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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Apr 22. 2018

간부들의 숙소

군생활 이야기 : 간부들은 어떤 숙소에서 살까?

간부들은 병사와는 다르게 출퇴근 개념이다 보니 숙소가 주어진다. 그 숙소를 장교 같은 경우 BOQ 부사관 같은 경우 BEQ라고 부른다. 하지만 영내(부대 내)에 숙소가 있을 경우 그렇게 구분했지, 영외는 따로 명칭을 구분하지 않는다. 다만 다인 1실의 경우에는 장교와 부사관을 따로 구분해서 방을 배정한다.

     

숙소의 상태는 부대마다 지역마다 천차만별인데 보통 도시 그리고 상급부대 갈수록 좋은 숙소가 나올 확률이 높다. (새로 지었을 확률이 높기 때문) 

  

나 역시 처음 부대가 도시에 있었긴 하지만 영외 숙소가 지어진 지 오래된 건물이라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1인 1실이라는 건 마음에 들었다. 퇴근하고 누구 눈치 볼일도 없고 점프 뛰고 외박해도 신경 쓸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전임자가 방을 깨끗하게 써서 청소만 해도 제법 쓸 만한 방이었다. 같이 들어온 동기는 전임자가 방을 워낙 더럽게 써서 화장실 하나 딸린 조그마한 원룸 정도인데도 청소하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얼마나 더러운 지 청소할 때 신발 벗고 들어가는 것조차 꺼려졌다. 전임자가 미국에서 살다 왔다고 그러더니 신발 신고 방에 들어간 게 틀림없다.  

   

아무튼 숙소는 퇴근 후에는 완전히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정말 내 방이라 생각하고 깨끗하게 쓰려고 노력했지만 불가피하게 방을 옮기게 되었다.      


사단에서 장교와 부사관의 층을 구분한다고 이사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 지침이 내려온 이유도 참 웃긴데 어떤 중령분이 숙소에서 누가 자기한테 경례를 안 했다고 장교 부사관 섞어서 사니까 연배가 있어 보여도 자기가 중령인지 모르고 경례를 안 했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난다. 내가 그 방을 얼마나 깨끗이 썼는데. 퇴근해서도 그렇게 경례가 받고 싶은지 이해가 안 간다. 진짜 꼰대도 그런 꼰대가 없다. 

그런 같잖은 이유로 1층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좀 귀찮긴 하지만 그래도 1인 1실인데 뭐 크게 다르겠어했는데 2층과 1층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숙소 바로 뒤가 산이라 1층은 습기가 가득했고 방은 곰팡이 투성이었다. 나름 청소를 한다고 했지만 벽에 난 곰팡이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제습기가 있긴 하지만 하루에 두 번씩 갈아야 할 정도였다.     

사단에 벽지 교체를 요청했으나 응답이 없었다. 몇 번을 시도한 끝에 담당 군무원이 방을 한번 둘러보더니 한다는 소리가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다’였다. 지가 거기에 살면 과연 그런 소리가 나올까 싶지만 소위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거기서 제습기 매일매일 갈아주며 살았다.      

그러다 여름에 2주짜리 교육파견을 가게 되었다. 방안의 습기가 걱정돼서 동기한테 한 번씩 제습기 물 좀 빼 달라고 부탁했으나 돌아오니 방은 곰팡이가 점령했다. 가방이며 옷이며 신발이며 필 수 있는 데는 모조리 피어있었다. 게다가 그 사이에 연대장님이 숙소 사열을 하셔서 그 참사를 그대로 보고 가셨다.  

  

복귀 후에 재사열을 한다고 해서 다이소에서 청소 관련된 용품만 몇 만 원어치 산 다음 고생 고생해서 겨우 사람 사는 곳으로 다시 만들어 놨다.     


그 후 거기서 몇 개월 더 살았는데 숙소라는 게 원래 자리가 나는 대로 채워주기 때문에 장교 부사관을 구분하기 힘들었고 결국 그 사이에 다시 장교 부사관이 섞여버려서 이럴 거면 왜 그 난리를 쳤나 싶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사단에서 나온 지침이 이제는 장교 부사관이 건물 자체를 구분하고 연대끼리 묶어서 생활하라고 해서 또 방을 옮겼다. 이번에 옮기게 될 방은 3인 1실 방이었고 동기랑 후임 한 명이 같이 살게 되었다. 3인 1실은 큰방, 중간방, 작은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가 들어간 곳은 중간방이었다. 그전에 쓰던 방과 크기가 비슷한 정도였고 중간방에 딸린 베란다가 마음에 들어서 딱히 큰방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큰방은 후임이 쓰게 됐는데 동기는 전역하기 얼마 안 남은 시점이라 그냥 자기가 작은 방을 쓰겠다고 했다. 

옛날 핸드폰에서 겨우 찾아낸 숙소사진. 3인 1실중 중간크기의 방. 기본구성으로 침대와 옷장, 책상, 의자가 주어진다.


장점이 있다면 취사가 가능했고 일 끝나고 같이 집에서 치맥할 사람들이 있다는 거 정도? 

단점은 아무래도 집에 사람이 여럿 있다는 것? 화장실 가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아침에 출근할 때나 퇴근해서 씻는 거며 급한데 누가 들어가 있거나 하면 여간 짜증 나는 게 아니었다. 가끔 후임이 문을 열고 큰일을 봐서 뭐라 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냉장고에 뭘 넣어두면 조금씩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앞집 윗집 아랫집 전부 같은 연대 사람이다 보니 이 방 저 방을 자연스럽게 왔다 갔다 하며 때론 술 먹고 꼬장 부리고 갈 때도 있었다. 뭐 그 정도는 괜찮은데 어떤 놈은 몰래 들어와서 냉장고에 먹을 것을 털어가기도 했다. 한 번은 냉장고에 놔둔 오리훈제 두 개가 없어져서 그놈 잡겠다고 윗집 아랫집 냉장고를 뒤지기도 했지만 결국 못 잡았다. 반쯤 오픈된 공간이다 보니 퇴근 후에 완전히 내 공간이라는 개념이 조금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곰팡이보다는 사람이 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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