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도는 힘
별일 없는 또 하루가 쏜살같이 달아났다. 남들보다 많은 시간 일을 하는 것도, 집안일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나의 하루는 바삐 지나간다. 그나마 오늘은 아침부터 일정이 있는 날이었다. 일정이 있어 바쁘다고 느껴진 건 다행이다. 누구는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데 나는 숨만 쉬고 있어도 세월이 찌는 기분이다.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바쁜 이유의 큰 사정은 두 가지 쯤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한 가지는 나이 때문이다. 이건 명백히 나이 탓이다. 다른 한 가지는 내가 시급인생이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도 바쁜 이유, 첫 번째 사정을 따져 보자. 나이가 드니 일하고 먹고 자고, 기초 생활을 해결하는 것 말고도 또 다른 시간비용이 많이 들게 된다. 일단, 병원에 자주 가게 된다. 나는 체력이 약하긴 했어도 잔병치레 하나 없이 살아왔다. 병원갈일이 드물었다. 나이가 마흔이 되면서 국가에서 종합건강검진을 받으라고 종용했다. 40대 초반엔 연말 즈음에 한해를 마무리하는 의식을 행사하듯 형식적인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런데 40대 후반이 되자 병원갈일이 귀찮을 정도로 많아졌다. 치과, 안과, 부인과, 내분비과, 피부과, 정형외과, 류마티스내과. 건강진료과가 이렇게 많은 지 새삼 알게 되었다. 한번 가면 한나절은 기본이다. 또 병원뿐인가? 미용실을 문턱이 닳도록 다녀야 한다. 미용을 위해서라면 억울하지도 않다. 작년부터 흰머리 염색을 시작했다. 이렇게 병원투어와 미용실을 열심히 다니다 보면 일 년이 훅 지나간다. 이 모든 건 순전히 나이 때문에 생긴 분주함이다.
두 번째 이유, 직장생활을 할 때 급여 조정이 들어갈 때마다 시급을 계산해보곤 했었다. ‘내가 과연 최저임금은 받고나 있는 것일까?’ 그런 의심증에서. 다행히도(?) 7년 내내 딱 최저임금만큼만 받았다. 그 뒤로 하기 싫은 일을 하거나, 인건비 대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거나, 벅찬 일을 할 때면 시급계산을 습관처럼 하게 되었다. 특히나 집안 청소를 다 끝내고나면 꼭!! 시계를 보게 된다.
“화장실 청소, 빨래를 하고 나니 두 시간이나 지났네. 이게 다 그림자 노동이었어. 힘 들기는 또 얼마나 힘들어? 시급으로 따지면 2만원인가?”
또 가끔 취재기사 쓰는 일이 벅찰 때면,
“기사 한편 쓰는데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시급도 못 버는 거네?”
젊은 시절에는 불필요했던 물리적 시간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지만 시급인생이 나를 조급증 환자로 부추겼던 것 같다. 나는 어쩌면 물리적 시간보다 조급증에 의한 마음의 시간이 바빴던 것은 아닐까? 노인의 시간은 어린아이의 시간보다 몇 배 속도로 빠르게 지나간다고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빨리 지나가거나 작아지는 시간. 나이가 들수록 시간도 노화된 피부처럼 점점 쪼그라드는 것만 같다. 시간도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