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고 없어질 위기에 놓인 걸 그 자리 그대로 존재케 한다는 건 그냥 이루어지지 않은거였다. 보이지 않게 때론 보이게 소리치고 발버둥 치며 끝까지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끈질긴 집념과 아우성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는 것을.
동네든 마을이든 고유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 집 주변을 개발로 파헤쳐져 몇십 년 또는 백 년 넘게 쭉쭉 뻗어 올린 나무를 베어내지 못하게 막아낸 것이다. 그 목소리 주인공이기도 했던 마을 해설가의 말씀을 들을 땐 용감한 독립투사처럼 위대해 보였다.
거대한 건물이 우뚝우뚝 올라가는 그 공간 속에서 최소한의 숲을 살려내기 위해 목소리를 크게 내었다는. 어느 계절이든 찾아가서 맘 내놓으며 보여도 환히 웃거나 같이 울며 다시 추스를 수 있는 힘을 주는 곳. 그 숲이 원래부터 있었고, 아무 일없이 지금까지 잘 관리되고 있구나만 생각한 것이다. 삭막하고 더 건조하게 변할 게 뻔한 걸 내버려 둘 수 없었기에 거리로 띠를 두르고 나왔을 터.
지금이야 그 길을 즐기며 오가는 이들을 볼 때면 지켜내길 잘했어. 스스로 뿌듯해하는 시간일 테다. 몇 년째 마을을 알리고 해설해 주는 봉사로 살아가는 것만 봐도.
돌 의자 하나, 철길 침목 하나 버리지 않고 숲 속 마당 곳곳에 놓여있다. 다 숨은 공로자들의 손발이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일 게다. 해설사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다 구청에서 알아서 할 거다란 안일하고 게으른 생각으로 지냈을 터. 덕분에 알게 되어 가슴이 뜨겁고 그들의 노력과 헌신에 뭉클함이 올라왔다.
이 동네에 있는 집을 알아보러 왔을 땐 4년 전 수능 전날, 고3 여학생은 다음날 수능시험을 위한 마지막 점검 중인 듯했다. 수험생, 그것도 바로 내일 수능이 있음을 알고는 대충 둘러보았지만, 학구적인 집 안 분위기에 이끌렸다. 아버님이 대학교수 시다는 중개사의 말을 들은 후일 수도. 찬바람 불고 어둑한 시간이라 주변을 둘러볼 여유 없었다. 주방 창으로 내다보이는 아드닝의 학교 운동장과 본관 건물이 보여 휴가나 제대해 나와 보일 아드닝의 반응이 살짝 궁금했을 뿐.
집 앞에 있는 철길 주변을 꽃길과 카페로 점점 운치 있게 변하고 대학 주변이니 젊은 연인들이 항상 오가는. 사람이 푸르고 싱싱한 마을이 좋다고만 생각했다.
해설사는 청소년문화센터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기도 하셔서 마을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나라 안팎의 상식 수준을 벗어난 소식, 인생전반에 관련된 이야기까지. 자주 마음속 밑까지 울림이 전달되었다.
참가자 중에는 초등학교 3학년 남학생이 젊은 엄마와 참여하였다. 대부분 연세 있으신 분들 속이라 눈에 띄었다. 역사에 관심 많은 엄마가 어르고 구슬려 데려왔겠지의 생각은 1초 만에 사라졌다. 그 학생의 요즘 보기 드문 태도에서 말이다. 적극적으로 해설사 분께 질문을 하고 얼마나 주도적으로 임하는지. 어르신들께서 모두들 한 말씀하실 정도였다.
“허허, 학생이 신통방통하구먼. 장차 큰 사람 될 인물일세!”
안경 낀 뒤로 보이는 눈빛이 정말 초롱초롱거렸다. 칭찬을 하실 때마다 아이 엄마는 한 발짝 떨어져서 빨개진 얼굴로 웃기만 하셨다. 그 웃음 속에는 대견해하는 맘도 느껴졌다.
다들 아들을 어떻게 키웠기에 저런 태도와 모습이 가능한지 신기한 듯 물어보셨다. 책을 좋아하고 공부하는 걸 정말 즐긴다며 수줍게 말했다. 우리나라 말이 서툰 엄마, 10여년 전 베트남에서 한국 온 뒤 결혼한 엄마였다.
“우리 엄마도 그거 잘 알아요. 선생님이거든요. 베트남 강사. 강사는 선생님이잖아요.”
엄마 이야기를 할 때도 목소리에 당당한 힘이 있어 베트남어를 잘한다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한국말 서툰 것은 아무 문제 없어 보이고,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
구간마다 해설사님이 해설을 할 때면 이야기를 잘 듣다가 아는 것이 나올 땐 대답도 크게 잘했다. 걷는 구간에선 해설사님 옆에 붙어 일대일 질문에 돌입하는. 엄마는 그런 아들의 행동을 보며 저 멀리 가만히 뒤따르기만 했다.
거닐다 숲 속 마당에서는 시인 분의 시낭송 시간도 가지고 직접 시를 쓰신 분이 자작시를 낭송할 땐
심장 가까운 곳을 두 손으로 눌러줘야 했다.
찡하면서 뭉클한 묵직함이라니. 플래카드 제목 그대로 고급진 가을 분위기의 인문학 산책이었다.
그 어린이는 역사학자가 될 꿈이 있지만, 음악과 과학을 좋아한다는 걸 큰소리로 말했다. 어린이 한 명이 일행 모두의 발걸음뿐 아니라 맘을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기특함과 영특함 대견함과 다부짐을 다 갖춘 열 살 어린이.
‘이다음 크게 될 인물 분명할세!’
어머니 손에 이끌려 나온 게 아니라 자기가 나서서 어머니를 이끌어 오는 어린이라니. 볼수록 기특하고 든든한 어린이로 해설이 있는 마을산책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 모습에 앞으로 더 크게 생길 에너지를 더해 간다면 분명 큰 인물은 따놓은 당상.
저녁에 고3 아들 수능 끝나서 만난 중국 동생은 카페가 많은 동네에 살아서 감성이 말랑하고 촉촉한 언니로 변하냐는 말을 했다. 우와, 동네를 잘 만나는 영향도 큰 거구나 싶다.
경춘 숲길이 있고, 화랑대역의 기찻길만 있는 곳에 시계박물관과 기차가 있는 풍경 카페가 생긴 곳.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육군사관학교, 서울여자대학교, 삼육대학교가 있는 마을 아름다운 공릉동.
사람 향기가 꽃향기보다 더 진한 향이 나는 마을, 공릉동! 해설사님의 찬찬하면서 깊이있는 설명으로 더 많이 애착이 가는 마을 공릉동에 놀러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