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관계학

by 헬로해피 최유영

마음의 관계학


나의 첫사랑은 대학교 2학년 때 20살이 되어서 찾아왔다. 짝사랑이었다. 어느 비 오는 날 영어학원으로 아르바이트를 가는데 비를 피해 내 우산 속으로 들어온 남자가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사람에 대한 호감으로 짝사랑에 빠졌다. 그때 나는 일기장에 ‘풍금이 있던 자리’의 작가 신경숙의 훙내를 내며 편지 형식의 글을 수없이 쓰기도 했다지. 상대가 영화 클래식의 남주 조인성도 아니고 어떻게 그것이 사랑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첫사랑이다. 사랑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던 어리고 미숙한 마음. 순수했던 처음. 지금이라면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는가. 우산 한번 같이 썼다고 사랑이라니. 하지만 그 남자는 내 가장 친한 친구 언니의 남자가 되었다. 그때 사랑은 복잡한 지도와 같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대학 2년 차에 딱 한번 소개팅을 한 적이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 남자 애는 의경으로 데모를 진압하다가 눈을 다쳐서 의가사 제대를 했다. 골초여서 수시로 재떨이에, 길바닥에 가래침을 찐득하게 뱉었다. 나는 그 애에 대해서 더럽다거나 좋다거나 그런 감정은 전혀 없었다. 그냥 좀 껄렁껄렁한 게 멋이라고 생각하는 조금 삐딱한 애라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서 그 애를 생각하지도 않았고 심장도 두근거리지 않았다. 그 애에게 연락이 오면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마시고 왔다. 그 애도 나랑 노는 것이 별 재미가 없었는지 몇 번 만나다 그만 만나자고 했다. 이유는 내가 곧 인천으로 이사를 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러자고 했다. 그때 내가 참으로 무미건조한 사람이란 걸 알았다.


한 친구는 입대 후 그 많던 풍문의 여자 친구들이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는지, 휴가 때에 두 번 정도 나를 만나러 왔다. 한동안 군사 우편도 보냈다. 그 친구는 내 친한 여자 친구가 마음에 둘 정도로 키 184, 마른 체형에 꼭 잘생긴 농구선수 같았다. 나는 장교복을 입고 찾아온 그 친구를 직접 만나게 되자 그 잘생긴 친구가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말 한마디 안 하고 뚱한 상태로 우린 헤어졌다. 나는 그 아이가 내 손이라도 잡을 가봐 엄청 걱정을 했다. 그때 연애에 있어 외모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사람은 충무로에서 부터 지하철 1호선 주안역 까지 나를 뒤따라왔다. 나는 제물포에 살았다. 서울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주안역이 올 때까지 나는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에서 그가 어느새 존재를 들어내어 내 옆에 서 있었다. 황당했다. 콩나물 시루 같은 지하철 안에서 그의 존재는 내 불쾌지수를 높였다. 나는 짜증을 냈나? 그랬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나는 그날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퇴근길에 뒤 쫓아오는 찌질한 대학원생에게 한 성깔 하는 목소리로 한 껏 짜증을 냈다. 그랬더니 그는 나에 대한 마음을 당장 멈췄다. 그때 연애에 있어 그래도 외모가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준 사건이었다.


20대 중반, 나는 운전 학원을 다녔다. 그곳에서 군입대를 앞두고 운전을 배우러 온 호기 어린 3살 연하 남자애를 만났는데 자기가 제대하면 꼭 연락을 해달라고 무슨 누런 종이를 쭉 찢어서 전화번호를 적더니 내게 주었다. 나는 주머니에 넣고 다니 다가 휴지통에 무의미하게 버렸다. 그때 연하의 남자도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어긋난 관계들. 마음의 ‘주고받음’이 미숙하고 불분명한 사태가 만들어 낸 것이다. 마음의 관계는 ‘Give and Take’에서 발전되고 확장되어 간다. 내 짝사랑이 말해주듯, 마음이란 내가 주는 만큼 돌아오지 않으면 괴로움도 그런 괴로움이 없다. 되돌아오지 않는 마음의 관계들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사랑의 결실이 맺어졌다면 주고받은 서로의 마음이나 물성의 관계가 균형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결혼은 열정적인 사랑보다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마음의 온도와 무게가 수평을 이뤘을 때 성공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온도가 남녀 각각 80+40의 평균값이 60, 50+50의 평균값이 50일 때, 마음이 한 사람에게 기울어진 전자보다 마음의 평균온도가 낮더라도 후자의 조합이 맺어질 확률이 더 높다. 손해 보는 듯한 마음처럼 사랑에 방해가 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주고받는 이해와 신뢰가 서로 비슷한 수평의 관계가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좋은 관계의 기반 위에서 자라나는 것이다. 좋은 관계란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한 마음의 평균값이 높아서가 아니라 비슷해서가 아닐까?


내 첫사랑은 어리고 미숙한 짝사랑에 불과했지만 내 마음의 온도로 치자면 가장 뜨겁다. 그러나 당연히 성공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의 마음의 온도 차이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서로에 대한 미지근한 마음이 균형을 이룬 남자와 결혼을 했고 비교적 잘 살아가고 있다.


좋은 관계로 남아있는 경우들을 보면 ‘Give and Take’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런 관계는 사랑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관계에서도 아주 중요하다. 내가 준 만큼 되돌려 받기, 받은 만큼 되돌려 주기, 참으로 각박한 인간관계법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원만한 인간관계를 반추해보면 ‘주고받음’이 적절할 때 더 좋은 관계로 발전될 수 있었다. 비슷한 사랑의 온도를 찾아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끼리 맺는 결혼, 비슷한 철학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 등이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마음의 관계학’이다.


비슷한 마음들의 만남은 불필요한 불협화음이나 피로감을 줄일 수 있다. 때문에 현대의 사람들은 마음의 온도가 맞는 사람들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어찌 보면 이와 같은 행위는 더 큰 세상을 위한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비슷한 온도의 집단지성을 갖기 위한 노력과 관계의 범주안에 들어가기 위한 개인의 노력들이 덩어리 덩어리로 만들어져 사회에 확대된다면 전쟁 없는 평화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음의 온도가 맞는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2021. 1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