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종식되지 않는 팬데믹이 사회의 많은 것들에 영향을 주고 있다. 모이면 전염병에 걸리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기어코 모여야 살 수 있는 동물이라는 아이러니가 현 세계다. 나는 이번 펜데믹 사태를 겪으면서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장애물이 생기면 사랑이 깊어지는 연인들처럼 사람과의 거리두기를 권고 할수록 사람을 더욱 그리워하는 현상이 생겨났다.
그래, 모여야 무슨 일이든 할 것 아닌가. 그래서 인간들은 어떻게든 모여서 연합할 궁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했다. 메타버스 가상세계를 구축하여 비대면으로 회의, 학습, 모임을 하고 공연을 보았다. 심지어 가상의 장소에서 파티를 하고 술도 마셨다. 오히려 가상세계가 더 편하다는 사람도 많아졌다. 인간은 어떻게든 서로 연결되기 위해 발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꼭 직접 대면해서 모여야만 돌아가는 세계도 있다. 이 비범한 사회에서 합법적으로 모일 수 있는 곳, 우리의 아들들의 세계이다. 이들은 이 엄혹한 현실에서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모여든다. 아니 집합된다. 나라를 지키는 대장정의 길은 가장 타의적인 남성들의 의무이다. 그러나 작금의 시대는 자의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있다. 코로나 19로 여러 사회적 제약에 따른 청년들의 자발적 지원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시대가 청년들의 발을 묶어버린 지금이 군입대의 적기라는 계산에서다.
누구나 그렇듯 나의 둘째 아들도 군입대를 하는 것에 엄청난 부담과 걱정을 안고 있었다. 부모 입장에서도 첫째 아들이 군 복무 기간 동안 손가락 절단 위기의 사고가 있었기에 더욱 걱정이 되었다. 둘째는 이 두렵고 착잡한 마음을 친구들과 풀었다. 입대 전날까지 친구들을 작심하고 만났다. 나는 입대 전 코로나라도 감염되면 큰일이니 조심하라는 당부를 수차례 해야했다. 그러나 결국 둘째가 군입대 며칠 앞두고 사고를 내고 말았다.
그날 밤, 아들도 들어오지 않고 잠도 오지 않아서 나는 새벽 2시까지 거실에서 호수공원 나무에 입힐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늦은 시간에 경찰 두 분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박**씨 댁이죠?”
“네… 무슨 일이신가요?”
“박**씨 핸드폰으로 신고가 들어왔어요. 여자 울음소리가 났는데 바로 끊겼고 그 뒤로 연락이 되지 않아요.”
“어…… 사고 칠 애는 아닌데요. 내일 모래 군입대를 해서 라페스타에서 친구들을 만난다고 했어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네요.”
경찰은 전화 추적을 해서 둘째를 찾아보겠다며 돌아갔다. 왜 경찰만 봐도 이렇게 심장이 뛰는지,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어 첫째와 함께 무작정 라페스타로 둘째를 찾아 나섰다. 집에서는 불안한 마음을 붙잡아둘 수 없어 무작정 거리로 나온 것이다. 자동차로 슬슬 돌며 술집 거리를 헤맸다. 혹시 술에 취해 거리에 주저앉아 있는 아이들 중 내 아들이 있는지 유심히 보았다. 문이 열린 술집도 들여다보았다. 내가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동안에 첫째가 둘째의 인스타그램을 뒤져서 평소 자주 만나는 친구를 찾아냈고 이내 둘째의 행방을 알아낼 수 있었다. 친구는 둘째가 친구와 함께 곧 집으로 귀가할 것이니 걱정 말라고 했다. 소식을 듣고 그나마 안심이 된 나는 그제야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1시간쯤 뒤에 둘째가 해맑고 활짝 웃는 얼굴로 들어왔다. 일단, 애가 살아 돌아왔으니 별일은 없어 보였다. 맑게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자 그동안 걱정했던 마음은 뒤 안으로 사라지고 나도 그만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저렇게 해맑고 예쁘게 웃고 있는 아들을 나무랄 수 있는 부모는 없을 것이라고 위안하며. 취한 모습도 왜 이렇게 예쁘던지, 아들을 보고 웃는 나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나는 일단 아들을 재웠다.
다음날 둘째에게 들은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둘째의 군입대를 위로하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도중에 둘째와 한 여사친과 옥신각신 약간의 말다툼이 있었다 했다. 말다툼 중에 취기에 격앙된 둘째가 주인공 답게 일을 냈다. 112 버튼을 눌렀단다(여사친의 증언). 말다툼은 모르겠고 112에 살려달라고 버튼을 누른건 기억이 난다 했다.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진짜 죽을 것 같았다고.(둘째의 증언) 그래 놓고 전화를 뚝 끊어버렸고 받지 않았으니 경찰서에서는 확인 절차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도 전화기 뒤편으로 젊은 여자의 울음소리가 났다고 하니 경찰이 출동할 수밖에. 경찰은 전화 추적으로 금새 아들을 찾았고 아들에게 주의를 주고 사건은 종료되었다.(호기 어린 지나친 장난이 이 소란을 일으켰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한 나는 계속 아들을 찾고 있었던 것. 여하튼 경찰은 과학적 수사로 아들을 찾는 데 성공했고 나는 첫째의 심리 수사와 발달된 IT체계로 둘째를 찾아낼 수 있었다.
내가 가장 걱정하고 궁금했던 것은 수화기 넘어 들려온 울음소리였다. 절대 나쁜 짓을 할 녀석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웬 여자의 울음소리(?)는 나를 맥없는 공포로 몰고 갔었다.
“여자아이가 울었다는 데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애는 원래 술만 먹으면 우는 애예요.”
둘째가 아주 간단하게 말했다. 그렇지 그런 사람이 꼭 있지. 술 좀 먹어 본 나로서도 너무나 이해가 잘 되어 패스……. 내가 한 긴장과 걱정에 비하며 너무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었다. 별일이 아닐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얼마나 걱정을 했던지. 나는 평소 아들에 대한 믿음이 크다. 그런데도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내가 모르는 아들의 모습이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과대망상에 사로 잡혔다.
“아들, 엄마가 모르는 네 모습이 있는 건 아니지?”
“저도 모르는 제가 있을지도 모르죠.”
나는 이 불안한 아들의 대답이 더 신뢰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래,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이 아이라고 자신을 다 알 수 있을까? 나는 아들의 현답이 자기 자신을 잘못된 길로 이끌지 않을 것이란 것을 믿었다. 앞으로 자기 자신도 자신을 더 관찰하고 조심할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군입대를 앞둔 복잡하고 두려운 마음을 친구들과 풀어야 했던 이 아이는 지금 취사병으로 군 복무 중이다. 집에서는 철없는 어린 아들이지만 전우들의 밥술을 챙기는 엄마가 되었다. 이번 주 토요일이면 신병 휴가 열흘을 받아 나온다고 하니 나는 벌써부터 마음이 졸인다. 설마 첫 휴가 신고식은 치르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