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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Mar 29. 2018

첫 당직

군생활 이야기

당직을 서게 되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무엇일까?


날짜? 요일? 


뭐 이것도 중요하지만 당직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같이 근무서는 사람이 누구냐이다.     

당직이 누구냐에 따라 그날의 부대 운영이 확 달라진다. 그래서 병사들도 누가 당직이냐에 관심이 많다.     

첫 근무를 배정받고 먼저 선 동기에게 당직 어떠냐고 물었을 때 ‘누구랑 섰는데 편했다, 혹은 누구랑 섰는데 죽을 맛이었다.’ 등의 반응이었다. 

     

나의 첫 근무는 후자 쪽이었다.      

우리는 연대가 한건물이라 연대당직부관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사령은 대위급이었다. 그리고 나와 첫 근무를 함께 선 사람은 깐깐하기로 소문난 옆 대대 포대장이었다.      


당직사령의 당직완장. 당직부관은 줄이 3개 사관은 2개 당직병은 1개이다.(위 부대마크는 아무 관련이 없음)

처음 근무 투입하고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수첩에 적어둔 근무 투입할 때 확인해야 될 사항들을 보며 하나하나 체크하고 있으니 사령이 내려왔다. 나를 힐끔 보더니 별 얘기 안 하고 열쇠만 건네받았다.   

그러다 밥시간이 되자 먼저 식사를 하고 오라면서 ‘근무 서면서 먹기라도 잘 먹어야 된다’며 카드를 주고 PX에서 간식을 사 오라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뭘 사 와야 할지 말을 안 한다는 것이다. 일명 상대방의 ‘센스’를 보는 것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긴 하지만 내가 생각한 보편적인 센스는 ‘라면과 과자 그리고 음료수를 만원 이내로 사 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당직 라면’이라고 당직근무자에게 분배되는 컵라면이 있었는데 작은 컵이라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그것보다 크고 맛있는 라면을 사가야 했다. 

식사를 하고 PX에 들러 바구니를 들고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라면에는 일가견이 있어 센스 것 골랐다. 과자도 봉지과자랑 박스 과자를 적절히 섞었다. 마지막으로 음료수를 골라야 하는데 보통 이 조합이면 탄산음료를 선호하는데 애석하게도 남은 것은 식혜와 이온음료뿐이었다. 

거기서 많은 고민을 했지만 답은 없어 보였다. 뭘 골라도 아쉬운 조합이 되었다. 결국 이온음료를 들고 복귀했을 때 당직사령은 ‘탄산을 사 오지 뭐 이런 걸 사 왔냐’고 했다. PX에 탄산이 없어서 그랬다고 했지만 뭔가 심드렁해 보였다.      

그렇게 교대로 식사를 하고 시간이 흘러 야간이 되었다. 간부들은 거의 퇴근하고 온전히 당직근무자들의 시간이 되었다. 

당직부관은 근무를 서면서 총기 탄약 실셈, 탄약 수불, 상황일지 작성, 당직근무 시스템 최신화, 당직근무 결과보고 PPT최신화 등등할 게 엄청 많았다. 나중에 익숙해지면 후딱후딱 해치우는 것들이지만 첫 근무에선 굉장한 시간이 소요됐다.      

그래도 좀 배우고 투입은 했지만 모르는 게 많았고 당시 당직근무 결과보고 PPT가 20장 가까이 됐는데 모르는 걸 물어보면 ‘그건 니가 알아서 해야지 왜 나한테 물어보냐’는 식이었다. 당시 분위기가 모르는 게 있으면 알아서 찾아서 하라는 분위기이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소위가 충분히 모를 수도 있는 것을 물어봤던 것 같은데 귀찮아서 그랬거나 그 사람도 사실 잘 몰랐던 것 같다.

     

아무튼 혼자 끙끙 앓으면서 꾸역꾸역 할 일을 해나갔고 그 사람은 ‘너 알아서 하고 아침에 검토받아’라며 엎드려 잤다.(여기서 자면 안 되지 않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까 봐 이야기하지만 당시 지휘관 지침은 당직 근무자 두 명 중 한 명은 깨어있는 것이라 그 정도로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날 정말 밤을 꼴딱 새웠음에도 불구하고 아침에서야 PPT 작성까지 완료하고 겨우 검토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많은 부분을 수정하면서 나한테 툴툴 내뱉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아침 상황보고 시간에 당직근무 결과를 보고하는데 틀린 부분이 있었다. 당직사령은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것은 마치 너 때문에 내가 욕먹는다라는 눈빛이었다.      

결과보고가 끝나고 완장을 반납하고 올라가면서 수고했다는 말은 했지만 아마 대대로 돌아가서 내 욕을 했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말하고 나니 그 사람이 나쁜 사람 같지만 그 당시엔 그냥 분위기가 그랬다. 아마 그 사람도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다.      

그렇게 당직을 서고 나니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대대로 돌아가서 대대 아침 상황보고를 하고 근무 퇴근을 했다. 지친 몸으로 숙소로 돌아가 잠시 잔 뒤(부대 지침이 근무 서고 나면 9시 퇴근 15시 출근이었다.) 다시 부대에 출근했을 때 뭘 안 해놓고 근무 퇴근했다고 혼났다. 당직 서면서 안 해놓고 뭐했냐는 것이다.


참 소위한테 바라는 것도 많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역시나 그 포대장이 대대에 올라가서 내 욕을 했다고 한다. 

간식사오랬더니 과자에 이온음료사왔다고.


다시 생각하니 나쁜 사람 맞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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