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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Jan 04. 2022

"아, 나도 구찌 가방 하나 있었으면..."

명품가방에 눈뜨다.

아이들은 2주간 겨울 방학 중이다.

종일반 친구들은 이번 주 주말 합쳐 5일간 겨울 방학을 앞두고 있고.

그것이 끝나고 나면 전 원생이 다시 개학에 돌입하여 왁자지껄해지겠지.

지금도 충분히 틈만 주면 시끌시끌해지는 건 초단위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전원생 중 3분의 2 이상이 종일반이라 방학 중이라 해도 별 실감 나지 않는다.

선생님들도 돌아가며 쉬어야 하기에  오늘은 5세 반 선생님께서 도와주러 오셨다.


자유선택 놀이시간 P군은 옆에 앉은 5세 반 선생님이 맘에 드셨나 보다. 어깨에 손을 턱 하니 올려놓으며 친밀감을 표시하고 있다. 누가 봐도 깜찍하고 예쁜 선생님을 P군의 눈에도 보인 게지.

그러면서 하는 말인즉슨

“선생님, 구찌 가방 좀 보여주세요.”

복도에서 오가며 만나긴 했어도 매일 같이 지내지 않으니

처음엔 어린애가 무슨 명품가방을  보여달라고 하나 싶었을 테다.

휴대폰으로 볼 수 없을 거 같다고 둘러대니 P군은 물러서지 않고 자기가 찾을 수 있다며.

잠시 휴대폰을 빌려주시면 좋겠다는 얘기까지 한 것이다.


만들기 책상에 둘러앉아 흰 종이를 꺼내놓은 걸 보여주며 가방 만들기 얘기를 한 듯하고

그걸 눈치 채신 선생님 기꺼이 열어서 책상 위에 올려 주셨다.

어쭈구리 P군이 여자 친구 어깨 위에 손 올릴 때  왜 나한텐 안 해주냐 했을 때

뭐라고 말했는가. 그런 걸로 질투를 하시면 어떡하냐고 하던 녀석이잖는가.


미모의 5세 반 선생님께는 스스로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친구처럼 이야기를 건네더라는 거.

이쁜 선생님께는 질투고 뭐고 없이 먼저 다가가는 녀석이라니.

5세 반 선생님께선 지난 이야기를 듣곤 웃겨 죽겠다며 깔깔대신다.


그러거나 말거나  P군은 열심히 구찌 가방을 제작 중이다.

“아, 나도 구찌 가방 하나 있었으면......”

언젠가 엄마가 말씀하시는 걸 들었단다.

구찌 가방이나 루이뷔통 가방이 하나도 없다시며.


아무리 엄마가 아빠 들으라고 지나가는 말로 했기로서니

그걸 듣고 맘에 담아둔 여덟 살 아드님이라니!

그 예쁜 맘이 기특하고 왜 이렇게 부러운 것인가.


열과 성을 다하여 제작하다 말고 갑자기 가격은 얼마냐고 묻는다. 5% 할인이라고 했으니

대략 백육십만 원은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어제 엄마, 아빠 가게 장사하여  한 달  번 돈이 100만 원은 될 거라고 했는데,

그때의 돈과 지금 가방 값은 연결이 아직 되지 않는 눈치였다.


백육십만 원이란  말을 듣고 난 P군은 갑자기 들뜬 목소리로

“선생님, 저 육십만 원만 있으면 엄마 구찌 가방 사 줄 수 있어요.

저금통장에 딱 백만 원이 들어있거든요.”

설날이나 추석날 세배드리고 모아놓은 돈 백만 원이 있다는 것이다.


‘히잉, 엄마께서 울 P군이 지금 말하는 얘길 들었다면

억만금의 구찌 가방보다  더 가슴 벅찼을 듯하여 내 맘까지 찡해졌다.’


다행히 P군의 익살스러움과 푸근함이 내 눈에 들어와

찰나 같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록되고 있으니.

나중 어머니께서 이 글을 읽게 될 때 얼마나 뭉클하고 가슴 벅찬 순간이 될까.


육십만 원이 모자라 지금은 사드리지 못하니 최대한 비슷하게 꾸며야 한다며

무슨 글자 모양이 보이는 것까지 그려 넣는단다.


아, P군 덕분으로 나도 그 구찌 가방의 로고를 첨으로 보게 되었다.

비싼 가방이라 가격을 적어야 하는 것까지 놓치지 않았다.


'P야 도대체 넌 정신  연령이  몇 살인 거니?

친구들은 휴지심으로 원통 모양의 가방을 제작하는 것만도 엄청 뿌듯해하는 거 같은데.'

문제는 백육십만 원을 적어야 하는데, 숫자를 쓰는 친구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백육십만 원 그것도 못 쓰냐? 내가 써 줄게."

 숫자에 뛰어나다고 스스로 자부한 아이들이 덤볐다가

다들 10060만 원에서 써 놓고는 맞는 것도 아닌 것도 같은 것이다.

동그라미가 더 많았던 거 같다며 눈썰미 있는 녀석 16010000이란 걸 알려주기도 했다.

그럴싸해 보이는 모양이다.

난 암말 못하고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말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들이  뒤엉킨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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