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흐른다
심심할땐 청소를 합니다
내게는 싱숭생숭 외로움이 스물스물 올라올 때 정신적 안정을 찾는 방식 중 특효약이 하나 있다. 바로 집 청소를 하는 일이다. 그릇 건조대까지 깨끗하게 설거지를 하고 뽀송하고 순결한 이불보와 침대시트를 갈고 책상 위를 정돈하고 카펫을 털고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 질을 한다. 어느 땐 가구도 옮겨 공간을 재구성해 본다. 이렇게 정돈된 집에서 샤워를 하고 커피 한잔을 내려 마시는 이 상쾌한 기분이란…….
그렇다고 집을 매일매일 꼼꼼하게 청소하며 정돈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가급적 깨끗하고 정돈된 집을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평소엔 노멀(normal)하게 사는 편이다.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를 해보며….
화장실 청소나 주방과 바닥은 수시로 청소를 하는 편이고 화장대나 책상 정리 등의 정리정돈은 자주 하지 못한다. 화장실 타일과 실리콘에 물 때나 곰팡이가 끼는 것을 질색팔색하는 스타일이라서 샤워할 때마다 화장실 변기와 세면기와 타일을 체크하며 닦는 스타일? 틈틈이 청소기를 밀고 바닥을 닦는 정도? 일상을 사는 보통의 다른 집과 다를 바 없는.
이렇게 보통의 일상을 살다가 어느 날 문뜩, 나는 엔트로피(entropy)가 높아진 우리 집 환경을 못 견디기 시작한다. 질서를 바로 잡아 엔트로피를 낮추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그럴 땐 대대적인 청소를 해야만 한다.
나의 이와 같은 패턴은 주기적으로 찾아왔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집안을 한바탕 뒤집어 정리를 하거나 가구를 재배치하여 새로운 공간으로의 변화를 시도했다. 장농도 혼자 옮겼던 여자가 바로 나라는 연약한(?) 여자다. 벽면 페인트, 방문 페인트 하다못해 낡아진 싱크대 페인팅도 해보았다. 그러고 나면 한동안 새로운 마음으로, 또는 충족된 마음으로 이어진 삶을 살아가곤 했다. 물론 셀프 인테리어로 망친일도 많았다. 거실 벽 페인팅을 위해 가구를 옮기다가 오디오 스피커를 떨어트려 손상시킨 일, 주방 싱크대에 무모하게 페인팅을 해서 망쳤던 일 등.
하지만 미흡하더라도 새롭게 변한 공간은 나를 안정되게 했으며 기쁘게 했다. 그렇게 나는 변화가 필요한 사람이고, 새로운 환경이 불안정한 나를 치유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삶은 흐른다'고 했던가?
나는 정체되어 있는 삶을 힘들어하는 사람인가? 어쩌면 그런 나의 심적 베이스가 내 인생의 총량의 점수를 올려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겐 게으르게 살다가도 그 지루함이 못 견디게 싫어지는 주기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아주 미약한 에너지가 존재한다. 나의 그 힘이 마이너스로 시작한 내 인생을 여기까지 올려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상의 루즈함은 심심한 내 감정을 대변한다. 멈춰진 것 같은 내 삶이 움직이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이런 연결이 다소 억지스러운가? 그건 아닌것 같다. 왜, 바쁘면 청소 같은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지 않나. 나의 경험을 비추어 보아도 워킹맘으로 살 땐 우리 집 엔트로피가 최고조로 치솟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무질서가 갑자기 견디기 힘든 때가 찾아왔으니 바로 내가 백수가 되었을 때였다. 무료하게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무질서한 우리집이 무척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집 엔트로피를 낮추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밀어부친 일이 집수리였다.
여하튼, 그동안의 내 심적 과정들을 들추어 볼 때 심심할 때마다 집안을 뒤집고 싶은 욕구가 생긴 것으로 나의 감정 라인을 정리하기로 하자. 그러므로 내게 지루하고 심심한 내마음을 명랑하게 만들 가장 좋은 방법은 청소를 하는 일이다. 침대 시트나 커튼을 교체하는 일이다. 가능하다면 바닥 카펫을 교체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역시 가구나 인테리어를 크게 바꾸지 않는 선에서 가장 큰 효과적인 방법은 패브릭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 후 청소기를 돌리고 구석구석 물걸레 질을 한다. 화장실 타일을 닦는다. 창틀의 먼지를 몇달만에 닦고 베란다 물청소를 한다. 그리고 화장대를 정리한다. 내가 사용하는 공간 중 화장대가 가장 무질서하다. 화장대까지 정리를 하면 우리 집에 질서가 완벽하게 부여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 상쾌한 기분을 최고조로 올릴 수 있는 방법은 꼭 빈 집이어만 한다. 빈 집을 청결하고 질서 있게 정리 정돈한 후, 샤워를 하고 여유롭고 청량한 마음으로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시는 그 기분이란, 빈 둥지의 쓸쓸한 여유가 오히려 내 내면을 꽉 채우는 그런 느낌. 빈 집이 아니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그 고요하고도 군더더기 없는 정결함. 이것은 새끼를 삶의 전장으로 떠나보낸 빈둥지를 지키는 어미새 만이 알 수 있는 특허 같은 감정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