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비휘 Dec 28. 2021

넌 정말 나빴어!

부럽다, 부러워. 토파즈라도.

어쭈구리, P군과 J양이 투명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간식을 먹고 있다.

말없이 얌전히 고개 숙이고 먹는 J와 달리 호기심 가득 두리번거리다 두 눈이 마주쳤다.

일부러 눈을 맞추었다가 맞겠다.


골려 주고 싶은 장난기가 발동하여 두 눈을 더 크게 떠 보이며 웃고 있는 날 붙잡고선

“왜요, 선생님. 그게 아니라요~”

입꼬리가 연신 올라가며 힐쭉힐쭉 웃어 보이며 그게 아니란다.

뭐가 아니라는 건지 나 원 참.


‘얼레리 꼴레리 P와 J는 좋아한대요~’ 

표정을 읽었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우리 몇 번 이렇게 앉았어요.” 


우리라는 말을 쓰며 덤덤한 듯 말하더니 나의 약점을 파고들며 말머리를 돌린다.

“선생님, 몇 년생이죠?”

‘갑자기?’


“1994년.”

스물아홉에 맞추어 답했다.


“어, 그러면 몇 살이 되는 거죠?”

“스물아홉.”

당당히 말했다. 


나이 개념이 잘 없을 거니까 그렇게 말하면 

‘어, 아닌 거 같은데...’ 하면서 어물쩍 넘어가리라 생각했다.


“에이, 그건 분명히 아니에요.”

‘뭣이라고라. 분명히 아니라고 확신에 찬 말을 했것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 되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아니다, 참. 1984년이다.”

열 살을 순식간에 올려 얼른 고쳐 대답했다.


“선생님, 그러면 몇 살 되는데요?”

년도를 나이로 바꾸기가 헷갈리는지 몇 살인지 숫자로 말해보라는 것이다.


“서른아홉.”

그만하면 엄청 많이 불렀으니 통과될 줄 알았다.


“에이, 그것도 아니에요.”


“니네 담임 선생님은 몇 살 같은데?”

담임은 20대의 내가 고운 선생님이라 부르는 그 선생님이시다.

“마흔셋이요.”

“마흔셋이라면 43?”

혹시 기수와 서수를 혼동했나  해서 물어본 건데, 확신에 찬 듯한 표정으로

“네.”


‘오, 그래? 그러면 서른아홉인 39는 안 되겠다.

 20대 미스 선생님을 마흔셋으로 잡았으니

서른아홉은 분명히 아니라고 생각했겠군.’ 


“P야, 선생님은 몇 살로 보이는데?”


마스크로 얼굴의 3분의 2를 가린 게 얼마나 다행인지. 

눈만 나와 있으니 그래도 지금보단 훨씬 적게 말해주지 않을까. 침을 꼴깍 삼키며 답을 기다렸다.


“어, 오십이요.”

“뭐라고, 오십?”


많아도 너무 많지 않냐며 뒤로 나자빠질 듯한 몸짓을 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어렸을 때 떠올리면 마흔인 40살이라고 하면 할머니, 할아버지 나이 뻘 된단 생각이 남아있다.


일곱 살인 P가 오십이라고 말한 건  할매, 할배 뻘로 봤기 때문일 거란 짐작이었다.


“선생님, 넘 서운해하지 마세요. 우리 아빠가 마흔아홉이거든요. 49살.

 아빠보다는 나이가 많은 것 같아서 딱 1살만 더 많게 한 거니까요.”


사실은 1살보다 더 많을 거 같은데, 선생님과의 그동안 쌓인 정도 있고 해서 

1살만 더 올려 말했다. 그러니 서운해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던가. 


눈물을 머금고

“엄마는 몇 살인데?”

“엄마는 마흔 넷이에요. 그래서 푸른 선생님은 한 살 적은 마흔셋으로 한 거예요.”


오호라, 요 녀석 좀 보게.

아빠, 엄마를 기준점을 잡아 많고 적고를 감 잡은 거였다. 이러니 내가 놀라지 않을 수가 있나. 나름 논리 정연하였다.

고운 선생님은 엄마보다 적어 보이니 한 살 적은 마흔셋, 난 아빠보다 많아 보이니 한 살 많은 오십.


고운 선생님이 알면 엄청 서운하고 억울해할 일이고, 난 이러나저러나 많이 이득인 셈이다.


이제부터 어떻게 표정관리해야 할까. 실제 나이보다 적게 봐 줘서 고맙다고? 아니면 너무 많이 불러 놀라 자빠질 표정을 이어가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개념 있는 P군은 어림잡아 말할 줄도 아는 걸 보면 내가 어렸을 땐 수와 양에 대한 개념이 참 부족했던 거 같다. 


골려주고 놀려주려 눈알 요리조리 돌리며 웃었던 건 까먹고, P군의 돌린 말머리에 난 완전히 포위되어 버렸다. 오늘도 선생님 골려먹기 P군의 KO승.


거의 마지막 급식을 끝낸 P군을 데리고 계단을 오르는데, J양도 뒤따라 올라왔다. 

“P야, J가 2년째 여자 친구라 했지?”

“여자 친구가 아니라요, 2년째, 아니 3년째인가 사귀고 있다고요. 

지난번 반지도 줬어요.”


“아끼는 토파즈 목걸이는 안 줬잖아.”

“그것도 줄 거예요.”


듣고 있던 J가 말한다. 

“나는 보라색을 좋아해.”


‘아, 어쩐다. 토파즈 목걸이는 파랑이었던 거 같은데.’

난감해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P군. 보라색 보석을 찾아 나서려나.


친구들과 말싸움이나 어지간해서 노여움이나 분함을 토로한 적 없고, 

늘 서글서글한 눈웃음으로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P군을 사귀는 J야. 든든한 남자 친구 정말 뒀다이.



그나저나 현관문 열었다 닫았다 해도 털끝도 보이지 않는 보석 들었을 상자를.

잊힐만하면 도지게 하는 P. 넌 정말 나빴어.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품과 폭을 키울 일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