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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Dec 17. 2021

꾸러기들

축복있기를.

글은 잔잔하던 맘을 뒤흔들어 뭉클하고 울컥하게 하는 힘이 있다. 서로 각자 바쁘게 맞물려 돌아가는 루틴 속에서 잠시 틈도 주지 않는 일상.

고운 선생님 얼굴을 마주하니 나도 모르게 엊그제 썼던 글이 생각나 휴대폰 속의 글을 찾아 선생님 눈앞에 살짝 내밀었다.


겨울 방학이 가까워오고 유치했던 유치원을 졸업하고 곧 초등생이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일까. 일곱 살 아이들은 유난히 방방 떠 있고 지지리 말 안 듣는 녀석들 곱절로 늘었다. 덕분에 선생님은 몇 배로 힘이 든다.   나또한  예외가 아니다.


휴대폰의 글을 내민 것은 아이들의 하늘만  높은 줄 알고 뻗쳐오르는 기운에 반비례하는 고운 선생님을 북돋우고 싶은 맘도 있었으리라.


선생님께선 빠른 스케치 하듯 쓴 글을 한 줄 한 줄 새겨보듯 읽더니

“히잉, 선~생~님 너무 감사해요.”

분위기 있는 음악이 촤르륵 깔렸다면 그 맑은 두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흐르는 걸 볼 뻔했다.


“선생님, 저한테 주세요. 평생 간직할 거예요.”

아이처럼 조르는 모습이 귀엽다. 옆에서  막 수업 끝내신  엘레강스한 미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뭐예요? 감동받고 울컥하는 그런 거 저도 느끼고 싶어요.”

“아이, 별거 아니에요. 글 써서 보여줬더니...”

“그 어려운 걸 또 할 줄 안 단 말이에요?”

“미술 선생님께선 제가 젤 어려워하는 그림과 관련 작품을 손끝만 닿아도 척척 만들어 내시는 걸요. 울 미술 선생님께도 기회 되면 써 드릴게요.”


말은 그렇게 했는데, 이게 맘이 같이 움직여야 글도 써지는 거라서 눈과 맘에 들어오는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 아이들만큼 사랑받고 관심받고 싶어 하는 건 어른들도 똑같아서 서운하거나 삐지게 하면 안 되는데.


아무튼 한지랑 잘 어울리는 고운 선생님께는 파스텔 톤 한지로 뽑아주고 싶다. 고운 선생님께서 다른 선생님께 자랑이라도 하는 날엔  원에 계시는 모든 선생님께 써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럴  땐  그 동안의  경험치를  녹여내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로  나보다 젊은이들에게  힘든 일을  거뜬히 해낼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는 일이 된다면야.  


글을 중간쯤 읽어가다 우리 아이들이 대학생 되어 유치원 선생님과 재회했다는 대목에서

“선생님, 저도 우리 반 아이들이 이 담에 커서 대학생 되면 만나서 한 잔 하는 게 꿈이자 로망이에요. 근데, 이 녀석들이 저를 기억 못 할 거 같아요...”


‘선생님도 그런 작은 꿈을 꾸고 계셨구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선생님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꾸게 되는 큰 소망 같은 꿈이 아닐는지.



선생님께선 끝까지 읽고 나더니

“아이들한테 큰 소리 낼 때 많은데, 선생님께서 좋은 점만 봐주신 거예요.”

아이들한테 화내면서 큰 소리 낼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말씀하시는 듯하다.

그 맘이 어떤 뜻인지 알아차리고도 남음이다.


젹어도 선생님께서 왜 큰소리 내어 말하는지

아이들한테   대놓고  마구 화내지는 않지  않던가.


자기 뱃속으로 낳아 기르고 계신 부모님들조차 하루에 몇 번이고 윽박지르고 소리칠 때 많은 것을. 한두 명도 아닌 스무 명이 넘는 반 아이들. 거기다 개성과 취향을 존중하며 길렀기에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대들듯 따져 물어오는 말부터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해서는 안 될 행동보면서 가만히 둔다는 건 게으름과 방치하는 것에 해당될 터.


조근조근 알아듣게 얘기해서 그대로 따라주는 아이가 있다면 아이라고 하기보다 애늙은이가 아닐까.

돌봐주시는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면서 쪼브라 들 때마다 한 뼘씩 커가는 게 아이들일 테니.


휘이 한 번 둘러보지 않더라도 오며 가며 눈에 들어오는 선생님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이 둘을 다 키우고 난 뒤의 여유일까, 욕심일까.

맘이 동해서 글은 자동으로 쓰게 될 터이니. 그럼 아이들에게도 얼마나 좋을까.


어린애들

                         천상병


정오께 집 대문 밖을 나서니

여섯, 일곱쯤 되는 어린이들이

활기차게 뛰놀고 있다.


앞으로 저놈들이 어른이 돼서

이 나라 주인이 될 걸 생각하니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본다.


총명하게 생긴 놈들이 아기자기하게 잘도 놀고 있다.

그들의 영리한 눈에 축복이 있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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