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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Jan 04. 2022

선생님, 지금 쌩얼이시죠?

양배추 같은 P군

새해 새날이 밝고 만난 아이들 모습은 똑같은데,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우선주고 받는 대화가 달라졌다.


“넌 어느 초등학교야?”

서로 배정받은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거. 차 타고 먼 곳까지 다니는 유치원생이 제법  있다. 집 가까운 초등학교 배정이 우선이다 보니 그 많은 초등학교로 흩어지는 얘길 듣고 많이 놀랐다. 평균 한 학교에 2~3명 정도(?).


학교 배정 얘길 듣다 보니 새 학교도 새 학년도 바뀌었을 때가 떠오른다.

새 학년이 바뀌어 새 반으로 찾아갔을 때 서먹서먹한 어색함. 다행히 같은 반 친구라도 몇몇 보이는 게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새로운 친구 사귈 때까지 쉬는 시간, 그 친구들 아무리 키가 커 젤 뒷자리 앉았거나 젤 앞자리 앉은 내게 찾아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듯. 같은 반이었을 땐 그리 친한 사이 아니었을 텐데, 전혀 모르는 아이들 속에선 같은 반에 있었던 자체만으로 힘이 되어 주었다.

지금 막 여덟 살 된 우리 친구들도 그러지 않을까. 같은 학교 배정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지금부터 더 가까워지고 있는 듯싶다.


울 P군은 바깥놀이에 여념 없다. 다른 친구들 같은 학교 요기 요기 붙어라 하듯 찾고 다니는데... 벽돌 깨진 돌덩이 하나 주워 바닥에 여러 번 내동댕이치고 있는 것이다. 뾰족한 걸 부드러운 부분처럼 매끈하게 만들고 있다나.


초등학교가 어디로 배정되든 친구가 몇 명 같이 가든 별 상관없어 보인다.

돌덩이를 보석으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한 듯. 어디를 가든 특유의 넉살과 붙임성으로 사랑받을 게 분명해 보이니.


토요일, 일요일도 가게 일로 바쁘셨을

그리하여 P군 말로 칠십도 아닌 일흔이 넘으셨다는

할머니, 할아버지랑 지냈을 걸 떠올리며 부모님 안부까지 묻게 되었다.


“엄마, 아빠 주말에도 가게 장사하시느라 바쁘셨겠다.”

“이번 주말은 일 안 하고 쉬셨어요.”


새해라고 쉬셨나? 잘 됐네. P군과 잘 지냈겠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 드렸을까? 혼자 생각에 빠져있었다.


“선생님, 우리 엄마 요리 솜씨가 인기가 많아서요, 음.. 하루에 50 또는 70 한 대요.”

50 또는 70 한다니. 나야 다 알아듣긴 하는데...

‘너 엊그제 여덟 살 된 아이 맞는 거니?’


“우와, 그럼 한 달에 도대체 얼마를 버시는 거야?”

“아, 그건 100만 원이나 벌지요.”


아무렴, 백만 원이면 엄청 큰돈이지. P군 뭐니 뭐니 해도 넌 역시 여덟 살이었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은 돈 백만 원. 어쩌면 1억은 먼 나라 이웃나라 돈처럼 보이고 100만 원이 훨씬 많아 보이는 나이.

“선생님, 우리 아빠가 50 됐으니 선생님은 오십 하나 됐겠네요.”


순간, 깎아내린 나이인데 많아도 너무 많아 보였다.

“P야, 선생님이 지난번 나이를 잘못 알려준 거 같아.”

“사실 마흔하나. 그러니까 41이 되는 거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쳐다보더니

“선생님, 그건 정말 말이 안 돼요!”


‘어, 요 녀석 말하는 거 보게나. 뭐가 그리 말이 안 되단 말인고?’

마스크로 다 가린 눈만 빠꼼 나온 내 얼굴을 유심히 빤히 보는 듯했다.

서서히 입을 떼려 할 때 무슨 말을 할지 겁이 났다. 팩트 폭격기라서.

“왜... 말이 안... 돼..?”

내 목소리가 떨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우리 엄마, 아빠보다 많아 보이는데요, 마흔 하나면 말이 안 되죠.”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선생님, 지금 쌩얼이시죠?”

‘허걱, 쌩얼이라니. 그런 말도?’


평소 화장 잘 안 했지만, 마스크를 낀 이후론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화장을 안 하고 지냈다. ‘화장을 안 해서 나이가 들어 보이나.’

“P야, 내일부턴 선생님이 화장을 할까 부다. 그래야 마흔하나로 보이겠지?”

마흔하나를 고집하며 말했다.


“선생님, 화장은 하지 마세요. 아마 화장하면 오십칠(57)로 보일걸요.”

‘이 녀석 정말 뭘 알고 하는 말이렸다!’


화장하는 걸 극구 만류하니 그건 다행이다.

화장기와 주름이 더해졌을 때 생기는 그 나이 듦을 안다는 말인가.


오늘도 P군의 쌩얼이란 말과 50, 70 한다는 말에 쪼매 쭈글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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