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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Dec 26. 2020

   너희는 우주를 여는  열쇠였어!

내가 매일 들여다 보고 마주하는 것들

서울을  벗어나자 간판과 가로등 불빛이 잦아들었다.  큼직 막 하게 썰어 놓은 듯한 수박 달이 가는 곳마다 우릴 따라다녔다. 또렷한 별 하나가 달 지킴이처럼 일정한 간격을 벌인 채 그 곁에 바들바들 떨고 서 있는 게 차창 밖으로 보였다.


성탄절 오밤중에 차를 타고 나선 것이다.  다 큰 아이가 일 끝나기 무섭게 집에서 지낸 세월이 길어지고, 어디든 가지 못하니 별이라도 보고 코에 바람만 넣고 오자는 얘기에 다 같이 나서기로 한 거다. 잠시 내려 쏟아질 듯한 별만 바라보다 다시 되돌아오자는 것이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답답함은 같은 마음이었을 테다.     

언제나 항상 크리스마스이브 날엔 집 근처 성당엘 갔었다. 냉담 중인데, '맘은 늘 이곳에처럼!' 마음의 위안을 가장 크게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순식간에 지나버린 일 년을 뒤돌아보고 앞으로 삶과 모두의 건강을 기도드리곤 했다.


퇴근길 집 앞에 있는 성당엘 잠시 들렀다. 성당 출입문은 잠그지 않고 앞마당만 개방을 한 상태였다. 성탄 미사는 온라인 예배로 대체한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알려줬었다. 아쉬움에 역시 본당은 꽁꽁 걸어 잠근 상태였다. 마리아상 앞에서 모두의 건강함을 기도했었다.  

 

2시간을 달리는 동안, 그이와 아드닝 밤길 안전 운전에 온 신경을 곧추 세웠다. 두 사람 덕분에 뒷자리에 앉은 따닝와 난 이 세상 그렇게 많은 캐럴송이 있는 것에 놀랐다. 같은 공간 다른 각자 생각 속으로.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의 별과 달을 보며 라디오 심야 방송에서 내보내는 캐럴과 축복 송에 평화와 은혜로움의 가득함에 감사했다.    


양평이란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할 즈음, 밤하늘 별들이 곳곳에서 반짝거렸다. 따닝은 저쪽 차창을 올려다보고 난 이쪽 차창 밖을 올려다보며 영롱한 보석을 맘에 주워 담기에 바빴다.  저 별이  북극성인지 카시오페이아인지  큰 개 작은 개자리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밤하늘의 별에 푹 빠졌던 건 이십 대 초반 겨울날. 등산 좋아하는 친구 손에 이끌려 소백산을 가기로 했다. 겨울산의 눈꽃은 소백산이 최고라며 눈만 내놓을 모든 장비를 갖춰 입고.

여러 시간 달려온 밤기차에서 새벽 2시 30분쯤 영주역에 내렸다. 기차역을 나오며 올려다본 밤하늘.

꺄오오옥~~~~!!!!!!

영롱한 초록별. 초록이 이리 아름다운 색인 줄 처음 알았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감흥은 잊을 수가 없다. 그 후 난 초록별을 보지 못하며 살고 있다.

이번에 가족들과 나서며 은근한 기대를 해 보았지만, 몇 안 보이는 서울 하늘과는 달리 초록 아니어도 수많은 별인 것에 감지덕지했다. 이렇게 많은 별을 볼 수 있는 것만도 어디야 하면서.


서울로 처음 이사 올 때가 2월이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구름 낀 잿빛, 회색빛 하늘이 계속되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갑갑해졌다.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았다. 만화에 나왔던 청소기라도 들고 저 구름을 다 빨아들여만 살 거 같았다. 물리적 한계를 느끼니 더 미칠 거 같았다.

서울 하늘이 계속 요런 상태라면 주기적으로 어디든 가서 파란 하늘을 보고 와야 숨 쉴 수 있을 거 같았다. 며칠 후, 다행스럽게 서울에서도 파란 하늘 볼 수 있음을 알게 되고. 우중충  갇혀 있는 느낌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다.    


우주 만물의 기운을 계속 주입받아야 원활히 호흡하는 것인가. 하늘을 한 번씩 봐줘야 하고, 봄을 준비하는 겨울눈의 부풀어 오름도 봐줘야 하고, 오들오들 떠는 겨울장미의 꿋꿋함도 들여다봐야 한다. 그것이 막혔을 때

답답함과 갑갑증이 찾아왔던 걸 보면, 그것들은 우주를 여는 열쇠임에  틀림없다. 내가 매일 마주하며 들여다보는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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