길을 두던  두 눈이 맑아지고 마음이 깊어지는 계절, 가을이다. 주방 쪽 창으로 내려다보이는 대학 캠퍼스는 학생들이 오가지 않으니 이 좋은 계절도 휑하니 텅 빈 논 같다. 학생들 못 만나는 아쉬움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들. 때가 되니 이파리를 물들이다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다 떨어지고 가라앉는 나날이다.

학교에서 흘러나오는 안내방송, 음악방송, 열띤 응원가, 가끔씩 목청 높여 외치며 울려대는 사물놀이 소리까지 그리운 계절. 오가는 싱그러운 학생들만 봐도 좋았는데...


 그런 텅 빈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마을마다 동네마다 지역 주민을 위한 가을음악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휴대폰으로 온 안내 문자를 통해 사전접수를 받는단다. 야외에서 하는 공연이긴 하지만, 시기가 그러니 한정된 인원만 펜스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어어 하며 들어갔다 나왔다 할 때 접수 끝나버리고 말 텐데...

손놀림 빠른 아드닝한테 부탁의 손길을 내밀었다. 역시 접수하는데 성공이다.


토요일 오후 시간을 기다렸다. 볼 일을 보고 그이보다 나중에 도착된 나는 기둥에서 잘 보이지 않는 구석탱이. 앞부분엔 촬영하는 사람까지 가로막고 있다. 다행히 먼저 도착한 그이가 무대 바로 보이는 앞자리. 내 자리랑 바꿔줘서 출연한 분들을 맘껏 볼 수 있는 열정 넘칠 자리에 앉았다.


  조명 빛을 비추며 축제 분위기를 더 내려고 저녁시간 잡았을 텐데... 어둠이 내리면서 추워서 사회 보는 분의 발음이 꼬이기도 한 날. 정장 차림의 얇은 원피스를 입었으니 더 떨렸을 거다. 낮동안 약간 더웠기에 가볍게 입고 갔다가 나눠준 무릎담요를 덮고도 덜덜 떨리긴 했다.


하지만 그런 건 큰 문제 되지 않았다. 맑고 투명한 가을 닮은 박강수 님의 목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뻥 뚫렸으니. 박강수 님은 송파구청에서 보고 들은 적이 있어 더 반갑고 좋았다.


맘 좋고 털털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송창식, 연세는 있으셔도 표정이 환하고 노래를 정말 사랑하신다는 느낌. 우리가 젊은 날 많이 듣고 불렀던 노래를 직접 듣는 행운이라니. 목소리의 우렁찬 힘이 공원 곳곳을 뚫고 들어가는 듯했다.


 부드럽고 섬세한 추가열. ‘나 같은 건 없는 건가요.’ 란 노래를 TV에서 들을 때면 애잔하고 슬퍼서 소리 없는 눈물 흘리며 들어야 할 거 같은 목소리.


마지막에 화려한 무대를 장식한 가수는 불후의 명곡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힘 있고 파워풀한 에일 리. 그것도 살고 있는 동네 숲길 공원의 무대에서 보다니 꿈만 같았다.

예쁘고 빛났다. 가운데쯤 젊은 청년의 목소리가 높은 하늘을 뚫고 들어갔다. 그 환호하는 목소리에 우리 모두 즐거이 웃었다. 그 우렁차고 기운찬 목소리도 아름다운 에일리만큼 좋았다.

공연장 오기 전, 유명인들이 날 보러 오기라도 한 것처럼 무슨 옷 입을까. 이 옷도 저 옷도 맘에 안 들어 벗었다 입었다 하는 내 뒤 꼭지 대고 울 따닝 하는 말이라니.

“본인이 출연하십니까? 누가 보면 본인 무대인 줄 알겠습니다.”


울 따닝 잘 나가다 한 번씩 삼천포로 빠지는 팩트를 날린다.

누가 들어도 맞는 말이라서 속으로 웃지만, 밖으론 삐진 체를 하며.

따닝 말대로 내 무대도 아니기에 아무도 날 보는 이 없었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친 것처럼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한 거였다.


야외에서 하는 밤 공연은 뭐니 뭐니 해도 따뜻하게 입고 가는 것이 가장 훌륭하고 현명한 옷차림이다. 낮 시간 아무리 따뜻하고 더워도 일교차가 커서 추우니까. 밤에는 으슬으슬 이슬도 내려오는 거 같던데.


유명한 가수들의 노래와 춤으로 가슴이 벌렁거렸지만, 내 가슴을 더욱 뜨겁게 했던 것은 사회 보는 그 언저리에서 노랫말을 수화로 통역해 주신 분. 노랫말에 따라 표정 변화도 같이 살려주셔서 좋았다.

아름답고 좋은 노랫말로  아이들이 재롱발표회 때 수화로 공연하기도 했지만, 공연하는 가수 옆자리 서서 수화를 하는 건 처음 본 듯하다. 작은 배려에서 오는 마음씀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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