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아일랜드에서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남자들에겐 필수 코스 군 입대를 위해서다. 아들이 입국하자마자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던 R 패스트푸드 부사장에게 득달같이 연락이 왔다. 남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빈궁한 소리들을 하는데 아들은 비록 시급 노동일지라도 일자리 걱정은 없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R푸드라는 한 일 자리에서 착실한 노동자로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용돈벌이에 불과하지만 다른 험한 일을 하는 것보다 아쉬운 데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부사장이라는 사람은 아들에게 “나 일 하기 너무 싫다. 네가 대신해줄 거지?”하며 자신이 필요한 시간에 내 아들을 스케줄표에 넣었다. 주말에도 휴일에도 연휴에도 아들을 필요로 했다. 물론 아들이 무조건 다 받아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들이 부사장의 어려움을 많이 해결해 준다고 하였다.
아들은 아일랜드에서도 학업을 병행하며 테이크아웃 음료수 가게에서 부지런히 알바를 했는데 거기서도 일을 도맡아 하다시피 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내 아들을 향한 어른들의 인정이라는 것이 슬슬 걱정거리가 되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에 잘 견디는 것이 기특하면서도 불안했다.
‘혹시 벌써 내 아들이 자본의 자발적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것 인가?’
그래서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내 아들이 만난 사람들은 다들 좋은 사람인가 봐. 부사장 참 좋은 사람 같다. ”
내심 인간을 믿지 않고 사회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찬 나는 내 아들이 잘 지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아들의 대답이 의외였다.
“엄마, 부사장님 나한테만 좋은 거예요. 모든 애들에게 다 잘해주지 않아요. 일 전부를 아는 내가 필요한 거예요.”
“**야, 그런데 왜 부사장이 널 좋아해 주는 거라 생각하니?”
“나 만큼 매장 일 전부를 책임질 경력자가 없는 것도 있고요. 그래서인지 내게는 주휴수당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팁도 잘 챙겨주시고 다 잘 대해 주세요.”
“난 네가 인정받고 일을 잘하는 것이 기특하면서도 마음이 안 좋아. 혹시라도 네가 자본의 노예로 익숙해지는 것이 아닌가 해서. 엄마는 네가 그렇게 사는 걸 원하지 않아. 그럴 필요 전혀 없어. 무슨 말인지 알지?”
“나도 알아요. 그들은 우리를 어릴 때부터 노예로 길을 들이는 거예요.”
“그거 알면 됐다.”
나는 그제야 내 아들이 안심이 되었다. 이 자본주의 사회가 그나마 다행인건 노예가 주인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나 주인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