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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Jan 22. 2021

[미나리]  또 한 번 시작이다!

꿋꿋함으로 살아내는 질긴 생명력

“얘네 들 정말 대단해!!”

오며 가며 볼 때마다 올 겨울 내내 나도 모르게 나오는 말이다.     


집 안 가득 향긋한 향기와 싱그럽고 상큼한 초록이 두 눈의 청량감을 담당하고 있었다. 서랍장 위에 놓인 질그릇 속 미나리 줄기가 뻗어 나오고 치렁하게 늘어졌다. 머리카락 질끈 묶듯 해 줄 수도 없고, 몸 자체를 구부리며 커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겨울 내내 두고 싶은 한 가득이었다. 지지대도 없이 뻗어나가는 게 버거워 보였다. 더 이상은 눈의 시원한 만을 위해 둘 수 없었다. 때마침 서랍 정리하며 잃어버린 고기 철판의 연결선을 찾아냈다. 이때만을 기다리기도 한 듯 수경 재배한 것보다 훨씬 많이 자란 미나리 수확에 들어갔다. 몇 가닥씩 잡고 조심스레 잘라주었다.

흐르는 물에 살랑살랑 흔들어 씻었다. 여리고 보드라운 느낌이 좋았다. 파채와 미나리를 섞어 갖은양념 넣고 조물조물 묻혀 내놓았다. 한 젓가락 집어 들어 맛을 본 아드닝과 따닝은

“으음, 정말 미나리 향이 향긋하고 맛있어요.”

말해주니 싹둑 잘린 미나리 뿌리를 버리지 않은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무슨 맘에선지 뿌리를 버리지 못하고 그릇에 담아 물을 부어준 것이다. 아마도 브런치에 글쓰기 시작하며 자잘하게 생긴 생명 존중 한 가닥 마음 줄기가 뻗어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처음 사 왔을 때 빨간 띠 두른 부분까지 단칼에 싹둑 잘라 나물 해서 먹었다. 그 뒤 물에 담가 둔 뿌리가 밀어 올린 미나리는 풍성하게 360도 사방으로 자랐다. 몇 가닥씩 잡고 가위로 잘라주어야 했다. 반듯하게  잘라야 할 거 같아 괜히 조심스러웠다. 헤어숍의 미용사가 된 양 진땀을 빼듯 다 자르고 났더니 처음 잘라보는 사람처럼 삐죽삐죽한 삭발이 된 듯했다.    

 

또 나올까 반신반의하며 물을 부어 뭉친 뿌리를 담가 두었다. 하루 이틀 지나자 성미 급한 녀석들 준비 땅! 하고 있는 것보다 빠르게 밀고 올라오는 거다. 고 녀석들 물을 갈아주는데, 웃음이 났다. 형체를 갖춰가며 밀어 올리는 그 힘에 나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너희들, 정말 대단하구나! 참말 장하구나!”

더 이상의 찬사가 필요치 않을 만큼 살아내는 저 꿋꿋함에!

질긴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이 겨울, 이보다 경이롭고 대단한 건 없노라! 외치는 듯한 광경을 눈앞에서 경험하고 있던 차였다.

곳곳에서 홍보에 나선 영화[미나리]가 곧 개봉될 거란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미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작품이라 하고 믿고 보는 연기에 대한 열정과 삶의  철학이 확고하신  윤여정님이 나오신다고 한다.


 내가 공들여 키우고 있는 미나리를 매일 보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곧 개봉될 영화가 기대가 되었다.     


미국 이민 간 가족들이 정착하기까지 고군분투하며 일궈낸 삶의 이야기!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에선 “자기 추억이나 노스탤지어에 빠져서 영화가 질척거리는 느낌이 전혀 없고, 자기 자신의 이야기지만 묘하게 거리가 있는 거 같았다.”하고 말하고 있다.  

  

한 가닥이 아닌 여럿이 모여 밀어 올린 미나리들.

싹둑이든 여러 가닥이든 잘라내도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고 싱싱하게 푸르게 더 푸르게 밀어 올리는 미나리 같은 영화 이리라.    


여럿이 함께 하며 늘 새롭게 일어서는 미나리처럼

씩씩하게 살아가는 그 영화 속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네 삶의 이야기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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