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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Nov 18. 2020

 문자 하나로 '어린 날 추억소환'

내게 참 좋은 친구가 있다.

만남의 횟수로 치자면 열 손가락 안이지만,

생각하고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마음으로 치자면 으뜸이다.

오늘도 그녀는 내게  좋은 글을 문자로 보내줌으로써 존재감을 인식시킨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 중 작지만 의미 있는 물건은 없는지?

추억을 떠올리다 보면 행복이 묻어날 거라며

그것에 담긴 추억은 없는지 생각해 보라고 주문해 온다.’    


생각거리를 던져주니 작지만 소중한 물건이 무엇일지 곰곰이

맘속을 들여다보며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머릿속엔 지금 보면 많이 촌스러울 주황색 찬합이 생각났다.


결혼 후, 27년이 지나는 동안 이사를 여러 번 다녔지만, 주방 정리를

할 때마다 버리지 못하고 고이 데리고 다니는 물건 중 하나였다.

그것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도 집에 있었으니 엄마가

그때쯤 샀다고 해도 45년은 지난 것이 된다.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제법 큰 산딸기 밭이 있었다.

무더위 한창인 어느 여름날, 뙤약볕을 쪽쪽 빨아들여 빨갛게 다 익은 산딸기를

딸 때가 된 것이다.

“OO아, 오늘 학교 끝나고 산딸기 따러 가자!”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내게 엄마가 말했다.

“우와~~ 신난다.”

학교 가는 길이 즐거웠다.    

지금도 시골 친척집에서 재배하는 단감을 따거나 알밤 줍는 걸 좋아한다.


그 어린 때도 수확하는 기쁨을 알았나(?)

잎새 뒤에 숨어 있는 산딸기를 찾아 살짝 갖다 대면

바로 손 위에 톡 떨어지는 그 느낌을 좋아한 거 같다.    

산딸기 밭은 가시가 많다.

가시가 옷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머리카락이나 손등을

긁기도 했다. 그럴 때면 하얀 손등이 빨간 실선 스크래치로 따끔거렸다.

요리조리 피하며 빨갛게 살포시 앉아있는 고걸 따서

입속에 넣으면 새콤달콤한 산딸기 먹느라 그런 것쯤이야 했던 거 같다.

가위로 자를 필요 없고 꼭지에서 따내기 힘들어 실갱이 할 필요도 없었다.

손만 살짝 갖다 대면되는 산딸기.

엄마랑 내가 딴 산딸기가 바구니 가득 수북해졌다.


잘 따 가지고 온 산딸기를 씻어 엄마는 설탕을 솔솔 뿌려주셨다.    

씨앗이 토독 씹히는 산딸기를 먹다가

아, 맞다!!

‘OO아, 산딸기 맛있겠다. 선생님도 산딸기 먹고 싶다!’

낮에 학교에서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학교 끝나고 산딸기 따러가는 걸 친구들이나 담임 선생님께 자랑을 했나(?)

아니지, 숫기 없던 내가 선생님 앞에 나가 그런 얘길 했을 리가 없다.

지금 떠오른 생각인데, 일기장에 썼었나 보다.

그땐 매일 일기 쓰기가 단골 숙제 중의 하나였다.

선생님께선 그 날 일기의 마지막 부분에 예쁜 글씨로 항상 코멘트를 달아주셨다.

주로 빨간색 볼펜으로.

일기 쓰기 숙제가 좋았던 건 아니었는데, 선생님께서 써 주시는 그걸 읽기 위해

더 열심히 썼던 거 같다. 어린 날이 다 들어앉았을

‘아 그 일기장 다 어디로 가 버렸을까!’    

선생님께선  학교 끝나고  산딸기를  따러갈거란 걸

미리  읽고 계셨던 거.


크게  좋았거나 맘 아팠던 일 아님  기억해내기  쉽지 않은 일도 기록해  놓은 걸  보믄  생각해내기  쉬울 터.

그래서 난 우리 두 아이의 일기장을 하나도 버리지 못했다. 유치원 때부터 끄적이기 시작해서 초등학교 끝날 때까지 썼을 그 일기장을 박스에 고이 담아  이사 다닐 때도 모시고 다닌다.

시집 장가 가는 아드닝 따닝에게 주면 뭐라고 할지는....


다음 날 아침, 나는 선생님이 드시고 싶다던 산딸기를 드리기 위해

종이로 고깔 모양 컵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산딸기를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었다.

엄마는 뭐하는거냐며 물으셨고, 울 선생님도 산딸기를 먹고 싶대서

가져다 드릴 거라고 했다.

“아고 아고 아서라, 학교 가다가 다 뭉개져서 그걸 어떻게 먹냐.”

지금 보니 촌스럽게 그지없는 주황색 찬합에다 산딸기를 깨끗이 씻어 넣고

하얀 설탕도 솔솔 뿌려주면서 선생님께 갖다 드리라 하셨다.

고깔 모양 컵에 담아 갔으면 참 웃겼을 거라는 생각을 그때 한 거 같다.    


우리 선생님 드릴 생각에 그걸 들고 후다닥 학교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솜사탕 다루듯 해야 했을 그 산딸기를 들고 360도 뱅글뱅글 돌렸을 테니

그 산딸기의 몰골이 어땠을지 그땐 정말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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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한참 지난 후, 시집간 딸에게 엄마는 그 주황색 찬합을 다시 등장시켰다.

노르스름 잘 볶아진 참깨가 담겨 있었는데, 그 어린 날의 산딸기가 선명히 떠올랐다.

참깨를 다 먹는 동안에도 산딸기를 먹는 듯했다.    

그 후, 그 빈 통만 봐도 산딸기가 떠올랐다.

다른 건 다 버릴 수 있는데, 그 통은 버릴 수가 없었다.

어린 날이 떠오르고, 여름날의 산딸기 밭이 생각나고, 초등학교 선생님이 떠오르는

마법의 통이었던 것이다.


오늘 내가 참 좋아하는 친구의 문자에서 가장 의미 있는 물건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난 다 깨져가는 그 찬합을 떠올렸다.    


어린 날, 엄마와의 추억이 또

선생님을 향한 사랑의 맘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일까?    

하늘나라 계신 엄마도 초등학교 때 선생님도 유난히 보고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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