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헬로해피 May 18. 2022

행신역 KTX 타고 떠나는 강릉 버스킹여행


“강릉에 가고 싶어. 우리 강릉 가자.” 지난겨울 이야기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2월이었지만 강릉으로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불발되고 말았던 강릉여행. 추위와 장시간 운전의 두려움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평소 강원도로 떠나는 기차여행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다. 정동진, 강릉으로의 기차여행을 꿈꿨다. 기차는 내게 따뜻한 낭만과 향수의 은유다. 학창시절 호남지방에 살았던 내게 기차는 나를 가장 먼 곳으로 데려갈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어릴 때는 어머니를 따라 호남선 기차를 타고 서울에 사는 언니들에게 갔었다. 짐을 잔뜩 든 어머니의 옷깃을 잡고 기차를 기다리며 설렜던 그 마음이 향수가 되었다. 대학 시절 기차를 타고 떠났던 부산여행도 추억이 되어 새록새록 하다. 내가 노선이 복잡한 버스보다는 목적지를 쉽게 알 수 있는 철도 노선에 익숙한 건 아마도 어릴 때 향수 어린 기억 때문인 것 같다.


불과 한 달 전까지는 일산에서 강릉에 기차를 타고 가려면 서울역까지 이동하여 환승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행신역에서 출발하는 강릉선 KTX로 2시간 20분대로 가능하게 되었다. 이 반가운 소식을 그냥 놓칠 수 없었다. 나는 좀 더 특별한 여행을 계획했다. 행신역 출발 강릉선을 타고 고양 버스커즈 유은경 오카리니스트와 버스킹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여행 당일날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비가 많이올것 같지는 않았지만 하얀 우산 하나를 챙겼다. 행신역 근처 편의점에서 커피와 도넛으로 허기를 채우고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대기실에는 캐리어를 끌고 가는 사람, 연인들, 가족들, 각각의 이유로 열차를 탈 사람들의 마스크 속의 표정들은 설렘으로 가득 찼다.

강릉역에 도착하니 역 광장에는 우리 여행의 목적을 알고나 있듯 버스킹 존이 설치되어 있었다. 세렌디피티! 이런것을 두고 뜻밖의 행운이라고 하는 것인가.



첫 번째 코스는 월화거리이다. 도보로 강릉역에서 10분. 어느새 비가 그쳐 하얀 비닐우산이 짐처럼 생각되었다. 월화거리로 가는 길에 경찰서가 있었다. 우리는 우산을 경찰서 한구석에 살포시 놓아 두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찾을 생각이었다.

월화거리는 폐철로에 조성된 2.6km의 산책로이다. 도심 공원으로 강릉 고유의 설화이자 춘향전의 모티브가 된 ‘무월랑과 연화부인’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주요테마로 하여 이름을 지었다 한다. 월화거리 양옆으로는 상가와 카페들이 쭉 들어 서 있었다. 넓게 조성된 산책로가 마음의 여유를 부렸다. 월화교까지 다다르자 이곳에도 버스킹 존이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월화교를 배경 삼아 공연을 하기로 했다. 때마침 2층 카페에서는 오픈 창문을 통해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이 월화거리의 화창한 봄볕과 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연주자가 스피커를 콘크리트 담장 위에 툭 던져 놓고. 걸어서 세계 속으로 메인 테마곡 ‘물놀이’와 ’엘콘도르파샤’를 연주했다. 연주가 끝날 때마다 2층 카페에서는 박수를 보냈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춰서서 영상을 담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아저씨 한 분이 월화교로 향하는 지그재그 길을 지나와 멈춰서서 연주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연주 곡명을 물어보았다.



다음 코스로는 가까운 안목해변으로 갈 목적으로 택시를 탔다. 기사 아저씨가 핫플레이스 몇 곳을 말씀해주신다. 우리는 정동진과 하슬라아트월드를 선택했다. 먼저 정동진으로 향했다. 1980년대 드라마 ‘모래시계' 촬영지로 명성을 크게 얻은 곳이다. 아이가 어릴 때 일출을 보기 위해 왔던 정동진의 모습은 아주 낯설어져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으로 해물찜을 뚝딱 해치우고,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나가 바닷바람을 맞았다. 연주자가 권혁 작곡의 ‘첫 데이트의 설레임’을 연주했다. 바람 소리에 실려 설렘 가득한 우리들의 청춘이 밀려왔다.



