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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Nov 29. 2021

만원의 행복

잘 쓰면 금빛, 못 쓰면 똥빛

산책길 저기  눈앞에 카메라가 여러 대 있고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다. 무슨 촬영이 있는 모양이다. 대본인 듯 A4용지를 든 사람이 왔다 갔다  한쪽에선 말쑥한 차림의 젊은 청년이 연신 머리 손질을 받고 있다.

드라마 주인공 역할을 맡은 듯한데, 잘 모르는 사람이다. 아는 사람 빼고 다 모르니 어느 순간 모르는 인물이 더 많아졌다. 조금 지켜볼까 하다가 이내 맘을 접었다. 언제 시작할지 모르고 빨리빨리 가 안 통하는 시장처럼 보였으니.


지방 살던 우리가 서울로 이사 온 지 15년이 넘었다. 잠실 살거나 광장동 살 때 지금 공릉동에 살 때도 서울시임은 분명한데, 특별한 걸 느끼지 못하겠다. 차를 타고 조금만 벗어나도 어머님 댁보다 더 시골스러운 곳들도 많으니. 서울은 다 도시적이고 세련되며 교양 넘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일 거라는 막연한 환상에 젖어 살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여기가 서울이구나를 느낀 적이 두 번 있다. 첫 번째는 서울역에 처음 내렸을 때 고개를 있는 대로 뒤로 젖혀야 높은 건물 꼭대기를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높은 건물 본 적이 없는 우리들은

“우와~ 우와~”

시골 촌뜨기 푯대를 있는 대로 내풍기며 두 눈을 휘둥그레 돌리며 얼떨떨했던 기억이 난다.


또 한 번은 심심찮게 TV에서 등장하는 인물을 직접 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길가다가 우연히 촬영 현장을 마주하거나 백화점엘 갔다가 사람들이 유난히 둘러싸인 곳을 가보면 유명 연예인의 팬사인회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꽉 찬 사람들 몸 사이 두 눈을 디밀고 들여다보는 현장은 연예인이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미모 뒤로 빛나는 후광에 눈부셔하곤 할 때 서울이니 가능한 일이었다.


몇 년 전 여름 저녁 퇴근길이었다. 집 앞에는 아시아선수촌 공원이 있었다. 나무들과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어 그런지 웨딩 촬영도 잦고 드라마 촬영도 이루어진 다고 말만 듣던 때 촬영장을 마주한 거였다. 가까이 가보니 아침드라마를 찍고 있는 현장. 남자 주인공 역할엔 중년배우 박상원. 젊은 시절부터 알던 배우라 반가웠다.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것인지 산뜻함은 없었다. 그래도 드라마 속이나 진행자로 봐 오던 사람을 직접 보다니. 스텝들은 너무 가까이 가서 볼 수 없다며 저지를 하였다.


상대 젊은 여배우와 한 신을 찍는 듯한데, 몇 번을 다시 하는지 참 어렵고 쉽지 않은 직업이구나를 생각한 듯하다. 더운 여름 저녁이라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것도 같았다. 촬영이 끝나자 스텝 중 한 분이 박상원 배우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던 터라 원하는 바 아니었지만, 배우에게 관심을 보였고, 예의라는 게 있을 터. 거부할 수 없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뒤돌아서 나오는데, 자두를 파는 과일 트럭이 보였다. 자두 만원 어치를 사서 스텝들에게 전해드렸다.

전해줌과 동시에 그 많은 스텝들의 한 목소리

“감사합니다.”

그 현장이 떠나갈 듯한 우렁찬 소리에 기분이 정말 좋았다.

‘만원의 행복이 이런 것이구나!’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드는 현장을 직접 보고 나니 스르륵 지나쳐 봤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들어 있었는데, 저리 큰 목소리로 인사를 받다니.


내가 쓴 만원에  비해 더 큰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 지칠 대로 지쳐있는 그들에겐 일상일 수 있는 시간들이었을 터. 자두 한 봉지가 뭐 대수였겠는가. 지나가던  행인에  불과했을   낯선이가 그들의 고생과 수고로움을 알아주는 듯하니 눈물겹고 감동받은 목소리를  타고   감사의  인사가  나왔을 터. 내 등 뒤로 타고 내렸던  그 기분 좋은 소리! 아직도 선명하다.


돈 만원에 맘을 담아 제대로 쓰고 났을 때의 기분좋음, 기쁨을 그 때 맛보았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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