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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May 06. 2018

장교와 부사관의 언어

군대상식

주호민 만화 '짬'의 한 장면. 실제로 일어난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자네가 이 부대 주임 원산가?”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어딘가에서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 초임장교의 전설적인 일화.      

20대 중반의 소위가 40, 50대인 원사에게 저렇게 말한다는 건 어지간한 패기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과연 저런 소위가 아직도 있을까 싶지만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오는 곳이 군대이기 때문에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소위가 원사보다 위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계급은 나뉘어 있지만 장교와 부사관은 그 영역이 달라 계급상 위라고 함부로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삼성전자에 다니는 과장이 처음 보는 삼성증권의 팀장에게 반말하는 격이랄까? 아주 딱 맞는 예시는 아니지만 그쯤 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군대는 엄격한 계급체계로 돌아가지만 서든어택처럼 계급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장교와 부사관은 같은 간부이면서도 서로 영역이 다르다. 그래서 서로 이야기를 할 때 존칭으로 부른다. 하지만 무조건 존칭을 하는 것은 아니다. 대대장이 자기 부대 하사에게 깍듯이 존칭 하는 것도 좀 이상하다. 그렇다고 반말과 존칭에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마 처음 군대 생활하는 소위들에게 부사관들과의 언어가 꽤나 어려울 것이다. 자대에서 어떤 사람들은 부사관들에게 반말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존칭을 하는 것을 보고 꽤나 혼란을 느낄 것이다.

명확하게 존칭을 하고 반말을 하는 것에 대하여 구분되어 있는 것은 없지만 어느 정도 고려할 만한 사항들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님을 미리 알아두길 바란다.     


1. 나이

군대는 계급 사회라고 하지만 동방예의지국에서 나이를 완전히 무시하기도 힘들다. 장교끼리 혹은 부사관끼리 라면 나이라는 것을 개의치 않지만 장교와 부사관의 관계에서는 다르다. 부사관의 경우 계급 상은 아래여도 장교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다. 나이 어린 장교가 계급이 높다고 자신에게 반말을 한다면 그 거부감이 더 하다. 좀 친해지고 나서 반말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랫사람 대하듯이 하면 급속도로 사이가 멀어질 수도 있다.   


2. 짬

위의 나이와 비슷한 개념인데 보통 군 생활 짬이 많으면 그만큼 대우를 해준다. 보통 상사 짬밥쯤 되면 대부분의 장교들이 존칭을 쓴다. 또한, 부사관의 경우 일찍 임관하는 경우도 많다. 소위나 중위랑 나이는 비슷해도 짬이 훨씬 많은 경우에 노하우도 입김도 좀 있어서 나이가 비슷하다고 막 대하면 곤란한 상황이 생길 것이다. 

  

3. 지휘체계

예전에 지식인에 어떤 중사가 ‘새로 온 중대장이 반말을 자꾸 한다’고 올린 글을 본 적이 있다. 내용은 나이가 비슷한 대위가 왔는데 둘이 있을 때는 존칭을 하는데 자꾸 애들 앞에서 반말을 하더니 나중에는 자신을 아랫사람 대하듯이 한다는 것이다. 본인의 상식으로는 장교와 부사관은 엄연히 다른 것이라 자신을 밑에 사람 대하듯이 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 장교와 부사관은 엄연히 다르고 나이도 비슷하다고 하지만 지휘체계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곤란하다. 지휘관계에 있어서는 상명하복을 철저히 지켜야 하기 때문에 편의상 반말도 하고 아랫사람 대하듯이 할 수도 있다.   


4. 그 사람이 지위

중대에서 중대장이 지휘권이 있다고 다 반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행정보급관에게는 대부분 존대를 한다. 행정보급관은 중대 부사관들과 부대를 관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중대장만큼이나 책임이 많다. 서로 도와서 잘 이끌어가야 할 입장이기에 그 사람 체면도 어느 정도 고려해야 한다. 무작정 아랫사람 대하듯이 하면 사이가 틀어지고 결과적으로 본인이 힘들어진다.


앞서 말했던 소위가 주임원사에게 반말하는 것은 위 4가지 사항을 고려했을 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주임원사라고 하면 대대 부사관 중에 최고이며 대대장과 직접 소통한다. 소위가 계급상 위일지라도 그분들이 책임도 권한도 훨씬 많이 갖고 있다. 대대장이나 연대장, 심지어 사단장도 주임원사한테는 존칭을 하는데 초임장교가 와서 반말을 한다는 것은 본인이 그분들보다 위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회에서 나이 많다고 초면에 반말에 욕설을 한다면 누구라도 기분이 나쁠 것이다. 군대도 마찬가지다. 계급이 있지만 계급으로 누르려고 하면 누구나 반발심이 생긴다.



장교와 부사관과의 언어에서 한 가지 더 애매한 것이 바로 ‘님’ 자이다. 상급자라면 당연히 ‘님’ 자를 붙여서 말하겠지만 부사관의 경우 계급상은 자신보다 아래이기 때문에 ‘님’ 자를 붙이지 않는 게 맞다. 하지만 직책으로만 부르면 뭔가 하대하는 느낌이 들어 부사관들한테도 ‘님’ 자를 붙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예전에는 행보관이나 주임원사에게 ‘행보관요’, ‘주임원사요’라고 부르기도 했다. 짬밥도 나이도 직책도 있는 사람들인데 직책만 부르자니 너무 하대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아랫사람인데 ‘님’ 자를 붙여서 부르기도 뭐해서 그렇게 불렀다.(요새는 그렇게 부르는 경우를 많이 못 봤다.)     


이 ‘님’ 자 관련돼서 에피소드가 한 가지 있는데 OBC에서 어떤 수업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교관이 부사관들한테 ‘님’ 자를 붙이지 말라고 교육을 했었다. 군대에 명백히 계급이 있는데 존칭은 하되 모시라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자대에 가서 부사관들에게 절대 ‘님‘자를 붙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나 말고 다른 동기들은 다른 부사관들에겐 몰라도 적어도 주임원사를 부를 때는 ’ 주임원사님‘이라고 불렀다. 왠지 내가 잘못된 것 같아서 나도 ‘주임원사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헷갈렸다. 

그러다 하루는 점심시간에 포대장님이 우리들을 부르셨다. 우리 때문에 연대 인사장교님한테 혼났다고 화를 내셨다. 이유인즉슨 왜 부사관들한테 ‘님’ 자를 붙이냐는 것이다. 장교가 가오가 있어야지 도대체 왜 아랫사람인 부사관들한테 님님 거리면서 휘둘리냐는 것이다. 역시 내가 하는 게 맞았구나 싶었다. 하지만 거기서 “저는 ‘님’ 자 안 붙였습니다”라고 하기도 뭐해 알겠다고만 했다.      

교육이 끝나자마자 연대 지휘통제실에 볼일이 있어 내려갔다. 지휘통제실엔 연대 인사장교가 있었고 마침 대대 주임원사도 볼 일이 있었는지 거기에 있었다. 거기서 보란 듯이 말했다.


“주임원사, 여긴 웬일이세요?”


“잠깐 정작과장님한테 할 말 있어서요. 인사장교님은요?”


“저는 뭐 좀 받아갈 게 있어서....”


그때 연대 정작과장님(소령)이 지휘통제실에 들어왔고 주임원사를 보고 말했다.     


“주임원사님, 어쩐 일로 오셨어요?”     


슬쩍 연대 인사장교를 봤다. 그는 열심히 아무것도 못 들은 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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