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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Feb 27. 2022

아버지의 낡은 구두

그 속에 숨이 살아 숨 쉰다.

수십 수백 년 눈 비바람 맞으며 버텨온 세월이 있건만, 더 이상은 힘에 겨운 듯

철심으로 지탱하고 있다.

속이 훤히 보일 만큼 둥치가 벌어졌어도 윗가지를 살리기 위한

뿌리는 쉼 없이 물을 빨아올리며 옆으로 앞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어쩌면 쓰러지고 나서도

뿌리 닿은 면은 쉼 없이 물을 끌어올리기 위한 안간힘을 쏟고 있을지도 모를 일.


이른 아침 출근해서 신발을 벗다 보면 낡은 구두 한 켤레가 놓여있다. 정원 놀이터를 쓸고 난 후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기 위해 벗어놓은 차량 실장님 구두라는 걸 알 수 있다.

여자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업무 분담해서 한다고는 하지만, 자잘한 일 다 봐주시는 실장님 일이 많으셨다.

50대 후반이신 실장님께선 이른 아침 정원과 앞 뜰 쓸기부터 차량 운전, 새 학기 준비 위한 곳곳의 보수와 보일러 점검, 비품 조립, 교실 벽면 페인트칠까지 해주시며 새 단장에 도움을 주신다.


예전 두 아이 유치원 다닐 때 원장님 남편 분께서 이사장님 자리에 계시면서 하시던 일. 유치원 모든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하실 정도였다. 학부모님께 소개할 때도 스스로 유치원 머슴이라고 하셔 생각 없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봄이 되면 두 분 다 텃밭 관리가 시작되시고 이사장님께선 운동장 한쪽 토끼나 병아리를 키우기도  하셨으니... 작은 생명 먹이고 거두는 일이 그리 호락한 일은 아니었을 테다.

젊은 어미는 몰랐었다. 그저 우리 아이들 눈길 손길 한 번 더 스쳐 주시기만 바랄 뿐이었다.


실장님께선 새 구두 갖다 놓으시고 일하실 때만  헌 구두를 작업용으로 신으시는 거 같은데... 그럼에도 그 낡은 구두를 볼 때마다 맘 한편이 짠해옴은 아버지 자리에 대한 무게감이 온전히 와닿기 때문일까.


몇 년 전, 그이의 출퇴근용으로 신고 다니던 구두가 제법 았다는 걸 모르고 지냈다. 아무 말 없이 해지고 낡았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편한 신발처럼 신고 다녔던 것.

어느 날 아들 운동화를 새로 산지 얼마 안 된 신발이 구멍이 났다. 친구들과 그 운동화로 몇 번 축구를 찼던 모양이다. 다른 곳은 멀쩡한 데, 구멍 나서 새 걸로 사 준 뒤 나란히 놓여있는 두 신발을 보고서야 그이 구두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앞 뒤 옆이 낡았기도 했고, 빗물이 들었는지 밑창도 살짝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 아들 운동화는 앞 뒤 옆은 멀쩡한데, 공이 자주 닿은 곳만 구멍이 나 있는. 당장 가서 새 신발로 바꿔 주는 모양새라니.


그리 살아왔다. 어린 유아들이 보면 옛날 사람이긴 할 거다.

스스로 생각할 땐 옛날 사람이 아님에도 아버지나 어미는 그래야만 하는 줄 알고 살았던 거 같은데.


우리 차량 실장님께서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 맘이 아니었을까. 자식 운동화가 구멍 났을 땐 어느 때고 달려가서 새것으로 바꿔주셨을 그런.


새 신발 속에 담긴 아버지의 뿌리 깊이 빨아올린 그 사랑과 정으로 눈, 비바람 헤치며 뚜벅뚜벅 자기 길을 걸어가라고.

튼튼하고 반듯하게 자리 잡고 서 있는 우람한 나무처럼

살아가는 동안  가지 끝까지 꽃피우고 열매 맺으며

힘껏 살아가는 거라는  말없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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