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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Apr 11. 2018

체력

군생활 이야기


초임장교들에겐 창끝 전투력이라 하여 누구보다 강인한 체력이 강조된다. 그래서 후보생 시절부터 체력단련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 목표치는 특급전사.


후보생 시절 내게도 특급전사는 꿈같은 얘기였다. 방학 때마다 훈련을 가면 체력검정과 사격을 하는데 사격에서 좌절해버리니 체력은 보나 마나였다. 막상 체력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ROTC 시험을 볼 땐 최고등급이 1등급이었고 달리기도 1.5km만 뛰어서 체력만점으로 통과할 수 있었기에 나 자신이 체력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정도론 어림도 없었다. 군대에서 달리기의 측정기준은 3km였고 특급을 받으려면 정말 죽어라 뛰어야 했다. 하지만 중간에 힘들어서 나 자신과 타협하기 일쑤였다.


1년 차 시절 아침에 그렇게 운동을 해도 특급은 멀기만 했다. 팔 굽혀 펴기는 쉽게 특급이 나왔지만 윗몸일으키기와 달리기는 아니었다. 매번 1급에서 놀았고 어쩔 때는 2급이 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윗몸일으키기는 꾸준한 노력 끝에 2학기쯤 되니 특급에서 왔다 갔다 했지만 달리기는 쉽지 않았다. 


간혹 달리기는 정신력이라고 죽어라 뛰면 된다고 하는데 죽을 만큼 힘들다 보면 진짜 죽을까 봐 그냥 1급만 받자고 자신과 타협하게 된다. 그렇게 뛰지 않아도 특급을 받을 수 있는 체력을 갖고 싶어서 운동을 열심히 했지만 쉽지 않았다. 정신력으로라도 뛰어야 하는데 매번 타협하다 보니 정신이 글러먹었나 싶기도 했다. 그래도 후보생 시절 딱 한번 달리기 특급을 받은 적이 있었다.     


2년 차 하계훈련이 끝나고 임관 전 체력측정을 앞두고 있을 무렵, 훈육관이 특급이 안 되는 사람은 특급이 나올 때까지 매일 나와서 측정을 하라고 지시하여 매일 아침마다 체력측정을 받았다. 선배들은 2년 차 때 편하게 있었는데 우리는 훈육관 잘못 만나 이게 뭐냐고 매일 아침마다 동기들과 투덜거리면서 3km 측정을 받곤 했다. 그러다 한 번은 1년 차 후배들과 같이 뛴 적이 있다. 

후배들은 자율적으로 뜀걸음을 하고 특급을 못 받은 2년 차들만 체력측정을 받았는데 후배들 앞에서 그러려니 좀 창피하기도 했다. 그래서 좀 열심히 뛰어볼까 했는데 그날따라 몸이 가벼웠고 1년 차 후배들은 자율적으로 뛰다 보니 천천히 뛰고 있어 그 애들을 한두 명씩 제쳐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뛰다 보니 죽을 만큼 뛰지 않았는데도 특급이 나왔다.


이제는 아침 운동을 안 나와도 된다는 기쁨에 남아있는 동기들을 약 올리며 빠이빠이 하고 나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다음 주에 갑자기 전 인원 측정한다고 해서 뛰었는데 다시 떨어진 기억이 있다.      

그러다 보니 OBC에서도 특급은 못 받았고 자대로 가게 되었다.      


자대 전입 당시 사단 내규가 바뀌어 원래는 전입 세 달 이후부터 휴가를 갈 수 있는 것이 한 달 이후부터 갈 수 있었다. 초임장교 집체교육 때 사단 보임 장교가 이를 설명해주며 '너희 선배들은 세 달 이후부터 갔는데 너네는 복 받은 거다'라고 했다. 하지만 집체교육이 끝나고 연대장님과 면담을 하는데 연대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초임장교들은 특급전사를 받을 때까지 휴가를 가지 마라” 

    


그래서 첫 휴가를 12월이 돼서야 갈 수 있었다.

그 어려운걸 어려워서 못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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