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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Apr 19. 2018

첫 훈련

군생활 이야기 : 훈련 가서 치킨 시킨 썰

군대에서는 과연 어떤 훈련을 할까?


훈련은 보통 각 부대에서 비상시를 대비하여 세워둔 작전을 토대로 진행된다.


작전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평시 작전, 두 번째는 전시작전이다. 국지도발과 전면전이라고도 하는데 국지도발은 전쟁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적의 침투나 화력도발, 테러 등에 대비한 작전이고 전면전은 말 그대로 전쟁이 났을 때 하는 작전이다.  

    

내 첫 훈련은 국지도발 훈련이었다. 우리는 동원부대라 전시훈련은 적은 편인 대신 평시 훈련이 빡셌다. 도심지에서 하는 훈련이라 보는 눈도 많고 그만큼 어려운 점도 많았다.


대략 이런 훈련이 국지도발훈련이다.(사진출처 : NEWSIS, 폴리스타임즈)



첫 훈련에서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주요 교차로에서 매복하여 대항군 차량이 지나가면 보고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 지나가는 차만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대항군 차량이 근처에 돌아다닌다는 무전을 받으면 지켜보면 되는 것이다.      

8월의 무더위에 훈련이 진행되었고 상병 한 명, 이병 한 명과 함께 어느 교차로에 떨어졌다. 인적은 드물지만 차가 많이 다녔고 교차로 한쪽 구석에 개인호가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가정집 몇 개와 냉면집이 있었다. 

햇빛이 따가워 판초우의로 가림막을 만들고 개인호에 숨어서 무전을 기다렸다. 화장실을 갈 때 빼곤 거기 숨어서 시간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밥때가 되면 차로 주먹밥 같은 것을 전달해줬다. 하지만 밥만 먹고 있기엔 너무도 따분한 시간이었다. 그때 이병이 과자를 꺼내며 나에게 물었다.     


“인사장교님 이것 좀 드시겠습니까?”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 미리 예측을 했고 이병에게 한마디 했다.


“너 이 새끼 훈련인데 이런 거 가져오면 어떡하냐?”


그 순간 이병과 옆에 있던 상병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렇게 하면 이 친구들에게 내가 FM(Field Manual의 약자. 보통 규정과 방침에 딱 맞춰서 행동하는 사람을 이렇게 부른다) 장교라는 인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FM이 아니었다.


“이런 걸 가져오면 임마. 응? 맛있게 먹어야지. 또 뭐 가져왔냐?”
 

둘은 웃으면서 매복에 필요한 도구를 넣어뒀던 더블팩에서 먹을 것을 하나둘씩 꺼냈다. 거기에는 매복에 필요한 도구보다 과자가 더 많았다. 거기에 그렇게 많은 과자들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하지만 매복이 길어지면서 과자는 금방 동이 났고 해가 져서 주변은 어두워졌다. 차라리 대항군이라도 있으면 재밌을 텐데 무전은 올 기미가 안 보였다. 그때 치킨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상병이 말했다. 


“아 치킨 먹고 싶다.”


이병이 옆에서 거들었다.


“아 진짜 치킨 먹은 지 너무 오래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야 우리 치킨 시켜먹을래?”


순간 그 둘의 눈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진짜 시켜도 됩니까?”


“얼른 먹고 치우면 되지.”


물론 걸리면 끝장이다. 소위가 첫 훈련 때 치킨을 시켜먹었다는 소문이 퍼지면 부대에 전설적인 인물로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안 걸릴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소위의 패기(?)가 있었고 잘 몰랐기에 그럴 수 있었다.     

그렇게 치킨 집에 전화를 걸어 뒤에 있는 냉면집 앞에서 받기로 하고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런데 주문한 지 10분 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무전이 왔다. 


“현 시간 부로 매복조는 철수하니 차량에 합류하여 올 수 있도록. 이상”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왜 하필 지금.      

치킨 집에 얼른 다시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방금 냉면집 앞으로 시켰던 사람인데요. 혹시 치킨 취소가 되나요?”


“이미 튀기고 있어서 안돼요.”


“사장님 진짜 급한 사정이 있어서 지금 가봐야 하는데 어떻게 안 될까요?”


“안돼요. 이거 꼭 받으셔야 돼요.”

 “하아.... 일단 알겠습니다.”


그야말로 패닉이었다. 방안을 강구해야 했다. 

배달이 먼저 와도 우리가 먹을 시간이 없으니 처치곤란이었다. 혹은 철수 차량과 배달시점이 겹쳐 들키면 그건 더 큰일이었다. 운 좋게 배달이 오기 전에 철수한다고 해도 냉면집 앞으로 주문을 해서 냉면집에 들어가 물어보면 우리가 시킨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럴 경우 민원이라도 넣는다면 일은 더 커질 것이다.     

뒤를 보니 냉면집엔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일단 그런 상황은 피해야 했다. 조심스레 가게문을 열었다. 가게엔 아주머니 3분이 앉아 계셨고 무장을 한 나를 보고 좀 당황하셨다.


“저기 죄송한데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아주머니께 치킨을 시켰는데 지금 철수해야 돼서 내일 찾으러 와서 돈 드릴 테니 일단 좀 맡아달라고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무사히 철수를 했고 같이 있던 병사들의 사기는 떨어져 있었다. 

다행히(?) 훈련을 내일도 지속돼서 출동하면 그때는 진짜 먹자고 달래주고 그날을 넘겼다.      


하지만 다음날 우리는 출동하지 않았고 그 가게에 전화를 드리니 그 치킨은 내일까지 두면 식으니까 자기네들이 맛있게 먹었으니 돈은 안 줘도 된다고 했다. 감사하다고 하며 다음에 냉면 먹으러 꼭 간다고 했다.      



물론 그 뒤로 그 냉면집에 간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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