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관계학
텅 빈 마음이 들거든
7-8년 전 쭘 이었을까? 어떤 친구가 내게 말했다.
“텅 빈 마음이 들거든 차라리 김칫국에 밥 말아먹고 속이나 채우렴…”
오죽 내가 답답해 보였으면 그랬을까 이해는 되지만 나는 친구의 말이 섭섭했다. 그때 나는 많이 낙담하여 세상에서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만약에 있다면 나의 마음과 똑 같이 닮은 내그림자만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차라리 친구의 말처럼 김칫국에 밥이나 말아먹고 속을 든든하게 채우는 것이 텅 빈 마음 타령을 하는 것보다 더 생산적인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나는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의지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말을 걸 대상을 찾는 대신 나 자신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를 돌보기 시작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혼자 하는 것들에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거절당하는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혼자라서 편했다. 혼자라도 외롭지 않게 되었다. 나와 함께 보내는 고독한 시간들이 좋아졌다. 혼자 있지만 외롭지 않은 내가 되자 나는 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나의 텅 빈 마음을 ‘나’로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그 친구의 말이 완벽하게 이해가 된다. 텅 빈 마음으로 우울을 갖는 대신 자신을 돌보는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라는 뜻이었다. 친구의 독설은 나를 세상으로부터 독립시켜주는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 마음이 힘들고 너덜 해져 혼자 서기 힘든 이들에겐 가장 혹독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나를 책임질 수 있고 나를 돌볼 수 있는 건 오직 ‘나’ 뿐이다. 나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도 ‘나’ 자신 뿐이며, 스러지는 나의 삶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도 ‘나’ 자신이다. 내 안을 가장 완벽하게 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 이어야 한다. 그래서 마음이라는 것은 나의 의지 없이는 어떤 치유도 불가능하다. 아무리 좋은 친구라 할지라도 함께 서서 비를 맞아 줄 수는 있지만 빗속을 걸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 수는 없다. 발걸음을 떼는 것은 오로지 자기 의지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그때의 나처럼 자신의 마음이 스러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면 슬퍼하고 우울해하는 대신 김칫국에 밥을 말아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자신과 함께 하는 여행을 떠나야 한다. 나에게 말을 걸고 나에게 보폭을 맞추며 나와 함께 걸어야 한다. 나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결코 외롭지 않은 길이 될 것이다. 나를 돌보는 일이 되고 스러지는 나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워 줄 것이다.
친구의 말은 비속적인 언어인 듯 하지만 얼마나 깊이 있는 철학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