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관계학
나는 우리 집안의 1남 6녀 중 막내딸로서 부모님의 가장 연약한 모습을 가장 늦게까지 보았다. 우리 집 3대 독자 오빠가 오토바이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부모님은 아들이라는 부모를 잃은 고아가 되었다. 그래서 아들 대신 내 바로 위 다섯째 언니가 우리 집 가장이 되어 부모님을 책임졌다. 그런 언니가 결혼을 해버리자 나는 몹시 두려웠다. 나는 부모님에 대한 걱정보다 앞으로의 내 앞날이 더 걱정되었다. 그때 나는 자립할 수 없는 불투명한 내 미래의 문제만으로 충분히 우울하고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스물여섯에 도망치듯 노쇠한 부모님을 두고 결혼을 해 버렸다. 나는 부모님을 돌보는 대신 새로운 가정을 꾸려 내 아이들과 남편을 돌보는 삶으로 전환했다.
이 일로 지금 가장 후회되는 것은 내가 결혼을 했더라도 내 부모님과 함께 살아야 했다는 것이다. 변명을 하자면, 나는 너무 나약하고 어렸다. 그러나 얼마나 이기적이고 마음이 얕았던 가.
아이를 갖기 전까지 주말마다 부모님 댁에 홀로 가서 자고 오곤 했다. 어느 월요일 아침, 다시 출근을 위해 부모님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집 앞까지 나와서 나를 배웅해 주셨다. 어머니는 내가 멀어질 때까지 내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서 계셨다. 나는 하염없이 나를 바라보고 계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아서 인천에서 일산까지 오는 동안 콸콸 틀어 논 수도꼭지처럼 쉴 새 없이 울었다. 주변의 창피함도 신경 쓰지 못할 만큼 울기만 했다. 지금도 그때의 어머니의 모습만 생각하면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머님의 그 모습이 가장 사무쳐서 통곡했다. 나는 내 삶을 위해 부모님을 돌보지 않고 내 살길을 찾아 떠나온 것에 대한 죄책감이 너무도 컸다. 부모님은 내가 떠나온 지 몇 해가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내가 막내 결혼은 시키고 죽어야 할 텐데…”
어머니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했던 말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마흔에 낳으셨다. 어머니도 막내딸로서 부모님을 일찍 여의셨기 때문에 이런 걱정을 하신다고 했다.
“네 생일이 언제라고?”
“음력 2월 26일!”
“태어난 시는”
“밤 11시!”
“참 똑똑하구나.”
또 어머니는 내가 유아 때부터 내 생일과 태어난 시를 잊지 않도록 달달 외우게 하셨다. 어머니는 부모를 일찍 여의어 자신의 생일이 정확하지 않다고 하셨다. 그래서 혹시라도 어머니가 일찍 죽으면 나도 내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게 될까 걱정하셨다.
내가 스물아홉 되던 해에 큰 아이를 낳고 어머니는 심근경색 질환이 짙어져 파킨슨병을 앓으셨다. 어머니는 1년여를 대학병원과 요양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1년 만에 어머니 뒤를 따라가셨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병환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채 사셨기 때문에 많은 자식을 키우는 일과 집안 살림을 어머니께서 모두 도맡아야 했다.
어머니는 참으로 열심히 사셨다. 천상 연약하고 고운 어머니는 7남매를 위해 여장부가 되어야 했다. 땅을 늘려가며 농사를 지었고 집도 늘렸다. 새벽과 밤으로는 우리 집 농사를 지었고 낮에는 품을 팔아서 생활비로 쓸 돈을 마련하셨다. 그리고 농번기에는 시내에 나가서 식당일을 하셨다. 홀로 모든 일을 감당하셨다. 어머니는 혹독한 삶 속에서도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만약 결혼하지 않았다면 우리 부모님께서 더 오래 살아 계셨을까? 내가 남아서 부모님을 돌봤다면…. 아마도 어머니는 내가 마지막으로 결혼을 하자 이제는 비로소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막래가 결혼할 때까지는 살아야겠다는 당신의 미션이 성공했다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 생의 짐을 모두 벗어버린 듯 홀가분해졌을 것이다. 내 결혼으로 어머니의 생명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당신의 의지처럼 내 결혼을 보고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온몸으로 희생의 삶을 살아냈지만 자식인 나는 부모님께 그러하지 않았다. 이제 나는 내 어머니의 그 마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나에게도 내 온몸을 태워 지키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처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 나의 자식들이다.
사랑은 어떠한 경우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내 어머니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한적은 없었지만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느끼며 살았다. 어머니는 나를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내 어머니처럼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 자식을 포기하지 않을것이다.
이 글을 쓰는 새벽녘 나는 죄스러운 후회의 마음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을 묻기 위해 물소리를 크게 틀어 샤워를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