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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Mar 20. 2018

첫인상

군생활 이야기

동원사단 특성상 연대가 한 건물에 모여 있다 보니 선임장교들이 많다. 연대장을 비롯하여 4개 대대 대대장들이 있었고 연대 참모부와 각 대대 참모 및 포대 지휘관까지 하면 대위 정도는 우스울 정도로 흔했다.  그중 가장 두려운 것은 대대장님이었다. 처음에 경례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을 피해 혼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 대대장님도 처음 온 소위한테 막 뭐라 그러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처음에는 날 좋게 보셨다.      

계기는 별거 아니었다. 처음 대대장님께 보고할 게 있어서 들어갔는데 시원한 물을 떠 오라고 해서 정수기에서 찬물을 받고 그 위에 얼음을 띄워서 가져갔다. 그 모습에 ‘시원한 물만 말을 했는데 알아서 얼음까지 띄워오는 것을 보니 자질이 있어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며칠 뒤 처음 간부 아침체조를 지휘하는 데 있는 힘껏 목소리를 내서 지휘를 했더니 목소리가 마음에 든다며 칭찬하셨다.      


그리고 대대장님께서 인사장교를 맡기시면서 인사업무라는 교범을 주면서 읽어보고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물어보라 하셨다. 교범이 그리 두꺼운 정도는 아니었지만 웬만한 교재 사이즈는 되었고 업무도 하면서 금방 읽어보는 것은 좀 어려울 수 있었다. 

그래서 자세히는 못 보고 대략적으로 읽었는데 이틀 뒤 나에게 ‘그때 교범 읽어보고 물어보라고 했는데 왜 아직 말이 없냐’고 물었다. 그때 대충 읽으면서 질문할 것을 미리 생각해놨었기에 바로 질문을 해서 불호령을 피할 수 있었다.      


또 보직을 맡고 첫 아침 회의시간에 보고를 하면서 많이 버벅 거렸는데 그 다음날 답변할 것을 미리 적어 보고를 드렸더니 뭔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흡족해하셨다.      


정말 별것 아니었지만 대대장님이 보실 때는 서투르지만 하려는 의지가 보여서 좋아했던 것 같다. 중위 선배는 소위 버프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니까 항상 조심하라고 했지만 2개월 후 대대장님이 바뀔 때까지 크게 혼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대대장님이 바뀌고 나서 내 밑천은 바로 드러났다.   

  

바뀌신 대대장님도 성격이 급하고 고집이 강한 분이지만 그전 대대장님처럼 강성은 아니었다.(사실 어떤 분이 오셔도 그 전 대대장님 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했지만) 하지만 바뀌신 대대장님 앞에서 실수를 연발하여 찍혔다.      


대대장님뿐만 아니라 부대가 좁다 보니 조금만 실수해도 소문나는 건 금방이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잘 모를 수도 있는 소위라고 넘어갈 때도 있지만 입에 입을 타고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업무가 달라 나를 잘 모르는 사람도 그냥 남에게 들은 것으로 판단하고 대하기도 했다. 소위는 패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긴 하지만 그런 환경은 주눅 들게 만들어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선배 장교는 성격을 고치라고 하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쉽게 되는 건 아니었다. 그러한 이미지를 바꾸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보통 1년이면 군대의 사이클에 적응한다고 하지만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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