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는 재활치료병원에서 만난 5학년 남자아이입니다. 애교 있는 몸짓으로 주변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하는 백두, 말은 못 하지만 춤을 추는 듯한 작은 동작과 얼굴 표정으로 자신의 기분을 곧잘 표현합니다. 기분이 좋으면 두 손을 종종종 마주치며 입꼬리를 살짝 올린 미소를 보입니다. 기분이 나쁘면 얼굴에 힘껏 힘을 주고 굳은 표정으로 등을 돌린 채 토라져 있습니다. 그 모습은 얼마나 귀엽던지요!
맞아요. 백두는 삐지기 대장입니다. 표현과 소통이 서툴다 보니 토라지거나 화를 내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가끔은 백두의 활동지원사 선생님과 거리를 두고 뚱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답니다.
백두의 활동지원사 선생님은 남성분입니다. 정년 퇴직을 하시고 이 일을 시작하셨다고 해요. 선생님께서는 종교 생활을 하면서 장애인들을 돕는 활동을 꾸준히 해오셨는데요, 그 계기로 이 일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합니다.
백두가 지금의 활동지원사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 몇 분의 선생님들이 거쳐 가셨다고 합니다. 그분들은 백두를 많이 힘들어했다고 해요. 전에는 식판을 엎는 등 백두의 투정이 상당히 심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안정적이고 편안해 보입니다. 그렇게 백두는 지금의 선생님을 만나 4년째 아주 잘 지내고 있답니다.
선생님은 백두를 아주 잘 파악하고 계십니다. 백두가 화가 나거나 삐져 있을 때는 그냥 옆에서 가만히 지켜볼 뿐 자극하지 않습니다. 혼자 생각할 시간, 마음을 다스릴 시간을 주는 것이지요. 그렇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백두는 다시 좋은 컨디션을 되찾곤 합니다.
아이들 양육에 있어서 장애인 친구들이나 비장애인 친구들을 교육하는 방식은 모두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사랑 없는 훈육은 통하지 않겠지요. 라포 형성이라고 하죠? 먼저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것 같습니다. 부모님들 만큼은 아니겠지만 아이가 활동지원사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먼저인 것 같아요.
그러나 한없이 부드럽거나 유약한 태도의 훈육은 독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쉽게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면 행동 수정이 필요할때나 위험한 순간에 통제를 할 수 없게 되거든요. 아이들의 자립을 위해선 단호함, 일관성 있는 훈육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 줄다리기 같은 관계를 잘 형성해 갈 수 있을 때 우리가 유행어 처럼 사용하는 ‘너와 나의 케미가 아주 잘 맞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백두와 백두 선생님처럼요!
이렇듯 이 일은 장애인 활동지원사와 이용자 간에 소위 ‘케미’라는 것이 잘 맞아야 합니다. 서로의 기본 성향이 잘 맞는다면 대단한 노력 없이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일반적인 사람과 사람의 관계처럼 말이죠. 왜 결이 잘 맞는 사람은 그냥 함께만 있어도 편안하고 좋은 기분이 들잖아요. 또한 아이들은 어른들이 교육을 위해 만들어 놓은 펜스밖으로 자꾸 튀어 나가려는 습성이 있잖아요. 이런 현상은 비장애 아동이나 장애 아동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인 것 같기도 해요.
백두는 지금의 선생님을 자신이 넘어설 수 없는 커다랗고 힘이 센 ‘산’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남자 아이들이 아빠를 인식하는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요? 제 생각엔 백두는 지금의 선생님과 함께 할때 울타리밖으로 튕겨 나가는 일이 적을것이라 짐작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직업을 남성분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선택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대부분 돌봄 선생님들이 여성이기때문에 남성 환자분들이 불편할때가 종종 있거든요.
요즘에는 남성 활동지원사 선생님들도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우리 재활 병원만 해도 백두 선생님 이외에도 남성 선생님들이 몇 분 더 계시답니다. 공무원 퇴직자, 직업 군인 퇴직자, 건축업 퇴직자 등 전직 직업군도 참 다양합니다. 참고로 저의 형부도 40년간의 우체국 금융 공무원 퇴직 후 요양보호사 수료증을 취득하여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근무 중이시랍니다. 현재 형부는 할머님들께 인기가 너무 많아서 큰일이라며 우스개 소리도 하실만큼 아주 만족하며 즐겁게 일을 하고 계시답니다. 어느정도 기간이 지나면 향후 이 직종에서 봉사활동으로 임하겠다는 의지도 매우 강하십니다.
저의 형부처럼, 백두 선생님처럼 남성분들이 돌봄 노동에 대해 너무 두려워하거나 어색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처음 이 일을 하기 전에 두려움도 많았고 자존감이 조금 떨어지기도 했는데요, 모두 저의 못난 편견에서 온 감정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돌봄의 가치와 중요함을 이해하고 있기에 이 일이 괜찮습니다.
누구나 편견 없는 마음으로 돌봄을 함께 한다면 분명, 더 좋은 사회가 될 것 같습니다. ‘함께 돌봄’이라는 화두가 더 많은 분들에게 전달되어 돌봄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더 많아질 수있기를 희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