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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Jan 15. 2021

  초록은 동색

맘의 정화와 편안함을 주는 초록이고 싶어라!

태어나며 엉거주춤 바로 일어서는 송아지나 망아지 마냥 나오면서 쑤욱 자랐다. 그들의 태어나는 순간 또한 어느 생명 못지않게 경이로왔다. 짙고 도톰한 가족 이파리들 사이 빼꼼 얼굴을 내밀고 있다. 연하고 보드라운 연둣잎! 씨앗 때부터 도르르 꽁꽁 감겼던 걸 두르르 풀려하니 힘이 드는 거다.    

 

‘아얏!’ 

이파리가 갈라지며 내는 소리였다. 새 생명이 세상에 나오는 일은 눈부심이고, 놀라움이고, 사랑이고 아픔이다. 실내 식물이라 뜸뜸이 주는 물을 먹고 달라져 갔다. 먼저 나온 이파리들처럼 진하고 두툼해지고 있는 거다. 자세히 보지 않거나 마구 섞여 놓으면 누가 형, 누나 이파리인지 구별하지 못할 수도.     

쌍둥이들 똑같이 닮아 보인다며  누가 형, 언니, 동생인지 구별 못하는 이들과 달리  그들 엄마는 숨소리만 들어도 알아차린다지 않던가.  그것까진 아니어도 매일 돌보는 엄마 격이니 섞어놓는다 해도 먼저 나온 녀석 알아차릴 정도까진 되는 거다.    


‘제 한 몸 제대로 가눌 수 있을까?’ 

여리고 풋풋함 폴폴 날리던 지난봄과 여름 지나 거칠고 까칠하다 못해 답답한 겨울의 미세먼지 정화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고 있으니. 삭막한 사무실 생기와 싱그러움 불어넣는 건 덤이다.   

      

지난봄 ‘띠리리 띠리리~’ 울리는 사무실 벨소리에 깜짝깜짝 놀랐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기척이 느껴지면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숨고 싶었다.     


새로운 분야 새 일의 시작은 모르는 이가 볼 땐 새로 태어남의 눈부심이고 환희겠지만, 본인에겐 낯섦이고 아픔이다. 실수를 할 땐 민낯과 속살을 내보이는 이상의 부끄럼이 있어 자기 머리를 쥐어박는 일이 나도 모르게 일어났다.     


가게를 찾을 때면 둔감이가 아니라면 주인장의 반응을 촉으로 느낄 수 있을 테다.

‘그래 너는 구경만 하다 갈 사람이니 나는 더 이상 에너지 쏟지 않을 테다. 둘러보고 가시던가.’ 

대놓고 내보이는 대우가 기분 별로라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  대개 그 분야 오래 일한 사람들이 느끼는 에너지 낭비 줄이기 위한 방법일 텐데, 상대방은 각자의 생각으로 느끼는 거다.


단골집을 찾을 때면 초보 직원을 만날 때가 있다. 새 분야에서 일하는 이의 넘치는 의지가 느껴진다. 그 사람이 사줄 이인지, 시장조사만 할 사람인지 생각지 않는다. 찾아오신 것만도  감사한 일이라며 누구든 친절과 상냥함으로 대해주신다. 

대하는 사람의 대우가 서툴고 허둥대는 모습에서 초보라는 게 바로 느껴져도 잘하려 애쓰는 모습이니 잘 해내라는 응원의 맘 속 소리가 곁들여진다.    


눈부심과 아픔을 딛고 일어선 여린 연둣잎이 진하고 단단한 초록으로 변해가는 것처럼 새로운 분야의 일에서 나도 서서히 내 분야의 일처럼 익숙하게 물들어 가고 있다.


‘저 사람은  물건 사 줄 사람 안 사 줄 사람 촉이 온다고 해서 둘러보고 알아보고 가시던가!’ 

그런 맘 들라치면 먼지 가득 빨아들여 우중충 초록 이파리 쓱쓱 사사삭 닦아주듯 

흐릿한 내 맘도 뽀드득뽀드득 닦아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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