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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Nov 29. 2021

꽃눈, 이미 사랑은 시작됐다!

온전한 열매로 보답해 주길.

물기 마른 나뭇가지에 매달린 이파리도 바짝 말라있다. 사과는 돌보고 가꾼 주인장 축복의 두 손에 얹어졌을 테다. 이 맘 때면 우리는 사과 농장으로 달려가곤 한다. 우리 친척이나 인척이 있는 것도 아닌 온전히 사과를 사기 위함이다.


맨 처음 사과농장을 찾은 건 우연히 오가다 만났다고 하는 게 맞을 듯. 울산 살던 우리가 진해 어머님 댁을 오갈 땐 울산과 밀양을 이어주는 울밀선을 주로 이용했다. 고속도로는 꽉 막혀 꼼짝 않을 때가 많다. 울밀선은 굽이진 산골이라 돌아 돌아가야 하는 길이라도 막힘없이 쉬엄쉬엄 갈 수 있어 좋았다.


사시사철 변화하는 산과 산, 계곡이나 밭작물을 내다보는 즐거움도 한 몫했을 테고. 밀양 얼음골 근처에 이를 때면 사과향이 진동하는 거 같았다. 대롱대롱 매달린 사과밭을 지날 때면 농부만큼 흐뭇했다.


수확철을 맞닥뜨리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싱싱한 사과를 사러 일부러 찾아가기도 했으니까. 그런 맛에 길들인 덕분인가. 우린 서울 와서도 사과 철이 되면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이다. 사과는 농장 가서 사 먹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산책하다 집 근처 사과밭을 발견하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멀리 가지 않고 집 근처 농장에서 사 먹을  기대감에 부풀었다. 추석 무렵이 되자, 직접 농장 사과를 따서 판다는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학수고대하던 시간이라 그이와 함께 갔다. 보름 간격을 두고 종류별로 사과 수확을 한다고 했다. 처음 나온 사과를 사서 먹었는데, 스펀지를 씹는 듯 퍼석퍼석했다. 그다음 나올 사과들도 마찬가지 맛이 아닐까 싶어 선뜻 사기가 꺼려졌다. 그이는 서울과 맞닿아 있는 곳이라 사과가 자랄 기후가 맞지 않았을 거라고  한다.


그이는 집에서 1시간 이상 가야 하는 가평의 사과농장을 찾아내었다. 수확을 끝낸 나무들은 할 일을 다 끝내고 쉬는 듯 보였다.

사과를 다 따낸 저 나무들 군데군데 매달린 저것은 무엇이던고. 작은 장난감 같은 게 달렸는데, 가까이 가 봐도 알 수가 없다. 결코 가볍지 않은 중요한 임무를 가진 것에는 분명해 보였다.

사과를 사면서 농장주께 여쭈어 보았다.

“아, 저거요? 나무들은 가지를 위로 뻗어 올리는 성질이 있어요. 과실나무는 위로 올라가면 꽃눈이 잘 생기질 않아요. 그럼 사과가 많이 열리지 않겠죠. 가지가 위로 올라가지 않고 옆으로 뻗어 가며 수평을 맞춰주기 위한 추의 역할이지요. 저것 보세요. 꽃눈이 많이 생겼지요?”

꽃눈을 자식 자랑하듯 말씀하시는데, 사실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잘 보이는 듯 호응해 드렸다. 사과만 파는 것에 급급해 않고 궁금한 걸 저리 열심히 설명해 주시는 주인장의 맘이 고맙고 감사해서 말이다.


사과나무는 주인장의 정성 어린 손길에 맞춰 내년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꽃눈으로.

그 꽃눈이 열매 맺어 온전한 사과로 딸 때까지 농부와의 눈맞춤은 수천번도 더 될 것이다. 이미 사랑은 시작된 것이다. 시시 때때 변하는 기후변화는 얼마나 주인장의 애간장을 녹일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나와도 첫 눈맞춤 했던 그 꽃눈들 사과로 농부 두 손에 폭 안기길 빌어보며. 아삭하고 달콤한 사과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고맙고 감사한 맘 함께 꿀꺽 삼키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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