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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Nov 21. 2020

 아파트 화단 속의 인공호수

손끝이 맵거나 야무진 사람이 있다. 손이라고 다 같을 순 없는 것인가.

아드닝이 저녁밥을 먹고 난 뒤 그릇을 씻어 엎어 놓았다.

물 빠지길 기다리는 명목으로 나는 탑을 쌓듯 한꺼번에 포개 올리는데,

아드닝은 설거지를 하면서 밥그릇 국그릇 접시끼리,

심지어 수저통 안의 젓가락, 숟가락 끼리끼리 잘도 배열한다.

아들이 설거지 돕는다고 부엌을  들어갔다 나오는 날엔

손댈 것 없이 완벽하다.


방 정리되는 걸 봐선 군대 다녀온 후 잘하긴 하다.

내가 따라다니며 아들 방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아들이 날 따라다니며 정리하다 지금은 손 놓고 있다.

어지르기 선수인 냥 여기 책 한 뭉텅이 저기 책 한 뭉텅이와 노트

불쑥불쑥 삐져나오는 생각을 끄적인 메모지 등등

쌓아놓고 늘어놓기 대회라도 나갈라치면 단연 1등은 따놓은 당상이다.

그러니 따라다니며 치워줘도 버텨낼 재간이 없었던 거지.


책이 책장에 꽂혀 있으면 손이 잘 안 간다. 손 가까이 있을 땐

펴보기 쉬워 그렇게 한다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는 거다.    

내가 못 가진 면이라 그런지 손끝 야무진 사람을 볼 때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다.


지난 어느 여름, 아파트 앞을 지나는데 예사롭지 않은 게 보였다.

대충 봐도 그것을 만들기까지 시간과 노력, 정성이 한가득 느껴졌다.

빨간 플라스틱 딸기 담던 대야가 근사한 관람용 호수로 변신해 있는 것이다.

‘아파트 화단 속의 인공 호수~라!’

그 이름 모를 누군가의 발상이 내 상상의 나래를 맘껏 날아오르게 했다.

가까이 다가가 살짝 들여다보니 살아 움직이는 미꾸라지 2마리가 노닐고 있었다.

어른이나 아이들 오가며 보라고 마련해 두신 그 마음이 넉넉하고 따뜻하게 보였다.

‘관람용 호수  만들 생각을 어떻게 하셨을까!’ 

사람을 향한 사람을 위한 애정이 가득한 사람인 게 분명하다.    

미끄러지듯 빠져나갈까 봐 세탁소 옷걸이로 케잌이나 파이 자르듯 자르고  혹여 까치가 날아와

냉큼 집어 삼킬까봐  그물로 까치망을 씌워 놓은 것이 여간 꼼꼼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앞을 지나칠 일 없어도 일부러 돌아서 그 앞에서 머물렀다.

미꾸라지가 잘 있는지 안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에 사시는 분 중 어떤 분이실까.’

글씨체로 봐선 나이 드신 분 같은데, 어떤 분인지 끝내 알진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관람용 호수


알림

미꾸라지

누가 가져갔습니다.

      경비실 올림’

-----------------------


안타까운 소식에 할 말이 없었다.

그 인공호수를 설치하신 분은 다름 아닌 경비실에서 일하시는 분 중의 한 분이셨다.


‘누가  고놈들을 데려갔을까.’

한참 동안 호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호수 속의 다른 생명체를 보지 못하고, 그 후 우리는 다른 동네로 이사를 했다.


실망감에 마음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손끝 야무진 그분이 만든 그 호수 속에 또 다른 생명체가 노닐었으면...    

그땐, 주인이 만든 더 큰 호수 속 생명체가 더 늘어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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