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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Dec 27. 2021

나의 품과 폭을 키울 일이다.

재미,  흥미, 감탄과 탄성이 절로 나오게

“히잉, 얼마나 힘들게 쓴 건데, 선생님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요.”

옆을 지나다 K의 활동지를 살짝 건드렸다. 줄 하나가 더 그어졌다. 필요치 않은 선 하나가 더 생겼다고 투정 부리고 징징거리고 있는 거.


지금껏 K를 겪어본 바로는 다른  사람으로 인해 선 하나가 쬐금이라도 더 생기는 걸 못 견뎌했다. 한두 번 아닌 여러 번 있는 일이어서 쉬이 넘어가지 않겠구나 싶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모르고 그랬다, 미안하다 뭐 그런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혹시나 하는 맘에 물어보았다.


“지우개로 깨끗하게 지우는 거 선생님도 도울게.”

“그래도 싫어요, 징징.. 표시가 난 단 말이에요.”


지우개의 성능이 워낙 좋아 연필 자국 없이 깨끗하게 지워졌다. 그럼에도 K의 징징거림은 계속되었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지우고 또 지우다 종이가 찢어질 지경이다.


“K야, 깨끗하게 지워진 거 같으니 그만 지우고 하던 거 계속하자. 선생님이 지나가다 모르고 그런 건데.

 네가 계속 그러면 선생님이 넘 미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활동지에 연필로 사정없이 휘갈겨 버렸다.

날카로운 낙서장이 따로 없다.


좀처럼 화를 잘 내지 않는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큰 소리 잘 지르지 못하는 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다른 아이들은 곁에서  각자의 글과 그림을 그리고 있었지만,  또 시작이군 하는 표정으로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반에서도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도 맘이 풀리지 않았는지 책상 위에 엎드려 자는 척했다.

 자기 반 교실로 올라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싫다며 다시 철퍼덕 엎드린다.


다섯 살 때부터 이  유치원엘 다닌 K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러 선생님과 실랑이가 엄청났다. 대부분  아이들은 눈으로 마주 보고 이야기하면 어느 시점에서 수긍을 하거나 그래도 억울하고 분하다며 아직 맘이 아직 풀리지 않았음을 얘기하는데... K군은 무조건 싫다며 어떤 말을 해도 통하지 않고 징징이로 변하는 것이다.


언젠가 운동장 있는 바깥 놀이 시간, 땅바닥에 꼬챙이로 그림 그리고 그 주변 꾸미는 걸 아직 끝내지 못했는데, 들어갈 시간이 됐다고 버티고 서서 꿈쩍하지 않았다.

모두가 들어가 화장실 볼 일 보고 손 씻은 후 다음 수업 준비해야 하는 시간.

K가 꿈쩍 않고 징징대고 서 있으니 오도 가도 못하는 참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지난 주 크리스마스 날에 듣고 싶은 말을 써보자고 했을 때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K군의 엄마, 아빠의 맘을.

 [엄마가 진절하게 말하면 조개어요. / 아빠가 진절하게 이야기하면 조개어요.]

"K야, 숙져해."

"K야 밤 먹어." 


평소 K는 명랑하고 쾌활하다. 둘째에 고양이도 두 마리 키우는 덕분인지 애교도 많았다.

자기 생각을 내 보일 때면 독특할 때도 많았다. 만화로 네 살 적 모습을 말 주머니까지 넣어가며 나타낼 땐 훌륭한 어린이 웹툰 작가. 앞에 놓인 연필 여러 개로 집 모양을  꾸며 보이기도 하는.

미술 시간 선생님 얘기 너머 자기만의 생각을 담아 나타낼 땐 화가가 되려나 할 정도로 특이하고 개성 있어 보였다.

뭔가 꼭 해낼 큰 인물이 될 거 같은 예감이 드는 거다.


다른 아이들이 다 끝내고 올라갈 때까지 엎드려 있더니 서서히 고개를 든다. 다 끝나고 올라갔으니 가도 된다고 했더니 자기는 끝까지 하고 갈거란다. 풀로 낙서된 부분은 둘을 붙이고  다음장을 펼쳐 주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글과 그림을 그려 가기 시작했다. 끝이 날 때쯤 기분은 풀어져 보였다.


한 번씩 꼴을 낼 땐 많이 힘들어도 독특하고 창의적인 생각 담긴 K의 고유성을 지켜주고 싶었다. 창의적인 아이일수록 자기 생각 끝까지 관철시키고 굽히지 않는 고집이 있는 것  같으니.

 K가 커가면서 반짝이는 어떤 생각을 낼지, 또 쓸모 있는 뭔가를 발명해 낼지 모르는 일.


자기도 모르게 한 두 번씩 툭 터져 나오는 생 떼 같은 고집부릴 때

윽박질러 멈추게 하거나 다른 아이와 똑같이 따라 하게 하기보다 더 좋은 방법 무엇이 있을까.


무지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지치거나 무너지지 말고

크게 될 인물 가까이  다가가고 도울 수 있게 나의 품과 폭을 키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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