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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Dec 03. 2020

              안테나

주파수  조절  다시  해야 할  때다.

바람이 차다. 아직 장갑을 끼긴 스스로 호들갑스러워 보였다. 두 손을 패딩 호주머니에 푹 찔러 넣고 길 위에 나선다. 땅 위 도로 옆에 있는 집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사무실 바로 옆의 집도 있지만, 지하철 역에서 다음 역까지 거리인 경우도 많다. 찬바람이 밀어주니 종종보다 더 빠른 총총걸음으로 걷는다.


지도 앱 들이 잘 되어 있으니 주소만 알려주면 목적지에서 만날 수 있다. 약속시간이 촉박하면 가는 길의 맘이 바쁘다. 항상 조금 먼저 도착하려 한다. 멀리서 오는 분들은 예상할 수 있는 돌발 상황이 생긴다. 차가 막힌다는 거다. 오들오들 떨며 그냥 서 있으면 춥다.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쭈욱 둘러본다.


고은 시인의 ‘내려올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이란 시도 있던데, ‘바삐 걸을 때 못 본 주변 천천히 머무니 보이네.’가 됐다. 좀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늘 다니던 동네 이건만, 참 대충 보았구나 싶다. 익숙한 것들의 낯설게 보기를 하듯 고개를 위, 아래 좌우를 돌리니 햇빛과 바람, 비와 천둥 번개가 그린 겨울 속의 미술관에 들어앉았다. 겨울 갤러리 내 마음이 머물며 맘을 내려놓고 들여다본다.


그 사이 기다리던 손님이 도착했다. 혼자 더 놀 수 있지만, 많이 늦지 않아 괜히 반갑다. 보여주는 집이 맘에 들었으면 소망하지만, 쉬이 들기가 쉽지 않음을 안다. 돌아오는 길 좀 더 꼼꼼히 눈에 담으며 걷는다.

추운 겨울 속의 자연과 생명을!


이 추운 날 카네이션이 얼어 죽지 않았다. 안간힘을 쓰며 꼿꼿하게 피었다. 분명 지난봄 어버이날에 건네지 못하고 머물러 있기 때문일까.     

한 두 걸음 걸어가자 아파트 소나무 가지 사이 겨울 햇살이 눈부시다. 따사롭다. 겨울날 빛이 있어 괜히 좋다.


   

카페에 빠알간 크리스마스트리 내걸렸다. 하얀 눈을 부른다. 하트 올려진 라테 한 모금 입에 머금은 듯 따숩다.    

어느 집 앞 몇 날 며칠 밤새워 그렸을 해바라기 화가, 지금 그림을 뒤로하고 무얼 하고 있을까. 늘 못다 한 그리기의 아쉬움을  붓  다시 드는 날로  기다리겠지.    

얼음 땡 놀이하는 초록 이파리 꼼짝 않고 멈추었다. 나라도 땡!! 해주고픈데,  손이 꽁꽁꽁~ 발이 꽁꽁꽁~~

꽁꽁 얼어붙어 들리지 않는 거야.    

주황색 꽃들 놀이에 뒤질세라 고개 숙이고 있다.  숨바꼭질 놀이 중일 테야. 머리만 숙이면 안 보일 줄 아나 봐. "다 보이는데~~ 다 보이는데~~!"

조금 더 걸어가니

바다의 평온함이 남은 이가 살고 있나 봐. 파도소리 뿌웅~   소라를 데려다 내다 걸었어.   


까치들 배부르겠다. 넉넉한 감나무 주인 잘 만난 덕분이겠지.    


사무실에 다다랐어. 내 눈에 들어온 맨 꼭대기  앉은 안테나. 잘 나오던 텔레비전 찌찌직 소리 내며  빨강 검정 물결의 화면으로 어른거린다.  텔레비전 채널을 이쪽저쪽  돌려도 소용없다. 안테나가 나설 때다. 기사님을 불러야 한다. 지붕 젤 꼭대기로 올라가신다. 안테나를 요리조리 주파수 맞게 돌려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거칠거칠했던 화질이 깨끗한 화면으로 짜잔 바뀌는 거다.     



요즘 나는 새롭게 받아들여야 할 신문물로 먹통이 될 때가 많다. 내 몸의 가장 높은 곳인 머리 꼭대기 안테나의 촉을 이리저리 맞추어 곧추세웠다. 주파수 조절 다시 해야 할 때이다. 내 마음의 화면  환하고 밝게 바뀔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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