다음 코스인 하슬라아트월드는 동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복합예술공간으로 뮤지엄호텔, 야외조각공원, 현대미술관, 피노키오박물관, 바다 카페가 있는 뮤지엄이다. ‘하슬라'는 강릉의 고구려 옛 지명이라 한다. 우리는 먼저 미술관 내에 있는 현대미술을 감상하고 빛의 터널로 빠져나와 야외 조각공원으로 나왔다. 곳곳에 포토 존이 마련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예쁜 사진들을 담기 위해 카메라 렌즈를 맞췄다. 조각공원 한편에는 숲속 산책로가 있었다. 산책로로 들어가는 입구의 감각적인 조형물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서 버스킹을 하기로 했다. 연주곡은 새들의 재잘거림을 표현한 ‘새소리’이다. 연둣빛 봄 숲과 너무 잘 어울렸다. 오카리나 연주는 숲속에서 작은 새 한 마리가 구름을 타고 노는 것 같았다. 상큼한 숲속 음악회를 마치고 안목해변으로 향했다.


안목해변은 커피 거리로 유명하다. 택시기사님의 안내에 의하면, 엄마들이 아이들을 등교시켜 놓고 삼삼오오 모여 바다를 바라보며 자판기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이 이 커피 거리의 유래라고 했다. 주말의 안목해변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코로나를 이겨내고 다시 활기를 띤 바닷가의 모습이 정겨웠다. 우리는 카페 2층 창가에 자리하고 피로해진 몸을 잠시 쉬었다. 커피의 도움으로 다시 힘을 내어 안목해변 안쪽에 있는 등대까지 걸었다. 이곳에서도 버스킹 공연을 생각했지만, 바다에서의 공연은 정동진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강릉역으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호출했다. 기차를 놓치지 않도록 강릉역 주변에서 간단한 저녁과 맥주 한 잔을 할 심산이었다.



강릉은 택시만 잘 타도 가이드가 따로 필요 없다. 택시기사님께서 수제 맥줏집 ‘버드나무 브루어리’를 안내해 주셨다. 이 또한 탁월한 선택이었다. 우리는 이 곳에서 송로버섯 피자와 수제 맥주를 두 잔씩을 마시고 기차 시간 1시간 여를 남겨 놓고 강릉역으로 다시 돌아왔다.

강릉역 주변의 야경이 정겹다. 바쁘게 서둘러 귀가를 하는 차들과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따뜻했다. 아직 기차 시간에 여유가 있어 광장에 설치된 버스킹 존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다. 연주자가 저녁 시간에 맞게 김광석 ‘서른 즈음에’를 나른하게 연주했다. 피로가 풀리고 오늘 하루에 마침표를 찍는 기분이었다. 이 곳을 오가는 사람들도 이런 느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 갔을까? 궁금해지던 찰라, 광장을 지나던 어떤 아빠와 아들이 우리 쪽으로 뛰어들어왔다.



아이 아빠는 “선생님, 길 건너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연주 소리가 들려서 왔어요. 한 곡만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연주자는 오롯이 아빠와 아들을 위해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을 연주했다. 아빠는 연주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부르며 어린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야.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이 부분이 가장 좋아. 김광석이란 가수의 노래야. 기타도 아주 잘 연주한단다. 나중에 너도 기타를 배워서 아빠에게 들려주렴.”


아빠와 아들의 벅차오른 듯한 목소리, 우리 여행의 목적을 짙게 만들어 주었다. 버스킹 공연은 거리를 지나는 알 수 없는 어느 한 사람을 위한 공연이다. 우리는 그 어느 한 사람을 위해 이 여행을 했다. 여행에서 그 한 사람을 만나 감사했다. 우리의 버스킹 여행은 아빠와 아들이 가져다준 뜻밖의 행운으로 마무리되었다.

우산이 궁금했다. 하얀우산이 어둑해진 밤하늘 아래서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양시 공식 거리예술단 고양버스커즈 거리 곳곳에 문화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