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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Dec 22. 2021

보석을  보물처럼

보석이 안기려면 시간이 필요해 .

이른 아침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관문을 열어보았다.

매일같이 박스, 비닐봉지, 스티로폼에 담겨 하나쯤 택배 오던 것도 하나 없이 휑하기만 하다.


혹시나는 역시나가 된 것이다.

혹시나를 생각한다는 건 일말의 기대감이 있다는 뜻일 텐데, 아무런 이유 없이 막연한 기대감을 갖는 나도 참 황당하고 당황스럽긴 하다.


요즘 들어 나도 모르게 심심찮게 불쑥불쑥 목걸이나 반지 타령을 하고 있다. 저녁밥을 먹고 있는 따닝에게 목에 걸고 있는 보석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질 않나. 들리는 대로 티파니 에코인 줄 알았더만 티파니 앤코라고 한다.


저녁을 다 먹고 소파에 기대 TV를 보고 있던 그이를 돌아다보며 말했다.

“티파니앤코 정도면 괜찮을 거 같아.”

“내가 왜? 진주 목걸이 사다 줘도 세탁기에 넣어 갈아 없애는 여자에게.”

기다렸다는 듯 서운함이 가득 밴 목소리로  오래전 일을 기억하며 답하고 있다.


“그거 20년도 더 된 이야기야. 호주머니 잘 넣어 둔 건데, 그만...”

“호주머니에 넣을 만큼 대충 관리했단 말 밖에. 엄마 잘못이 컸네.”

그이의 전폭 지원군 따닝이 옆에서 한 마디 거든다. 이럴 때 가만있어 주면 얄밉지는 않을 건데.


“20년 전이면 월급과 출장비도 얼마 되지 않았어. 그 돈을 아껴 사다 준거야.”

그렇게 얘기하니 할 말이 없어졌다. 월급이 지금과 똑같지 않을 때란 것 알고 나니 더 미안한 맘이 컸다.

“진짜 사주기 싫겠다. 그러면서 아빠 이름으로 낼 아침 택배로 오는 거 아냐?”

따닝은 안 사준다 안 사준다 하면서 다음 날 아침 배달된 것을 여러 번 보아오던 터라 내일 아침도 그럴 일이 있을거란 맘과 이번엔 절대 사주면 안 된다에 암시가 든 듯한 투로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아직 목걸이나 반지를 갖거나 차고 싶을 만큼 간절함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따닝의 생각이었다.


“그럴 일은 없다!”

그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난 더 이상의 반박도 못한 채 아궁이 불 붙이려 쏘시개에 불 댕겨도 젖은 나무 잘 붙지 않듯.

말 불씨가 보석 선물까지 옮겨 붙지 못했다. 젖은 장작불 붙으려면 좀 더 말려야 할 시간 필요하듯 그이 서운함에 젖은 맘을 말릴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따닝은 나와 달리 귀를 뚫는 귀걸이부터 목걸이, 반지에 관심이 많았다. 직접 사기도 선물 받기도 잘하는 듯 보였다. 목걸이 보석의 이름마저 물어봐야 알 정도로 관심 없던 내가 눈만 뜨면 보석 타령을 왜 하게 됐을까. 그이의 서운함에 사무친 매정한 말을 들으면서까지.


가만 생각해 보니 애정 하는 P군의 덕분이다. P군은 남자아이임에도 보석이나 구슬 하나도 애지중지 했다. 수시로 지난번 알려준 보석 이름을 물어보거나 생일이 언제인지 자주 물었다. 같은 2월생임을 반가워하며 탄생석이 자수정이라는 것도, 탄생석의 의미는 건강이라는 것도 잊기도 전에 말해주고 있다.


보석이 반짝이며 예쁜 것을 넘어 의미심장한 뜻을 품은 가치 있고 귀한 것이라는 걸 알게  해 준 P군.

치렁치렁 거추장스러운 걸 사치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 아닌가 그동안 생각한 것이다.


금붙이, 쇠붙이라면 알러지 일으킬 정도로 멀리했던 내게 보석 이름만큼 값지고 귀한 무언가가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주었다고나 할까.


P군은 구슬 하나도 호주머니에 바로 넣지 않고 종이로 보관함을 손수 만들어  다닌다. 보석에 숨어있는 의미를 알고 반짝이는 것의 스크래치 방지를 위한 예방법으로  충분히 대우하고 있는 P군은 보석을 지니고 다닐 충분한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아직 내게 보석이 안기려면, 오래 전과 같은 전차를 밟지 않으려면 좀 더 맘의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 문 밖이 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보석을  보물처럼  여기는   맘 부터가  먼저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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