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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Jan 19. 2021

  한 통의 전화와 문자

생활 속  방심 금물이었다

“암 말하지 말고 들어가 있어.”

“엄마, 내 방에 부비부비 하러 들어오지 마!”

퇴근하며 받은 한 통의 전화와 문자를 집에 와서 전했더니 돌아온 가족들의  반응이다.


하루 저녁 사이에 작은 공간 큰 외딴 무인도에 내쫓겼다. 보이지 않는 철조망까지 처져 옴짝달싹 할 수가 없다. 제일 안 쪽에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야 했다. 화장실이 딸려 있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내가 사용하는 컴퓨터도 거실 tv 옆에 있어 홀로 갇혀 할 수 있는 거라곤 휴대폰만 잠시 만지작 거릴 뿐 오래 들여다보지도 못한다.

한 통의 전화와 문자 한 통에 정말 고립된 사람. 견우와 직녀는 오작교에서 칠월 칠석날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지. 일 년에 한 번도 아닌 더 멀리 떨어뜨려질 수 있겠구나 싶었다.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 낼 보건소 나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문자와 전화였다. 검사받고 결과 나오기 전까지 가족들끼리도 자가 격리해야 하고.

 

‘나 홀로 덩그러니!’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싶었다.

늘 가능성은 있었다. 사람 만나는 일을 하고 점심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식당엘 가고 있으니. 내가 그 당사자가 되고 보니 멍해졌다. 앞이 캄캄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식구들이 그렇게 가지 말라고 말리던  2~3주에 한 번 간 목욕탕이 문제가 되었다.  지난 일요일 아침  일찍 다녀온다고 후딱 씻고 나왔는데......


나하나의 문제가 아니었다. 가족들. 그이와 일터 사람들. 따닝과 따닝의 일터 사람들. 아드닝이 요즘 만나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  나와 같이 일하시는 분과 식당 사람들까지. 만약 내가 확진자로 나오면 생각만 해도 앞이 캄캄했다.


며칠 전 만두 칼국수를 휴대용 인덕션에 올려놓고 냄비 한 솥 끓여 식구들이 같이 떠먹기도 했으니.

생각하면 할수록 가족들의 즉각 돌아왔던 홀대에 서운함과 함께 맘이 무거워 땅으로 꺼질 거 같았다.


안방 안에 다행이라면 먼지 가득 앉은 책장을 참 오랜만에 만지작거릴 수 있다는 거. 방방이 우리 집에 제일 많은 게 책인 걸 보면 참 많이도 사들였구나 싶다.


 어느 순간부터 책을 사긴 해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시간이야 짬 내면 된다지만, 신체적으로 불편함이 생긴 거다. 책을 보고 있노라면 글자가 두 겹 세 겹으로 보이는 거다. 돋보기 없이는 그 작은 글자를 한 줄도 읽기 힘들어졌으니 늘 봐도 봐도 새롭게 다가오는 그 좋은 책을 보기 어려워진 거다.


가득 쌓인 먼지를 닦아내고 이 책 저책 꺼내 들고 펼쳐보았다. 불안하고 두려운 맘이 조금 편안해졌다. 소모임에서 권하는 책은 차일피일 미루다가 일욜 밤에 주문했더니 배송 중에 있고.


낼 아침 일찍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는데, 먼저 검사받았던 사람들에 의하면 많이 아팠다는 얘기를 하니 겁도 나고 결과가 걱정되었다. 음성과 양성 동전의 양면과 같은 갈림길에 놓인 상태가 되니 한 없이 작아졌다.


한 밤중에 납작 엎드렸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으니 모두 건강하게 해 달라고. 이러니 예쁜 맘으로 살 수밖에 없다. 삶 속에서 가족들과 가까운 이의 신체적인 질병이나 경제적인 어려움 등. 감당하기 힘든 순간은 언제든 찾아들 수 있기에. 거리낌 없는 삶을  살려고 노력을 할 수밖에 없는 거다.  

요즘같이 한 치 앞으로 모르고 사는 삶이니...


“괜찮다. 하나도 안 아프다.”

잔뜩 겁먹고 있는 내게 그이는 딱 잘라 말했다.

보건소는 춥고 멀어서 걸어가기 힘든 곳에 있었다. 대중교통은 더더욱 안 되고. 자가 격리해야 될 나인데, 서울로 이사를 온 뒤론 운전을 안 했으니. 그이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침 일찍 도착한 보건소엔 검사받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있으면 기다리고 검사받는 동안 더 떨리고 불안했을 텐데... 증세 있는 사람이 그만큼 줄었다는 말도 되고 확진자도 줄어드는 것이니 그마저도 감사한 일이었다.  


 보건소 바깥 부스에 설치된 간단한 문진표에 신상을 기록하고 비닐에 쌓인 검사기를 받아 들고 안내하는 밀폐된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긴 솜방망이로 코 안 깊숙이 집어넣었다 빼냈다. 다음 다른 솜방망이로 입 안을 목젖 너머 넣었다 빼냈다. 생각보다 검사는 아프지 않고 간단히 끝났다.


집으로 돌아갈 때 걸어가거나 자차를 이용하라 했다. 그마저 어려우면 대중교통은 안 되고 택시를 타라고 일러주었다. 관할 구민인지 몇 번 물어본 걸로 봐선 자기 지역에 살고 있는 보건소를 가야 하는 거 같다.  보호해 주는 나라가 있고 지역이 있고, 버림받은 느낌을 젤 가까이서 받았지만, 태워주는 가족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집으로 돌아와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가 격리에 들어가야 했다. 그동안 밖에 나가 일한다는 이유로 집 안을 참 엉망진창 하고 산 게 눈에 들어왔다. 잠시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더니 정말 그랬다. 혹시 뒷일을 모르니 서랍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잔뜩 들어가 문도 안 열리는 걸 다 끄집어냈다. 정리할 물건들보다 그 속에 적힌 메모나 오래전 학부모님께 받은 편지 등등...


내 삶의 일부였을 텐데. 기록된 걸 보니 그 시절로 되돌아가 있는 감흥이 밀려왔다. 서랍 정리하는데 하루 종일 걸리는 듯싶었다. 그 많은 추억의 시간을 어찌 하루로 다 만날 수 있으랴!

책장도 날 잡아야 하는데... 낼 오전이나 오후에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오전 일찍 음성으로 결과가 나오면 출근해야 하고, 오후에 나오면 하루 쉬면서 책장정리까지 하고.  양성으로 나오면 격리 치료시설로 눈총을 받으며 총총히 사라져야 한다.


출근할 생각은 엄두도 안 나고 휴대폰 결과만 기다렸다.

그래도 혹시 몰라 머리를 감으며 씻고 있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가야 하니.


생각보다 일찍 오전 9시가 되니 문자가 왔다.

(**구 보건소) 귀하의 코로나 바이러스 –19 검사 결과 ‘음성’ 판정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개인이 보내긴 해도 휴대폰도 아닐 테고, 정해진 폼으로 적어 보내는 것일 텐데, 나는 만세라도 부를 기세였다. 문자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감사하단 답장과 공손히 인사까지 드렸다. 그러면서 출근을 위한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밖엔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

‘귀찮게 눈은 왜 내리고 난리람.’ 이 되지 않은 맘이라서 얼마나 감사한지.    


가까이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다들 개인위생 철저히 해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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