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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Apr 02. 2018

사격

군생활 이야기

사격은 미필자들도 한번쯤은 해보고 싶은 것이지만 군인들에겐 반드시 잘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즐길 수만은 없다. 나도 군생활 초반엔 사격을 지지리도 못 해서 많은 괴롭힘을 당했다.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머리를 빡빡밀고 기초군사훈련에 들어가 처음 사격을 하게 되었다. 누구나 사격을 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타고난 스나이퍼라고 생각을 한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 하다. 그 당시 추운날씨에다 영점사격 때부터 총기고장이 잦아 실사격때 총기고장만 안 난다면 만발까진 아니어도 합격발수인 12발 정도는 거뜬히 할 것이라 생각했다.  

   

순서가 뒷순서라 사격에 오르기 전에 한참 호각소리에 맞춰 PRI(P나고 R베기고 I가 갈리는 게 아닌 Preliminary Rifle Instruction의 약자. 사격술 예비훈련이라고도 한다)를 하고 있었다. 

사실 요새는 P나고 R배고 I갈릴 정도로 PRI를 하진 않는다. 그냥 지겨울 뿐이다.

정말 추운 날씨였고 가만이 있으면 추워진다고 별로 쉬지도 않고 PRI를 주구장창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야 겨우 순서가 돌아왔고 떨어지면 다시 PRI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반드시 단번에 붙어 조기복귀하자는 마음이었다. 

큰소리로 사로복창을 하며 사선에 올랐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표적이 올라오길 기다렸다. 혹시나 총기고장이 나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하지만 걱정해야할 것은 총기고장이 아니라 내 사격술이었다.      


첫 사격에 11발로 불합격을 했고 또 차례가 돌아올 때 까지 PRI를 주구장창 하다가 2차 사격때 9발로 또 떨어졌다. 그때 10명도 안 되는 인원이 남아있었는데 정말 비참한 기분이었다. 다행히 3차 때는 합격을 했으나 어차피 합격하던 못 하던 복귀를 해야 돼서 큰 의미는 없었다.  

   

그 후 3학년 하계훈련때 14발, 3학년 동계 때 12발, 3학년 하계때가 16발정도 됐던것 같다. 뭐 후보생때는 그래도 합격문턱에서 간당간당하게 있어서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문제는 자대에서였다.     


사격집중주에 들어가고 사격에 앞서 모두 신경이 예민했다. 사격 합격률로 대대의 성과를 측정해 성과상여금에 반영하기 때문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지급받은 총기인 K-1을 많이 쏴보진 않았지만 영점도 잡았고 초임장교 집체교육 때 17발을 맞췄기에 합격정도는 쉬울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고 재사격의 재사격을 거쳤다. 그러다 최후에 2명이 남았는데 그 중 하나 나였다. 정말 배웠던 것 하나하나 되새기며 사격에 임했으나 합격기준인 14발을 넘지 못 했다. 


영점사격장에서 엎드려뻗쳐도 하고 대대장님이 직접 옆에 붙어서 감독해줬는데 탄착군이 모였다 안 모였다 하자 똑바로 안 쏜다며 머리를 맞기도 했다.(방탄을 쓰고 있어서 머리가 아프진 않았다. 마음이 아팠을 뿐) 그래도 안 되자 총기를 바꿀 것을 권유했는데 총기를 바꿔도 합격을 못하면 정말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아서 바꾸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하지만 영점사격을 아무리 해도 탄착군이 왔다 갔다 하자 결국 강제로 총을 바꿔서 사선에 올랐다. 그때 부사수로 있던 대위가 총에 주기(이름표)가 다른 것을 보자 ‘꼭 사격 못 하는 놈들이 총 탓 한다’며 면박을 줬다. 하지만 정말 총이 문제였을까? 놀랍게도 거기서 만발을 쐈고 부사수로 있던 대위는 ‘정말 총 탓이었구나’라며 머쓱해 했다. 


비록 마지막까지 남아서 사격을 하긴 했지만 만발을 쐈으니 총기잘못이지 내 잘못이 아니라고 위안 삼으며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연대장님이 자신감 얻으라고 그냥 표적을 넘겨줬다고 한다.(자신감을 얻으라고 한 건데 다른 사람들은 그걸 왜 굳이 나한테 말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때문에 남아있는 간부들 얼굴 볼 낯이 없어 쥐구멍에라도 숨고싶을 정도로 마음고생을 했고, 알고보니 내 총은 총열이 확장돼서 잘 안 맞을 수밖에 없는 총이 맞았다.


훌륭한 목수는 연장탓을 안 한다지만 가끔 연장을 의심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식칼로 나무를 썰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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