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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Sep 24. 2022

여름 밤과 통닭과 친구

자기 돌봄 - 내안에 '지중해' 있다

여름 밤과 통닭과 친구


폭우가 쏟아진 후, 여름밤 바람이 시원했다. 오늘은 친구들과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불금이니까.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이 친구들과는 소주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같은 여름밤엔 치킨에 생맥주가 더 좋았다. 

내 돌봄 노동은 8시 무렵에 종료된다. 그래서 근무가 있는 평일에 친구들을 만나려면 9시는 되어야 가능하다. 퇴근 후 자동차를 집에 두고 마을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 가능한 친구 둘은 먼저 저녁 식사를 했고 뒤 늦게 나와 합류했다. 친구 한 명이 2차로 카페를 가자고 했다. 그건 절대 안 되는 일이다. 오늘은 치킨과 생맥주가 아주 잘 어울리는 여름 밤이다. 

우리는 마땅한 술집을 찾을 수 없었다. 그대로 길을 걷다 만난 떡볶이를 파는 지하 술집을 들어갈까 생각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서 들쥐 한 마리가 우리와 마주쳤다. 반짝반짝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 그러나 나는 그에게 웃어줄 수 없었다. 내가 손석구 같은 쥐 상인 얼굴을 좋아 한다지만 진짜 쥐를 만나는 건 정말 싫었다. 우리는 좀 더 괜찮은 술집을 찾아보겠다고 그냥 지나쳐온 후미진 통닭집을 오늘의 수다 장소로 최종 결정했다. 다시 뒤돌아 걸어야 했다.

‘옛날통닭’ 아직 아날로그 감성의 술집이었다. 사람이 주문을 받았고 주문한 음식이 다 만들어지면 사람이 직접 테이블로 가져다줬다. 친구들은 저녁으로 돈까스를 먹었다 했다. 앱으로 주문을 하고 직접 가져다 먹어야 했다며, 이 ‘옛날통닭’집과 같은 인간이 서비스를 해주는 식당이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 남이 차려주는 밥상이라고 하는데 외식문화가 ‘엄마’들에게 조금 아쉬운 풍경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제는 사람이 가져다 주는 음식 대신 로봇이 배달하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풍경이 일상이 되지 않겠나. 우리는 이제 사람의 온기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이 술집은 한 번의 위기를 겪었다 했다. 원래는 네모반듯한 사각형의 넓은 공간이었다 한다. 지금은 ‘옛날통닭’의 반을 잘라 내어 앞쪽에는 배스킨라빈스가 차지했다. ‘옛날통닭’은 들어가는 통로 쪽에 테이블 한 줄만 겨우 들어가는 기다란 공간과 배스킨라빈스 뒤쪽으로 좀 넓은 공간이 있어 주방과 테이블이 몇 개 더 놓일 수 있는 구조로 변했다.

우리가 착석한 테이블 다리 하나에 높이를 조절하는 나사가 빠져서 흔들렸다. 종업원에게 말을 하기에 괜히 미안해서 휴지에 치킨무를 싸서 테이블의 높이를 맞췄다. 잠시 놀다 가기에 충분했다. 종업원들이 청소를 하다가 먹어야 할 치킨무가 테이블 다리 받침대로 둔갑한 걸 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 음흉한 미소가 지어졌다. 우훗.

그곳에서 2시간 정도 친구들과 별스럽지 않은 수다를 떨었다. 좋은 벗과 함께하는 여름 밤은 쏜살같이 사라져 갔다. 스치듯 지나가는 여름 밤이 아쉬웠다. 나름의 개똥 철학과 낭만이 있고 재밌고 뒤끝없는 마음들이 좋았다. 신뢰다. 서로가 해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다. 아쉬운 여름밤을 뒤로하고 내일도 근무를 해야 하고 가장 멀리에 사는 친구를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고 각자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오늘 밤 즐긴 치킨과 맥주를 모두 태워버리리라. 나는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도로를 걸으며 여러 상념이 떠올랐다. 목적지를 두고 걷는다는 것은 힘이 나는 일이다. 발걸음이 제자리에 멈춰 있으면 외로움과 쓸쓸함도 그 자리에 머물러 버린다. 그러나 발걸음을 재촉하면 외로움도 발자국을 남기고 내 곁에서 사라진다. 외로움 대신 깊어지는 생각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걸으며 오늘 만난 친구들을 생각했다. 이심전심인가. 우리는 누구 한 사람이 언제 어느 때 ‘저 쉬는 날이에요~’라고 말하면 기다렸단 듯이 얼른 만나서 밀렸던 수다를 나누자고 맞장구를 친다. 흔쾌히 받아주는 마음들이 기분을 참 좋게 만들곤 했다. 그만큼 우리가 서로에게 귀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독서모임에서 만났다. 우리의 인연은 7년쯤 되었을까? 내 연애 때보다 훨씬 자주 만난 사람들이다. 매주 1회 있는 우리 모임 사람들은 활자 중독자다. 각자의 생각을 마구마구 잘난척하며 분출하는 사이다. 일테면 ‘내가 제일 잘 나가~’ 이런 느낌의 자기 의견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관계다. 우리는 시대의 부조리나 인문학의 갈증을 책을 읽고 토론하며 달랬다. 말 보따리를 2시간씩 풀었는데도 다하지 못해 술자리를 이었다. 

이야기가 깊은 만큼 생각이 깊은 사람들, 삶이 깊은 사람들이다. 오로지 책을 읽고 토론하는 자리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약간의 거리감이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 거리감이 좋았다. 이 간극이 나를 참 편안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이 거리감이 유지되지만 처음의 이유와는 조금 다르게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는 7년의 토론을 해오면서 서로의 캐릭터를 알게 되니 저절로 적당한 배려와 예의를 차릴 수 있게 되었다. 내 마음을 알아채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알아챌 수 있어야 롱런 하는 사이가 될 수 있다. 그래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마음들을 주고받을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친구의 의미이다. 

집에 도착도 하기 전에 버스를 타고 먼저 귀가한 친구에게 톡이 왔다. “귀가해서 쉬는 중…… 만나면 좋은 사람들…….” 정말 이심전심이다. (2022.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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