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TC로 임관한 장교들의 대다수는 2년 4개월의 의무복무 기간을 마치고 전역을 한다. 아마 그들 중 전역 후 진로가 정해지지 않은 이들은 취업하기도 힘든데 뭣 하러 전역을 하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분명 군인은 공무원으로 분류되고 안정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군인이라고 계속하기 쉬운 것이 아니다. 해마다 복무연장, 장기 지원자들이 많아지고 경쟁률이 세지니 그중 상당수가 고배를 마신다.
날이 갈수록 취업난이 심해지고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는 사회분위기는 군대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전에는 직업군인 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장기복무를 고민하고 있다는 뉘앙스만 풍겨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장기복무가 되어 있는 일도 있었는데 요즘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것이 직업군인이다.
아무래도 경쟁률이라는 것이 있다 보니 열심히 했는데도 안 좋은 결과를 받고 전역을 하는 사람이 생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일반 공무원을 하는 것보다는 경쟁률이 훨씬 낮고 시험을 치르는 것이 아닌 본인의 역량을 보고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전략만 잘 짜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진다.
그래서 혹시나 이 글을 보고 있을 직업군인의 꿈을 갖고 있는 그들에게 장기복무의 팁을 알려주고자 한다.
1. 처음부터 장기를 희망한다고 말하기
가끔 전역하는 해에 갑자기 복무연장이나 장기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겠지만 군대에서도 스펙관리라는 것이 있다. 군 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 스펙관리를 받은 사람과 안 받은 사람의 점수 차이는 크다.
근무평정도 잘 주고, 표창도 챙겨주고, 각종 대회나 집체교육이 있을 경우 장기 희망자에게 기회를 밀어준다. 그렇게 스펙관리가 되어도 될까 말까 한 게 직업군인이다. 그런데 갑자기 전역할 때쯤 돼서야 군 생활을 더 하겠다고 한다면 관리를 받은 인원들과 스펙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만약 조금이라도 장기복무를 생각했다면 일단은 장기 희망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나중에 도저히 못 하겠다고 해도 뭐라 하는 사람 없다. 아니 있다고 해도 전역할 건데 무슨 상관인가. 그러니 일단은 장기를 희망한다고 말해야 스펙관리에 더 수월할 것이다.
2. 체력
초급장교한테 체력은 중요하다. 체력이 부대원들을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 중 하나로 보기 때문이다. 훈련 중에 체력이 안 좋아서 부대원들에게 뒤쳐진다는 것은 자격미달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력은 필수적으로 관리를 해야 한다.
체력은 매년 시행하는 체력측정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체력측정 결과는 인사정보에 남기때문에 초급장교 시절에는 '특급'을 기본적으로 깔고 가는 거라고 생각해야 된다.
여기에 사격까지 잘해서 특급전사가 되면 더 좋다. 특급전사 자체는 상장을 받지 않는 이상 인사정보에 남지 않지 근무평정을 쓸 때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수단은 될 수 있다.
3. 표창장, 상장
직업군인들의 인사관리에는 표창 점수라는 것이 있다. 반기마다 채워야 하는 점수인데 그 표창 점수는 필히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열이나 훈련이 끝나면 유공자를 선정해서 주는데 보통 장기를 한다고 하면 지휘관이나 상급자가 표창을 챙겨줄 것이다. 하지만 표창이라고 다 같은 표창이 아니다. 사실 연대장 표창까지는 흔하기 때문에 표창 점수 이상의 가치는 없다. 그래서 최소 사단장 표창, 가능하다면 군단장, 군사령관 표창 정도는 돼야 희소성이 있어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받을 기회가 많이 없지만 스스로 찾아다니다 보면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둬야 할 것은 표창보다 중요한 게 상장이다. 표창 같은 경우 분기별로 채워하는 점수를 넘으면 큰 가치가 없지만 상장은 다르다. 상장은 잠재역량에도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만약 경연대회나 집체교육 같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참석해서 좋은 성과를 노려보는 것이 좋다. 물론 상장도 주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가치도 다르다.
일반 야전부대 기준으로 사단장 이상의 상장을 받는 다면 장기복무까지는 모르겠지만 복무연장 정도는 높은 확률로 노려볼만하다.
4. 자격증
자격증 역시 인사정보에 기록되고 플러스 점수가 되기 때문에 따는 것이 좋다. 물론 자신의 병과와 관련된 자격증일수록 그 가치가 높겠지만 워드나 컴활 정도의 자격증도 도움이 되니 따는 것이 좋다. 군대에서 인정하는 자격증은 따로 있으니 한번 알아보고 여가시간을 활용해서 따두는 것이 좋다. 만약 직업군인을 안 한다고 해도 취업할 때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군 생활 중에는 무조건 한 두 개는 따는 것을 권장한다.
