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순 여사님 닮은 호박꽃~^^*

하늘아래 그 무엇이 높다하리요~~

by 서비휘

아들 둘 중 맏이인 그이 어머니 내겐 시어머니인 김영순 여사님, 1943년 태어났으니 일흔여덟이시다. 1993년 3월 결혼할 당시 지금의 내 나이 정도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글을 쓰면서 계산해 보니 오십, 쉰 셋이셨다. 그땐 몰랐다. 참 젊은 어머니셨다는 것을. 아버님과는 나이 차가 아홉 살이었고, 나이 차가 있어서인지 어머님은 엄청 고우셨다. 아~ 오십 삼이라. 이 나이 되고 보니 아버님 또한 참 젊으셨네.


환갑 전에 큰 아들 장가보내고 싶은 맘에 많이 서두셨는데... 지금이야 환갑도 청년에 든다지만,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환갑이면 나이가 많다고 생각해 죽을 때가 가까웠다고 여겼나 보다. 동네 사람들 불러 잔치를 꽤 크게 할 때였으니. 그 나이가 되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다. 어릴 땐 마흔, 사십이란 나이도 그렇게 많아 보였으니 말이다.


어느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우리 김영순 여사님 자식 사랑이 지극 정성이시다. 그이 고교시절 마산 한일합섬 다니시던 아버님 회사 일이 뭐가 그리 맘에 안 들고 못마땅한 일 많으셨는지 참지 않으셨단다. 앞뒤 재지 않고 회사를 박차고 나온 것이다. 처음엔 다른 일자리 찾아보셨을 텐데, 처음 다니던 곳보다 조건이나 대우가 성이 차지 않으셨는지 가지 않으셨단다.


그 후 아버님은 속상한 맘을 술로 보내셨고. 아들 둘이 한창 공부할 중, 고교시절이었으니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어머님이 생활 전선으로 나서신 거셨다. 지금도 시외사촌 형님 댁엔 과수원 농사 중 단감과 복숭아를 엄청 많이 재배하신다. 고생해서 지으신 걸 돈사기도 바쁠텐데, 전국에 살고 계신 친척들 모두에게 한해도 거르지 않고 살고 있는 곳까지 땍배로 브내주시니.

논농사도 최근까지 지으시다 나이 들고 힘드셔서 지금은 가족들 드실 만큼 지으신다는데...

시엄니의 친정 쪽이니 김영순 여사님 논농사와 밭농사, 과수원 등 뼛속 깊이 인연이 있으신 거다.


숨은 힘을 발휘하여 밭에서 채소 등 트럭에다 가져와서 동네 주민들께 내다 파는 일을 시작으로 나중엔 공장까지 다니게 되셨으니. 내가 결혼했을 때도 김영순 여사님 공장엘 다니고 계셨다. 집에서 살림만 하는 친정엄마를 생각하며 많이 놀랐다. 쉰 넘은 시엄니께서 공장엘 다니는 게 익숙지 않았던 거.


고1 때 꽤 공부를 잘했던 그이가 스카이는 거뜬히 갈 수 있다는 담임의 상담을 받곤 했단다.

아버님의 실직과 함께 찾아온 술 생활, 엄니의 생활전선으로 뛰어든 뒤의 집 안 사정. 하루가 바람 잘 날 있었을까. 우당탕탕 했을 집 안 분위기 강심장 아니고서야 공부만 하는 아들이 되기 쉽지 않았을 테다.

지금이야 사춘기가 일찍 오지만, 우리 때는 고 2가 사춘기 절정기였다. 간간히 전해 들은 이야기만도 그때 상황이 상상이 된다. 고2 방황기를 거쳐 고3 때 맘 잡고 공부했을 텐데, 집에서 최대한 멀리 벗어나고 싶었단다,

철없는 아들 심정 아는지 모르는지 집 가까운 4년 전액 장학생을 권하셨단다. 끝까지 마다하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공과대학으로 진학하면서 자취생활의 시작.


시엄니는 없는 살림에도

“너는 알바하지 말고 공부하거라! 그 시간 벌어 정규직으로 자리를 잡거라!”

오랜 비정규직의 공장과 회사생활 설움을 겪고 터득한 조언이셨겠지.

여든이 다 되신 시엄니의 한 발 앞선 실제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을 받아 잘 살아가고 있다.


시엄니의 자랑이자 자부심인 그이, 기대에 부응하는 건 때때로 힘겨울 때도 있었겠지. 무한한 응원과 지지의 힘이 있기에 흔들리지 않고 더 잘 살고 있지 않을까.


그런 시엄니 김영순 여사의 존재감이 더욱더 빛을 발하는 때가 있었으니.

1993년 결혼 후부터 2020년 올해까지 장장 28년 김장을 해 주시고 계신다. 최근엔 가까운 텃밭에서 마늘과 고추, 배추와 무를 직접 길러 1년 먹을 김치를 해 주시고 계시니 그 정성 그 사랑 그 은혜로움 어디다 비길 수 있으랴!

김장해 주신지 며칠 됐다고 오늘 저녁 퇴근해 오니 택배 상자 속에 조기, 갈치, 삼치, 무, 배추, 동치미랑 같이 김영순 여사님의 맘을 꽉 채워 보내셨다.

억척같고 거칠 것만 같은 시엄니 김영순 여사님 가장 좋아하는 것이 꽃이란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참 고우셨고 꽃을 좋아하던 울 시엄니 김영순 여사님.

지난 추석 때 집 앞 작은 화단에 노란 꽃이 만발하는 호박을 심으셨단다. 호박이 열릴 때마다 따 가는 주인은 동네 사람들. 주렁주렁 열리다가 실해질 때쯤, 이 사람 저 사람 지나가는 이웃들의 저녁 찬거리의 인기 밭이었단다. 이웃에게 나눠줘서 신난다며 얘기하는 그 모습이 환하게 웃는 노란 호박꽃처럼 보였다.

그 속에서 해를 보았고 달을 보았고 별을 보았다. 가장 아름다운 꽃 김영순 여사님을 닮은 호박꽃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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