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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Feb 26. 2019

군대에서 회의감이 드는 순간들

수직적 구조의 끝판왕.

부조리의 시발점. 


가끔은 뉴스에서 보면 요즘 군대에서도 안 하는 것들이 사회에서 행해지기도 하는데 그래 봤자 시발점이 군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군대가 아무리 좋아졌다고 한들 '군대'라는 조직의 특수성 때문에 좋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각종 '군기 문화'의 원조이며, 계급사회이자 수직적 구조의 끝판왕이다 보니 거기에서 비롯된 회의감이 드는 순간들은 있기 마련이다. 

회의감을 느끼는 순간들은 계층마다 다르다. 병사들은 병사들의 고충이 있고 부사관들은 부사관들의, 장교들은 장교들만의 고충이 있기 마련이다. 또 거기서 계급별로 고충이 또 나뉜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부대별로, 병과별로 등등 각자 그들만의 고충이 있기 마련이다. 


초임장교 시절, 군대는 훈련소를 통해 나름 겪어봤다고 하지만 많은 것들이 낯설다. 

누군가 나한테 경례를 한다는 것도 군대 용어들도 낯설다. 업무는 말할 것도 없다.


군대에서의 업무들을 보면 대략 상급부대에서 던져준 일, 대대장님이 시킨 일, 다른 참모부에서 요청한 일, 시기별로 해오던 일 등이 있다. 웬만한 업무들은 돌고 도는 것들이라 기존에 작성했던 자료들이나 양식 같은 것들이 있어 그것을 현재에 맞춰 조금씩 바꾸면 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있어도 처음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감각이 없으니 내가 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닌지도 모른다. 또 군대에서는 문서를 작성할 때 주로 한글 프로그램을 쓰는데 익숙하지 않으니 계원한테 단축키 같은 것을 배우면서 하는 수밖에 없다. 만약 계원이 아닌 사수한테 한글 프로그램을 배운다면 마우스에 손 올라가면 죽인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대략 예전 보고서를 참고해서 상급자에게 들이밀면 아래와 같은 과정을 거칠 것이다.


"모르면 좀 물어보고 해라!"

모르는 것을 물어본다.

"야 니가 좀 찾아보고 생각을 해서 해. 하나하나 다 물어보려고 하지 말고."

내가 찾아서 생각을 해보려고 한다. 

"그거 언제까지 붙잡고 있을 거야?"

다시 가져간다.

"모르면 좀 물어보고 해라."


초임장교한테 패기가 있으라고 하지만 조금만 실수해도 죽일 듯이 하는데 주눅이 들어 있던 패기도 들어갈 노릇이다. 물론 나중에는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는 알게 됐지만 그게 그 당시에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초급장교를 지나서 부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이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고 나면 그 전과 같은 갈굼은 없어지지만 그렇다고 군생활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다음부터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1. 예하부대 생각 안 하는 상급부대

어느 부대나 항상 '계획'이라는 것을 짠다. 일일 업무 계획을 짜고 주간업무 계획, 월간업무 계획, 연간 업무 계획을 짠다. 하지만 계획은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 아무리 짜 봤자 상급부대 지시 하나로 계획은 무용지물이 돼 버린다. 물론 전쟁에서 계획대로 가는 경우가 없는 건 마찬가지이니 이 또한 훈련의 일환이라고 보면 마음은 편하다. 하지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지시가 내려올 때도 많다. 

보여주기 식 업무로 예하부대에 지시를 내려 막상 시행하는 입장에서는 일명 '뺑이'치게 하는 경우도 있고 부대 일정을 상급부대에 보고하기 때문에 바쁜 거 뻔히 아는데도 괜히 와서 들쑤시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이 상급부대로 가면 '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2. 점검관에 따라 바뀌는 점검기준

어느 국가기관이나 마찬가지로 군대에서도 주기적으로 점검을 한다. 크게 인사, 정보, 작전, 군수 파트별로 점검을 하는데 문제는 군대에서 행하는 모든 것들이 규정에 명시되지 못하다 보니 점검관에 따라 점검기준이 바뀌곤 한다. 그들은 자주 점검을 나가기 때문에 그들 나름의 기준이 있는데 그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게 맹점이다. 부대 특성상 규정대로 시행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도 그냥 무작정 규정만 들이대는 사람도 있고 그럴싸한 말로 규정에도 없는 걸 지시해서 나중에 문제가 되게 하는 사람도 있다. 가끔은 규정이 바뀌었는데도 옛날 규정을 들이대는 사람도 있다. 규정에 대해 명확히 알면 방어를 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면 당해버린다. 그래서 초급간부가 점검을 받고 나면 탈탈 털리는 경우가 많다. 

점검관 한마디에 부대가 상급 지휘관에 찍힐 수도 있는 부분이라 예하부대 간부 입장에선 점검관이 갑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점검의 목적이 예하부대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닌 갑질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3. 지휘관들의 많고 자주 바뀌는 지시사항들

부대에는 그 부대를 통솔하는 장이 있다. 아무래도 부대를 통솔하다 보니 부대장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데 문제는 이 부대장들이 바뀔 때마다 지시사항이 바뀐다는 것이다. 전임 부대장의 지시에 따라 행하던 것도 다음 부대장이 오면 못 하는 경우가 있고, 문제가 많았던 지시사항도 부대장이 바뀌고 또 하는 경우가 있다.

거기다 문제는 해당 부대장뿐만 아니라 상급 부대장이 바뀌어도 또 지시사항이 바뀐다는 점이다. 대대장 지시에 따라 이걸 하다 보니 연대장이 다른 지시를 해서 다른 것을 할 수도 있고 또 거기서 사단장이 다른 지시를 해서 또 다른 것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도 나름의 생각이 있어서 내리는 지시사항이고 군인이라면 상명하복이 기본이기에 그들의 지시사항을 따르는 게 맞다. 하지만 가끔 회의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거 하려고 하면 저거 하라 그러고 저거 하려고 하면 요거 하라 그래서 요거 하고 저거 하고 있으면 와서 이렇게 말한다.


"이거는 왜 안 했어?"  



4. 사람, 사람, 사람

사실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이 일하는 것은 거기서 기거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사람들과 하느냐가 중요하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상급자다. 상급자가 이상한 사람인 것만큼 피곤한 건 없다. 엄청난 꼰대라거나 일을 너무 못 한다거나 하급자를 너무 막대한다거나 등등 잘 못 걸리면 전역하고 싶다는 말이 입에 배어버린다.  

그렇다고 하급자가 어떤 사람이냐도 무시 못 할 일이다. 하급자가 개념이 없다거나 여기저기 사고 치고 다닌다거나 나태하다거나 등등, 뒤치다꺼리를 하다 보면 정작 내 일도 못 하고 하급자를 관리 못 한다고 싸잡아 욕먹는다. 

업무상 관계가 없어도 괜히 사고 쳐서 부대 분위기 흐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도 피곤하다. 

그래서 좋은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게 가장 큰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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