5. 교리발전 제안하기
교리발전이라 함은 현재 군대에서 쓰이고 있는 전술적인 이론에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인데 사실 초급장교가 제안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마냥 어려운 것도 아니다. 평소 훈련 같은 것들을 하면서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 방안들을 논리적으로 제시하면 된다. 이는 자신의 프로페셔널함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이고 인사정보에 남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군 생활을 하는데 계속 도움이 될 것이다.
6. 격오지 근무
최전방 GOP나 GP에서 근무를 하는 사람들은 일반 야전부대보다 더 고생한다. 그래서 고생한 만큼 격오지 근무에 대한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초반에 부대를 선택해서 갈 수는 없지만 만약 기회가 생긴다면 격오지로 지원하는 것이 장기복무에 더 유리하다. 하지만 오히려 군생활에 대한 의지가 꺾일 수도 있으니 확고한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안 가도 된다.
7. 장기복무 선발권을 지닌 지휘관에게 자신을 알리기
장기복무나 복무연장 선발은 개인역량도 중요하지만 지휘관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즉, 선발권을 지닌 지휘관에게 자신을 얼마나 어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포병 같은 경우 연대장이 그 권한을 갖고 있었는데 부대가 많고 사람도 많다 보니 지휘관이라고 예하에 있는 모든 부하들의 특성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가까운 데서 지켜보는 대대장에게 그 인원에 대한 정보를 묻곤 하는데 아마 대부분의 대대장들은 좋게 얘기해줄 것이다.
그래서 대대에서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발권을 가진 지휘관에게 자신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백날 대대장이 잘한다고 말해줘 봤자 연대장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물론 서류심사를 우선 거치기 때문에 인사정보 상에 자격증, 상장, 체력이 월등하다면 지휘관이 다른 사람을 밀어주고 싶어도 못 밀어준다.(사실 월등할 정도면 이미 지휘관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야전에서 업무에 치이다 보면 교리발전은커녕 상장도, 자격증도 못 딸 수도 있으며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럴 경우 같은 조건이라면, 얼굴 아는 사람한테 마음이 갈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보니 어느 정도 정에 휘둘리는 것이다. 물론 안 좋은 쪽으로 눈에 띄거나 장기선발권을 가진 지휘관을 볼 기회가 없다면(병과에 사람이 적을수록 상급부대에서 선발을 한다) 믿을 건 스펙밖에 없으니 스펙관리를 열심히 하라.
8. 끝까지 버티기
사실 장기 되는 것은 중위 때나 어렵지 대위 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위쯤 되면 나갈 사람들은 다 나가고 남을 사람만 남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미 동기들은 대부분 장기가 되어있는 경우가 많고 중위들과는 따로 선발을 하기 때문에 경쟁률도 낮다. 게다가 대위들은 연대장 얼굴 볼 일이 많기 때문에 어느 정도 친분이 생겨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장기 정도는 노려볼만하다.
나도 대위까지 있다 보니 같은 연대에 대위들 중 장기가 아닌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다행히 사고 친 적이 없었고 연대장님도 장기 해 볼 생각 없냐고 물어봐주기도 하셔서 만약 장기를 한다고 했으면 밀어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만약 운이 안 좋아 장기가 안 돼도 복무연장 정도는 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장기를 할 수 있는 마지막 연차까지 가면 경쟁자가 거의 없어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버티다 보면 직업군인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물론 징계기록은 없어야 한다)
근데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복무연장을 해서 대위를 달아야 하기에 다시 1번으로 돌아가서 복무연장부터 하길 바란다. 아니면 애초에 들어갈 때부터 군장학생으로 들어가는 것도 좋다.(군장학생은 의무복무기간이 6년 4개월이다)
장기복무에 대해 굉장히 잘 아는 것처럼 나열했지만 사실 군 생활을 좀 하다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실제로 위와 같은 조언으로 장기나 복무연장이 된 사람들을 봐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군생활 경력이 부족한 초급 간부들은 그냥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묵묵히 열심히 하다 보면 누군가 알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랜덤적인 것에 운명을 맡기기보다는 본인이 열심히 하는 것에 대해 티를 내는 것이 좋다. 세상이 나를 안 알아준다고 한탄하기보다는 세상이 나를 알 수 있게 티를 내야 한다.
그 티를 내는 것이 인사 정보에 남는 기록들이다. 부대에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서류상 기록이 없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장기복무에 지휘관 추천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이지만 개인 자력이 뛰어나면 지휘관 추천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장기복무는 병과별로 할당되기 때문에 병과마다 다소 상이할 수는 있으나 기본적인 시스템은 같다. 결국 해당 병과에서 자신이 얼마나 프로페셔널한지를 증명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