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관계학
그는 자신의 삶이 자신의 처지가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나는 굳이 그에게 위로의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알고 보면 78억 인구 중 사정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다 사정이 있어요.”
그는 생각지 못한 나의 반응에 반색을 하며 내게 다시 말을 되돌려 주었다.
“그쵸? 이건희도 이재용도 돈은 많지만 참 사정이 많아 보이죠!”
나는 돈이 많은 사람들에 내 생각을 덧대고 싶지 않지만 그가 말한 대로 정말 그랬다. 우리 모두가 흔히들 알고 있고 말하듯, 돈이 많다고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들도 살다보면 나름의 사정이 생기기도 할 것이고 겉으로 들어나지 않는 슬픔이 배어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부자라도 다 행복할 수 없겠지. 부자 사람은 돈과 관련된 나름의 불행할 이유를 갖고 있는 법이지.’
그가 말한 건 이런 뜻을 두고 한 말 같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돈을 쫓아 산다. 나는 인간이 생을 살며 왜 그렇게 돈을 쫓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돈은 우리에게 슬픈 일이 생기더라도 그 슬픔이 더 깊어지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돈이 있으면 병을 치료할 수 있고 떠나려는 애인을 붙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게 또 다른 슬픔이 드리워지는 일이 생기면 잠시 마음을 쉴 수 있도록 슬픔이 일어난 곳에서 되도록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지금 내게 자신의 처지가 슬프다고 말한 그의 문제도 돈이 많다면, 그의 소망대로, 지금 당장 숲속으로 들어가 넓은 목장 같은 자기들만의 성을 짓고 살면 해결 될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돈의 쓸모가 영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설픈 위로를 하기싫었던 것뿐이다. 세상의 0.001%의 희미한 고통도 내게 오면 나의 전부가 된다고 한다. 우리는 사랑이 떠나 슬프고 가족과의 뼈아픈 이별에 슬프고 가족이 아파서 내가 아파서 슬프고 심지어 늙어가는 부모를 또 나를 보며 슬프고.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슬픔과 애환과 고통이 떠다니고 있는가.
어떤 여인의 오빠의 여섯 살 난 아이는 지금은 엄마의 신장을 나누어 가져 한시름 놓았지만 이식한 신장이 10년 정도의 후에도 정상적 작동을 하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평생을 음식조절은 기본이고 어쩌면 평생 혈액투석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하나밖에 없는 내 오빠는 어린 두 남매를 남겨두고 30대에 오토바이사고로 죽었다. 그 후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가슴에 묻은 우리 부모님의 생은 생기를 잃었고 불행한 삶을 살다가 돌아가셨다.
5.18을 직접 겪었으며 망월동에 자신의 형님이 묻혀있다는 사람도 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마음의 방황을 붙잡을 수 없다는 사람. 세월호에 실려간 수많은 아이들의 죽음. 언제부터가 그도, 나도, 우리는 ‘봄’이란 명사 앞에 ‘잔인한’ ‘아픈’의 형용사를 붙이며 4월의 봄, 5월의 봄을 이야기하고 있다. 언제쯤이면 우리가 이 모든 아픔을 잊고 화창한 봄이 우리에게 오는 것을 마음껏 환대하며 웃음 지을 날이 올수 있을까.
그의 힘든 삶에는 나의 어설프고 유약한 마음의 동요, 동조 따위가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의 마음을 날창날창하게 만들 언어가 필요해 보였다. 이미 벌어진 변화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의 마음과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 현 상황을 직시하고 내가 버티고 살아갈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자칫 타인의 고통을 보며 위로를 받는 일이 죄스러운 마음도 들겠지만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잘 버티고 살아가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큰 힘이 솟기도 한다. 힘든 세상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의 고통과 슬픔 쯤은 호사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위로랍시고 해줄 수 있는 말이었다. '사람마다 다 사정은 있는 법이라고.'
세상의 문을 크게 열고 본다면 상처 없는 사람 없고, 사정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이만큼 살아보니 그것이 진리더 라는. 나는 조금 더 인생을 산 사람으로서 그에게 이런 세상의 이치를 말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