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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Dec 08. 2020

   너 살아 있었구나!!

생명력은 곳곳에 있다.

오래 웅크린 듯 기지개를 켜고 살아있음을 알린다. 제철을 만난 듯 생기가 돈다. 그것들은 올 여름까지 어무이의 손길과 발자국 소리로 자랐다. 씨알이 제법이다 싶을 때 수확되었을 테다. 실한 놈들만 골라 택배에 실려 5시간 버스를 타고 우리 집에 온 것들이다. 감자, 양파, 마늘 등 어무이 뚝심과 땅심을 받고 자랐던 녀석들. 마늘과 양파는 양념으로 조금씩 넣다 방치되고, 감자 또한 쪄먹고 삶아먹고 볶아 먹다 어느 순간 잊혀졌다. 양파는 껍질 까기 쉬운데, 마늘은 쉬이 손이 가지 않는다. 작은 알맹이 조각내어 까기 쉽지 않은 거다.  

   

아침 새벽밥 한 술 뜨는데, 마늘 넣어서 요리할 만큼 거창하지 않으니 안 넣게 되고. 저녁엔 퇴근시간이 간발의 차로 내가 늦다보니 남자 두 사람 도움 받아 얼른 차려내기 바쁘다. 허기진 배고픔을 달래는 것이 급선무처럼. 마늘 까서 넣는 것은 뒷전으로 밀리고 밀리는 이유였다.     


겨울철 파래도 무쳐야 하고, 갯벌 속의 영양분 먹고 튼실히 키운 벌교 꼬막도, 무가 달아 무채도 무쳐 먹어야 한다. 마늘을 넣으면 더 맛있으니 깐마늘이 필요했다.    



일요일 오후,  tv앞에 제일 오래 머무는 그이에게 신문을 깔고 껍질 속에 든 마늘을 한가득 내놓았다. 까달라는 거였다. 내가 싫으면 다른 이도 싫은 건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몇 알 까더니 더 이상 못한다며 손을 놓았다.     

이게 뭐냐며 이것도 깐 거라고 따따부따 하려다 멈칫 했다. 뽀얀 속살 꽁무니에 푸릇푸릇  한 게 보인거다.  

‘이게 뭐지? 하얀 우유 빛깔 속살에 비치는 푸른?'

힘주어  주사  맞다 멍 든거 마냥  푸르뎅뎅했다.

아 글쎄, 싹 새싹이었다!!  밑 부분엔 하얀 뿌리도 살짝 보이고, 물 한 방울 없는 그 곳의 살아 숨 쉬는 생명력에 힘이 솟구쳐 오르는 듯했다. 남아 있는 녀석들도 그대로 두었다면 흙 없는 마늘밭이 푸른빛으로 살랑일 뻔했다.


싹을 더 튀우기 전에 까놓아야겠다 싶어 몽땅 가지러 갔다. 다 먹은 줄 알았던 양파 두 개 남았었나(?) 하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썩어 문드러졌고, 한 녀석 초록 까치머리 무스 발라 세우듯 쭉쭉 뻗어 올랐다.

    

거실과 발코니 온도차가 나서 두 발짝도 떼기 싫어하는 동안, 양지 바른쪽의 겨울햇살과 까만 밤 차가운 달과 인사 나누며 새로이 태어날 꿈을 꾸고 있었던 녀석들이었다.


바쁘다 어쩐다며 무심코 내팽겨진 그들이 살았음의 승전보를 알리는 현장을 마주한 듯 경건함과 겸손함에 더해 경이로움까지 느껴졌다. 또 이건 뭐야!! 그 옆의 검은 비닐봉지 속 감자도 '나도 살았지롱!' 혀를 내밀고 놀리듯얄밉게 쌩~달리는 듯하다. 달리는 차 뚜껑 밀어 올려 시원한 공기 들이키듯 신나게 즐기는데, 누가 얕잡아 보고, 연약하다 할 수 있으리오!    

이 녀석들 몇 알은 남겼다가 텃밭으로 돌려보내야겠다. 많은 알들이 줄줄이 매달릴테고 또 그 알들이 줄줄이 매달고 또 줄줄이 줄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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