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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Nov 19. 2020

       크림이 와 카레 냥이

울 사무실 대각선 맞은편에 네일샵이 새로 생겼다.

오래된 구축 건물을 주인장의 컨셉에 따라 헌 동네와 어울리지 않는

세련된 인테리어 안에는 우아한 여왕이 살고 있을 거 같은 눈에 띄는 곳이다.


네일샵이 곳곳에 생겼고, 지금도 생기고 있지만, 들어갈 생각을

못해 보고 살고 있다.

겉모양 꾸미기에 별 관심 없기도 하고, 쪼꼬미들과 오랫동안 지내온

나는 손톱을 항상 바투 잘라야 했다.

깜박하고 손톱을 깎지 못했다간 보드라운 아기 살갗에 잘못 스치다가

긁힐 수도 있었으니.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 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톱도

기르지 못했다.


아이들끼리 잘 놀다가 언제 어디서든 눈 깜짝할 사이 싸울 수 있어

어머님들께 제일 당부드렸던 중 하나인 손톱 깎아 보내 달라 였다.   

쪼꼬미들은 싸울 때 순식간에 친구를 때리거나 꼬집기도 하기에

손톱이 길지 않으면 상처까진 나지 않아 정말 많이 부탁드렸었다.

깜박하시고 그냥 보내신 날 나마저 손톱에 신경 쓰지 못한 날엔 꼬집힌 얼굴 상처를 볼 때마다

속이 상한다.

정성껏 쪼꼬미들 데리고 잘 놀아도 상처 하나로 온 가족이 드러내는 서운함이랄까.

 애들 안 보고 뭐했냐는 듯한 말을 직접 듣기도 하고,

전화기 너머 들리는 땅이 꺼질 듯 한숨 소리 듣는 것도 죄인인 양 참 힘든 시간이다.  

  

요즘이야 새살 돋는 밴드만 잘 발라주면 흉터 하나 남지 않게

잘 아물긴 하지만, 나을 때까지 신경이 쓰인다.

그러니 잘못하다 내 손톱에 쪼꼬미가 긁혀서는 더더욱 용납이 안 되는 거다.

몸에 밴 습관처럼 내게 네일아트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된 지 오래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오픈을 했고, 세련된 인테리어로 한 번쯤 들어가

봄직 한데 몸에 장착된 촌스러움도 한 몫하여 더더욱 들어갈 일이 없었다.    


요즘은 오후 6시만 넘어도 어둑어둑한데 어느 퇴근시간,

새로 생긴 네일 샵 앞에 옹기종기 남학생들이 닫힌 유리문 앞에

쪼그리고 앉은 걸 보았다.

‘무슨 볼거리라도 있나(?)’

궁금증 많은 나는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아, 글쎄 냥이 한 마리가 유리문 너머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그 앙증맞음에 남학생들 갈 길을 잃은 아이처럼.

 

털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듯 어쩜, 좋을까!

깜찍하고 예뻐서 발을 뗄 수가 없다. 나도 그들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여유롭게 바라보는 눈, 코, 입이 사랑스럽고, 귀품 있는 냥이다.

한참을 들여다보다 일어섰는데, 자꾸만 생각이 난다.


안에 여왕이 살고 있을 거 같은 인테리어가 그냥 풍기는 아우라가 아니었던 거다.

정말 그 안에는 여왕 냥이가 살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 퇴근하면서 살짝 들여다보니 네일아트 젊은 주인장이 있었다.

염치 불구하고 들어가 더 가까이서 냥이 한 번 보고 가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크림과 카레라는 이름을 지닌 냥이 2마리가 저녁밥을 먹고 있었다.

“오갈 데 없는 핏덩이 때부터 데리고 와 키운 거예요.”

털이 넘 귀품 있어 보인다고 하니 길냥이 새끼였다는 것이다.


주인한테 버림받은 크림이나 카레의 엄마가 받은 스트레스 때문인지

각각의 어미들이 새끼를 내팽개치듯 해서 키운 아이들이라 했다.

“음식 이름을 붙여주면 오래오래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대서

크림색은 크림이 카레 색은 카레로 지었어요!!”

그 말을 들으며 네일샵을 한 번 쭈욱 둘러보니 곳곳에 냥이의 집과

배변 볼 수 있는 모래 통과 어디든 앉아 쉴 수 있게 폭신한 방석을

바닥 곳곳에 던져두었다.

 네일샵보다 냥이 샵이 어울릴 정도로 크림이와 카레의 살림살이로 가득했다.

어쩜,  얼굴도 예쁜 주인장의 맘은 어찌 이리 곱고 아리따울까!


그곳에 잠깐 있는 동안 언젠가 봤던 캣츠의 뮤지컬 현장에 있는 듯한느낌이 들었다.

배우들의 표정 연기와 몸동작의 섬세함을 크림이와 카레의 몸동작에서 보고 있으니

생동감이 훨씬 더했다.


동네에 오가다 만난 냥이만 해도 뮤지컬에 등장하는 주인공  몇 마리는 만난 듯하다.

매혹적인 냥이, 친절한 냥이, 예민한 냥이, 관능적인 냥이,

하얀 냥이, 정의로운 냥이, 사려 깊은 냥이, 분주한 냥이,

허풍쟁이 냥이, 호기심 많은 냥이, 천방지축 냥이, 도둑 냥이,

반항적인 냥이, 부자 냥이, 악당 냥이 등 사람들이랑 다를 게 하나 없는

냥이들의 성향이라.  


냥이들의 성격과 성품을 우리 사람들의 기준에 맞춰 아주 섬세하게 나눠서인지

사람들의 성향과 성품이 많이 닮아 있다.

'크림이랑 카레는 어떤  기질을 타고 났을까?

주인장의 맘이 고운 걸 보면 품성은 어떨지 안 봐도 알테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잘 성장하라고 지어주신 크림이와 카레,

다른 냥이들도 다들 건강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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