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무언가를 진정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면 만지고 보듬고 안아 주게 된다. 기다리던 사람의 등장이 나를 당황케 했다. 예뿌고 여릿한 체구에서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는 걸까.
등 뒤에 불룩하게 든 가방을 짊어지고, 몸 앞 쪽엔 또 하나의 큰 가방을 짊어진 거다.
“제가 키우는 냥이가 이 안에 들어있어요.”
사랑스럽고 예뻐 죽겠다는 듯 냥이를 소개해 주는 말속에 달달한 꿀이 뚝뚝 떨어졌다.
가방 문을 열어 예쁜 냥이 보라며 꺼내 보여주는데, 선뜻 만지질 못할 뿐만 아니라 보듬고 안는 건 더 못했다. 사랑하는 맘이 없는 거다.
지난 12월 초 살던 전셋집에서 엄동설한에 쫓겨나듯 방을 구한다고 했다. 말만 들어도 딱했다.
“냥이가 한 마리 있어요. 그것도 괜찮은지 여쭤봐 주세요.”
하루빨리 귀한 전세방을 구해야 하는 처지에 대부분 임대인 반기지 않는 냥이까지 키우고 있으니 먼저 양해를 구해야 한다. 가끔씩 냄새로 애를 먹었던 임대인이 싫어할 수 있어서이다.
올 들어 가장 추웠던 겨울 저녁 방을 보여 주러 다녔었다. 대학 들어가면서 서울에 홀로 올라와 자취 생활하는 여대생이 아들 같은 나이였다. 잠시 애처롭고 안쓰러운 맘을 가졌던 게 미안할 정도로 얘길 듣고 있으니 단단하고 강인하고 따뜻했다.
길가다가 엄마 냥이한테 버림받았는지 엄마를 잃었는지 바들바들 떨던 새끼 고양이를 데려다 키운 지 3년째. 조금 큰 방을 찾던 이유도 냥이가 이쪽저쪽 맘껏 다닐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했기에. 자기는 한 몸 뉠 곳만 있으면 된다 했다. 강추위와 상관없이 사람의 온기로 충분히 다른 사람도 데울 수 있구나 싶었다.
오늘 이사하는 날에 잔금을 치르기 위해 사무실에 나타난 여대생이 애지중지하는 냥이를 가방에 넣어 나타난 거였다. 공과금 정산 영수증에 사인을 하기 위해 잠시 내려놓은 가방을 들어보았다.
“어, 엄청 무거운데?”
“가방이랑 다 합치면 5킬로 넘어요.”
'우리 애기 엄청 건강하게 잘 커요.' 자랑이라도 하듯이 목소리가 통통 튀었다.
옆에 계시던 나이 든 노부부께서 “고양이가 엄청 큰 거 같아.”
“별로 안 커요.”
3년이나 키웠으니 누가 봐도 커 보이는데, 하나도 안 크단다. 5킬로 넘어도 하나도 안 무겁단다.
작은 핸드백이 무거울까 봐 남자 친구가 들어주는 것은 무엇이던가.
여대생이 5킬로 넘는 냥이 가방을 거뜬히 메고 다니는 것도 200그램도 안 되는 핸드백은 무거워 남친이 들어주는 이 모든 걸 사랑의 힘 마법 같은 힘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잘 먹고 잘 자라 개월 수에 비해 10킬로 훌쩍 넘는 우량아를 품에 안고 다니는 엄마들처럼 이 가녀린 여대생에게서 숨은 철인의 힘을 엿보았다.
이삿짐 정리하기도 바쁠 텐데 저녁 퇴근할 때쯤, 사무실엘 찾아왔다. 추운 날 좋은 방 구해주셔서 고마웠다며. 미리 맘먹고 사둔 떡이 이삿짐에 같이 들어가 있는 걸 겨우 찾아왔단다. 이삿짐에 꾸욱 납작 눌러진 콩과 팥이 들어간 찰떡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귀하고 고마운 맘에 이삿짐 정리되고 나면 놀러 간다고 했다. 엄마나 이모 같은지 필요할 때 언제든 찾을 거 같다. 작은 거라도 도움이 된다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