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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Dec 16. 2020

공동주택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개선해드립니다.

고양시 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 2020. 11. 3. 업로드 기사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들이 이런 공간에서 밥을 먹고 휴식을 하고 있었는지, 그동안 이들을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고양시가 앞장서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경기도 노동국 국장의 고백이다. 우리는 경기도 노동국 김규식 국장이 참여하는 가운데 옥빛마을 16단지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찾았다. 휴게실은 평온하고 깨끗한 우리들의 집 지하에 있다. 지하로 내려가자 콘크리트와 철골이 그대로 드러난 천장 아래 청소도구가 가지런히 모여 있고 청소용으로 사용되는 걸레와 장갑 등이 건조대 위에 널려 있었다. 자본주의 상징인 아파트를 버티고 있는 콘크리트 기둥들을 지나 공간 끝 쪽에 식탁과 의자 몇 개가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잠시 몸을 기댈 수 있는 방 하나. 휴식을 취하는 곳이라면 아늑하고 평안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역한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우리를 쏘아붙였다. 습한 냄새와 화장실 오물 냄새가 섞여 축축한 지하 공간을 채웠다. 잠시도 머무르기 싫은,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곳에 청소노동자의 휴게실이 초라하게 구겨져 있었다.    



고양시 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는 <2020 경기도 공동주택 노동자 휴게실 개선 사업> 계획안으로 <2020 경기도 지역참여형 노동 협업 공모사업>에 선정이 되었다. 손용선 센터장은 지난해 아파트 경비원의 노동문제 상담 사업을 하면서 아파트 노동자들의 열악한 휴게실에 대한 현실을 파악하게 되었다. 그 후로 사업계획을 세우고 현실화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왔다. 그리고 오늘, 고양시 옥빛마을 16단지에서 그 첫 삽을 떼었다. “누리봄 쉼터 1호점”이다. 손 센터장은 “몇 년이 걸리더라도 고양시의 모든 공동주택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것이 자신의 소임으로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시는 지난 7월 서류평가와 전문가의 세밀한 현장조사를 거쳐 사업대상을 선별하였다. 고양시에 있는 2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이 사업대상이다. 구조물, 천장, 바닥, 부대시설, 안전시설, 악취, 습도를 체크하고 지하층에서 지상층으로 옮길 수 있는 조건에 가산점을 주는 등 최상의 환경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2020년에는 옥빛마을 16단지, 주교동 우림아파트, 무원 5단지, 푸른 마을 7단지, 장미 7차 아파트, 백송 9단지, 호수마을 4단지, 강선마을 5단지, 덕이동 태영아파트, 성저마을 4단지 총 10곳이 선정이 되었다.

  

  

옥빛마을 16단지가 “누리봄 쉼터 1호점”이 된 이유가 있다. 휴게실을 지하층에서 지상층으로 이동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동주택 노동자 휴게실은 모두 지하층에 있거나 주차장 구석에 설치되어 있어 폭염이나 혹한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공동주택 노동자들은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한다.      

지난해 모 대학에서는 계단 밑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던 청소노동자가 사망한 일도 있었다. 수 백 개, 수 천 개의 방이 지어지는데 이들을 위한 방은 지상 층에 단 한 칸도 할애되지 않았다. 모두 지하로 숨어들었다. 영화 기생충이 생각났다. 보이지 않는 곳에 우리들의 이웃이 바퀴벌레처럼 숨어있어야 하는 이유, 차별의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한국의 건축기술은 가히 세계적인 수준이다. 50층 초고층 건물이 쉽게 세워지는 대단한 나라인데 공동주택 노동자의 휴게실은 단 한층도 지상으로 올라오지 못한 체 아직도 지하에 머물러 있다. 우리 국민들의 마음이 악의적이어서 일까? 아닐 것이다. 아마도 현행법상 관리사무소와 노동자 휴게실 면적이 묶여있는 등 자본의 이익만이 고려된 시스템이 문제이다. 시스템 작동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어느 설문조사에 의하면 국민들은 청소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쉽게 이루어 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청소노동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할 수 없다. 사회적 약자는 자발적 침묵이 자기 방어의 최선책이라고 생각한다. 해고의 불안과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센터에서 직접 만들어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는 마스크 걸이를 전달해 줄 겸 내가 사는 아파트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찾아가 보았다. 물론 어느 동 지하층에 있다. 청소노동자 한분에게 휴게실 사용에 불편한 점은 없냐고 묻자 "잘해놓았지요. 괜찮아요."라고 대답을 하신다. 정리는 잘되었지만 지하 특유의 곰팡이와 습한 냄새는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나라면 10분도 참지 못할 것 같았다.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진짜 좋아서 좋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나도 까마득히 몰랐던 내 주변의 일. 이날 현장을 돌아본 김규식 국장은 “이런 현실을 이제야 알게 되어 부끄럽다. 누군가가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들여다보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심정을 표했다. 국장의 고백이 좋았다. 몰랐다는 걸 알았으니 앞으로 현장을 더 알고 싶을 것이고 알려고 노력할 것이다. 불현듯 지금의 경제성장만 쫓는 인간의 윤리적 한계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자기 고백이 아닐까? “내가 너의 아픔을 이제야 알게 되었구나. 미안하다. 부끄럽다.”     


옥빛마을 16단지 아파트 측은 “예산이 적은 관계로 전문가 수준의 직원들이 직접 수고를 하고 있지만 적은 예산도 감사하다.”며 “청소노동자들이 그동안 배수관에서 오물이라도 흘러내리면 그것을 닦아내느라 힘이 들었는데 이제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어 기쁘다”는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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